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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평화공동체’ 담론 활발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담론 활발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03.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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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교과서 집필진 후속 토론회 등

동아시아 공동체 담론이 다시 급부상하고 있다. 북미대립과 국경분쟁으로 나라 안팎이 조용할 날이 없는 와중에서도 한중일 삼국의 평화공존의 방안이 정치사회적, 역사문화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지난 4일 프레스센터에서 고구려연구재단이 개최한 국제학술대회 ‘동아시아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한중일 3국의 근대사인식 비교’는 △한ㆍ중ㆍ일 3국의 역사교육과 역사인식 공유방안(김한종·교원대),  △삼국의 근대화운동과 상호인식(왕현종·연세대)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한국  근ㆍ현대사’에 있어서 근대 ‘일상생활’의 서술을 둘러싼 분석(마쓰모토 다케노리, 도쿄대) 등 ‘한중일 함께 쓴 미래를 여는 역사’의 공동 집필진인 참가자들이 상대편 역사인식에 대해 비판적 토론을 나눴다. 도교대 마쓰모토 교수는 “현행 한국역사교재가 식민지 조선을 재생불가능한 동토로 그리고 있고, 수탈론에 너무 집착해 거시적 시각이 부족하다”는 요지의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또한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논의도 뜨겁다. 기존의 동아시아 논의가 인문학의 영역에서 주도돼 왔다면, 이번의 것은 사회과학의 영역에서 기존 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비롯되고 있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학, 아세아문제연구소장)는 지난 12월 '아세아연구'에 실린 ‘동아시아 공동체의 이념적 기초’에서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가 지나치게 비정치적 이슈 중심으로 실체 없이 논의돼 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북핵문제, 국경분쟁 같은 정치적 영역에서 콘센서스를 이끌어낼 공동의 의미지평에 주력할 것”을 요구했다.

여기에 화답하듯 ‘창작과비평’ 봄호에서는 ‘동아시아 평화구축과 87년 체제의 극복’을 주제로 한 좌담회가 실렸다.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의 사회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현대사), 박형준 전 동아대 교수(한나라당 국회의원) 등이 나와 최근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의 변화와 관련한 한국의 전략이 논해졌는데 참석자들은 현재의 동아시아를 "냉전이 종식되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가능케했던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이 지역이 강대국들의 새로운 헤게모니 대결의 각축장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점에 일단 요즘 학계의 인식이 모이고 있음이 드러났다. 박 의원이 정치인의 입장에서 아주 현실적인 국내외의 힘의 관계를 요령있게 설명한 반면, 학계의 의견은 다소 방향감이 없었다. 평화에 대한 보편적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한 교수의 주장, 창비 측이 정의한 오늘날 한국의 정치사회구조를 뜻하는 '87년체제'는 동아시아의 평화구축을 위해 극복돼야 할 국내의 상황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정의가 불분명할 뿐아니라, 좌담의 주제와 어울리지 않았다.

이어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중국학)는 인문학이 주도한 동아시아 담론과 사회과학자들의 동아시아 협력체 논의를 연결시키는 고리를 모색했다.

 
현재 한국발 동아시아 담론은 현재 이웃의 충분한 피드백을 받고 있지 못하다. 중국은 자국의 경제 발전과 정치적 통합에 몰두해 있고, 일본 또한 동남아 아세안을 관리하는 일과 미국과의 우호적 관계맺기에 여념이 없다. 이는 '황해문화'가 지난 겨울호에서 중국의 신좌파 지식인들인 왕후이, 쑨꺼, 췌이즈위안 등을 초청해서 토론회를 벌였을 때 그들이 보였던 반응에서 잘 드러난다.

중국에서 '동북공정'은 "수많은 공정들 중의 하나일 뿐"이며 이른바 '거대중국 만들기'의 메인 프로젝트가 아니라 한 지방의 프로젝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지방대 교수들의 연구비타먹기에 불과하다는, 중국 전체가 자본의 논리에 의해 돌아가기 때문에 모든 "공정"이 정부에 의해 치밀하게 짜여져서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지적은 한편으로는 한국의 과잉대응이 다소 멋쩍다는 느낌을 안겨주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의 지식인들을 적극적으로 '동아시아 평화당위론'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을 인식시켜줬다.

지금까지 상황은 한국발 동아시아 담론의 현실성에 우려를 갖게 하기도 하지만, 국가 차원의 불협화음과 엇갈린 코드가 비칠수록, 화해에 기반한 역사인식을 통한 한중일 지식인들의 만남은 더욱 값지게 다가온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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