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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 풍경]내일을 여는 춤 2001-‘우리 춤, 어제와 오늘의 대화’
[예술계 풍경]내일을 여는 춤 2001-‘우리 춤, 어제와 오늘의 대화’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05.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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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30 09:50:35

‘음주가무’. 남녀노소 대부분이 좋아하는 이 말의 역사는 참으로 깊어 멀리 삼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群聚歌舞 飮酒晝夜無休 其舞數十人 俱起相隨 踏地低 手足相應(…사람들이 함께 모여 밤낮으로 쉬지 않고 술과 음식을 먹으며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 춤은 여럿이 한 줄을 이루어 뒤를 따르며 몸을 구부리기도 하고 허리를 펴기도 하며 손과 발을 조화롭게 맞추는 것이었다.)”-삼국지 위지 동이전 마한조 편에 실린 글이다. 5월 씨뿌리기가 끝난 뒤 하늘에 감사드리며 한바탕 축제를 벌이는 마한인들이 어떻게 ‘노는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눈에 밤새 춤을 추는 마한인들이 얼마나 신기하게 비쳤으면 이렇게 문헌으로 기록해두었겠는가. 동아시아에서 우리 민족이 가진 춤에 대한 신명은 남달랐던 것으로 짐작된다.”고 부산대 채희완 교수(무용과)는 해석한다.

아닌게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해 신명나게 춤추던 전통의 피는, 수천 년이 흐르면서 혈통이 섞이고 강산이 여러 번 뒤집힌 지금도 면면히 흘러서 중년들은 관광버스에서, 10대들은 대학로에서 주체할 수 없이 뻗치는 춤끼를 잠재우는지도 모른다.

신명의 춤, 조화의 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춤’하면 떠오르는 것은 격렬하고 화려한 몸짓, 안으로 삭이기보다 마음껏 발산하는 그런 춤이다. 디스코를 비롯해 힙합과 테크노, 재즈댄스까지 가장 대중적이라 할 춤들은 모두 ‘외국 것’이고, 철저히 혼자만의 무아경에 빠져들게 하는 춤들이다. 그렇다면 ‘여럿이 줄을 지어 손발을 맞추면서’ 함께 어울려 즐거웠던 우리 춤의 전통은 어디로 간 것일까.

‘전통춤’이라면 노인들이 추는 덩실덩실 어깻짓과, 단조롭고 지루한 춤사위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우리 춤은 대중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전통무용계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방편들을 고민하면서 최근까지 중점을 두었던 주제는 ‘전통 춤의 현대화’였다. 그러나 현대화에 대한 강박이 지나쳤던 탓일까, 최근 한국창작춤은 현대무용과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한 영역을 넘나들었고, 새로운 해석과 창작에 대한 어긋난 방향 때문에 한국춤의 뿌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창무예술원이 정동극장과 손을 잡고 18일부터 30일까지 열고 있는 ‘내일을 여는 춤 2001-우리 춤, 어제와 오늘의 대화’(정동극장)는 ‘전통계승과 현대화’라는 막중한 두 과제를 풀기 위해 현재 전통무용계가 모색하고 있는 여러 시도 중에서 그중 돋보인다. 이 ‘대화’에 무용계 안팎의 관심이 모이는 것은, 전통과 현대가 한 무대에 서서 한국 전통춤의 미래를 함께 모색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한 무용가가 기존의 전통춤을 먼저 춰보이고 그 춤에 바탕을 둔 창작춤을 연속으로 펼침으로써 전통에 충실한 한국 창작춤의 새로운 지평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라는 기획 의도에서 알 수 있듯이 참가한 무용가들은 각각 두 번의 무대를 가졌다. 개막 이틀째인 19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전통과 창작의 만남’은 김수악류 교방굿거리가 ‘퓨전굿거리’(춤-변지연 창원대 교수)라는 창작춤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이매방류 살풀이가 창작춤 ‘胎’(춤-이미영 이화여대 강사)로 탈바꿈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젊은 무용가들이 갖고 있는 전통 해석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접점에 대한 고민이 진지하게 펼쳐진 자리라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지점

 

이번 한국춤 향연의 백미는, 관객의 환호 속에 열린 다섯 춤꾼의 개막 축하 공연이었다. 김천흥, 엄옥자, 최현, 박재희, 정재만 선생들의 공연은 대가들이 후배들을 위해 준비한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춘앵전, 처용무의 무형문화재 보유자인 김천흥 선생이 90 넘은 나이에 장인의 풍모를 보여준 ‘춘앵무’, 옷깃과 버선코까지 춤의 일부가 되어 흐느낀 엄옥자 선생의 ‘원향살풀이’, ‘神命’이라는 춤의 이름처럼 가히 신이 노니는 듯한 가볍고도 힘있는 움직임을 보여준 최현 선생의 춤 등 대가들이 펼쳐보인 전통춤의 세계는 깊고도 넓었고, ‘한국 전통춤이 이토록 다채롭고 아름다웠나’하고 새삼 감탄하게 해준 공연들이었다.

이번 ‘우리 춤-대화’는 ‘우리 춤 뿌리찾기’와 더불어 전통의 뼈대 위에 새옷을 입히는 작업을 병행하는 것이었다. 한국춤의 진지한 길찾기에 함께 한 관객들은 한국춤의 감춰진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는 귀한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관객이 적었다는 것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관객 동원은 한국 전통춤이 풀어야할 고질적인 숙제 가운데 하나이다. 폐쇄적인 대물림 전승의 문을 열고, 좀더 큰 잔치판을 벌일 필요가 있다. 무대의 높이는 낮추고, 넓은 마당으로 춤판을 옮겨 우리 춤의 아름다운 춤사위를 더욱 많이 알려야 하는 것이다. 전세대가 이뤄놓은 성과를 딛고 올라서 새로운 접점을 찾는 시도 역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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