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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출판 : 도서출판 길 '코기토총서’ 펴내
화제의 출판 : 도서출판 길 '코기토총서’ 펴내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02.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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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출판의 ‘자생성’

웬만한 학자들에게 도서출판 길의 이승우 씨(사진)는 낯선 이름이 아니다. 그는 한길사의 간판 총서인 ‘한길그레이트북스’를 비롯해 김상봉, 이삼성 등의 학자를 주목케 한 ‘신인문총서’, ‘위대한 한국인 총서’를 기획한 장본인이다. 그가 한길사를 그만두고 독립한 것은 지난 2003년 중반이었고 2003년 말 첫 책으로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을 펴냈다. “인문출판에서 확실한 내 색깔을 내고 싶다”라는 게 독립의 이유였고, 지난 1년여간 부지런히 번역학술서 3권, 국내학술서 1권을 펴냈다. 특히 이운구 성균관대 교수의 ‘동아시아 비판사상의 뿌리’는 평생 제자철학을 연구해온 원로교수의 내공이 담긴 제자사상의 포괄적 조명서였다.

1인 출판으로 이 정도 실적이라면 한길사에서 키운 내공이 대단하다 하겠지만 그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코기토총서’라는 어마어마한 학술프로젝트를 들고 학자들 앞에 나타났다.

“한길그레이트북스를 마무리 못하고 나와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정통인문학의 베이스를 까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니까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겠더군요. 예전의 실수들을 거울 삼아 고전들을 펴낼 생각입니다.”

‘장자Ⅰ’라는 신간을 품에 안은 채 그가 꺼낸 첫마디다. 알다시피 ‘장자’는 십수종 넘게 번역돼 있지만 대부분 문학 전공자의 번역이고 철학전공자에 의한 것은 전무했다. 이번 번역은 장자를 30년 동안 연구하고 올해 정년을 맞는 이강수 연세대 교수가 본격적으로 착수해 완성한 책이다. ‘장자’를 內篇, 外篇, 雜篇의 세권으로 나눠서 두툼하게 펴내는데, 외편과 잡편은 6월경 완간된다.

이 책의 강점은 곽상, 성현영, 최선, 상수, 사마표, 선영 등의 정통적인 옛 주석서와 조초기, 왕숙민, 전목 등이 이룬 현대의 연구성과들을 토대로 종합하고 정리하면서 한 글자 한 구절을 꼼꼼하게 해석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각 장마다 분장을 하고 대의를 정리해 원문의 흐름을 알기 쉽고, 한글로 음역하고 전공자들도 많이 틀리는 정확한 ‘현토’를 달아 율동감 있게 읽어나갈 수 있게 했다. 이 책 한권이면 ‘장자’는 다른 텍스트가 필요 없게끔 작업을 했다는 것.

“우리 번역의 문제는 ‘결정판’이 없다는 겁니다. 중역, 오역, 비전공 번역 등 한가지씩 걸리죠. 제 꿈은 결정판을 만드는 것입니다.”

코기토총서는 현재 아도르노의 ‘미니마 모랄리아’와 맑스·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아도르노의 책은  최문규 연세대 교수(독문학) 번역으로 솔출판사에서 나왔지만(‘한줌의 도덕’) 번역 문제가 많아 전공자인 김유동 교수가 다시 맡았고, ‘공산당선언’은 백산서당판, 박종철출판사판, 책세상문고판이 번역이 잘 돼 있지만 또 내는 이유로 그는 “영한대역은 물론, 독일어 원문도 병행해 싣고, 특히 1998년 에릭 홉스봄이 장문으로 발표했던 ‘공산당선언’ 해제를 자세한 해설과 함께 게재하려 합니다”고 설명한다.

그 외에도 불교학자인 고유섭 동국대 교수가 일연의 ‘삼국유사’를 국내 최초로 불교사상적 측면을 꼼꼼히 고려해 번역에 착수했고, 영어판 중역인 까치판 ‘군주론’을 마키아벨리에 정통한 곽차섭 부산대 교수가 번역하고 있다. 또한 칸트가 자신의 미학이 ‘긴가민가’ 할 때 자주 참고한,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보수 사상가로만 알려진 에드먼드 버크의 미학저술과 바흐친의 뛰어난 논문들을 모아놓은 ‘말의 미학’도 잡혀있다.

만약 창비나 한길사가 이런 작업을 한다면 그건 큰 뉴스가 아니다. 하지만 1인 출판으로 이만큼 큰 출판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간다는 것 자체가 한국 인문출판의 자생성을 다이내믹하게 보여주는 현장인지라 감동적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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