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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남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남
  • 박명용 대전대
  • 승인 2005.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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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 이 책을_ '해가 많이 짧아졌다'(김종길, 솔 刊, 2004, 128쪽)

“먼 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선다. // 사물의 명암과 윤곽이 / 더욱 또렷해 진다. // 가을이다. // 아 내 삶이 맞는 / 또 한 번의 가을! // 허나 더욱 성글어지는 내 머리칼 // 해가 많이 짧아졌다.”

위 시는 원로 시인 김종길이 8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시집‘해가 많이 짧아졌다’의 ‘가을’이란 제목의 시 전문이다. 감정의 수다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있어 이 시집은 오랜 기간 곰삭은 시인의 삶이 절제된 감정으로 차분하게 짜여져 있어 시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이 시집은 인생의 늦가을이라고 할만한 연륜에서 보여주고 있는 과거에 대한 담담한 반추, 그리고 “해가 많이 짧아”질수록 삶의 윤곽이 더욱 또렷해짐을 절실히 느끼면서 ‘또 한 번’씩의 ‘가을’을 맞는 경건함 등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음미하게 해준다.

여기에서의 해는 하루의 해를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사계절의 순환, 나아가 사계절에 따라 유동성을 지닌 ‘하루 해’의 길고 짧음, 더 구체적으로는 ‘인생의 길이’를 말한다. 그래서 이 시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인생행로의 말미에서 바라보는 계절의 ‘말미’에 대한 허무의 그림자 ―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다. 그러나 “또 한 번의 가을”이 주는 경이로움, 그것은 말년에 이르는 동안 깨달은 인생의 순리라는 점에서 결코 ‘가을’이 ‘헛된 가을’, 즉 헛된 삶이 아니었음을 환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밤이 깊어갈수록 / 시계 소리는 더욱 또렷해진다. // …… 내 유한한 생명의 소모를 / 냉엄하게 계산하는 시계 소리에 / 유심히 귀 기울이는 밤.” (‘풀벌레 소리’)에서도 볼 수 있듯 세월에 대한 불가항력, 그리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자체는 어쩌면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아우르는 생의 참모습으로 비춰진다.

또 하나 이 시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無邪’에 있다. 여기에서는 일생을 오직 학자(영문학)로, 시인으로 살아오면서 누구보다도 고고하게 살고자 했던 시인의 맑고, 깨끗한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스페인 출신으로 불란서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화가로 활동했던 미로(Miro)의 작품을 보고 나서면서 ‘思無邪’를 떠올린 것은 “詩三百을 통틀어 / 공자가 생각한 그 한 마디 말이 / 사실은 미로의 그림과 조각에 /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詩三百 思無邪’와 미로의 그림을 비교하면서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것은 / 생각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을 통하여 “미로의 작품들에는 / 아무런 생각도 없어 보였다."고 자신을 슬쩍 드러낸다. 그리곤 곧 “생각 이전의 / 꿈과 무의식의 천진스런 잔치, / 그 잔치에 개념이니 의식이니 하는 것들이 / 감히 발을 들여” 놓지 못했기에 “미로를 두고 / ‘思無邪’라는 말을 떠올린 것은 / 나의 잘못된 선입견 탓이었다.” 그래서 “미로는 ‘思無邪’가 아니라 바로 ‘無邪’였다.”고 고백한다.

여기에서 시인은 思無邪에 대한 반성, 즉 일생을 살아오면서 의식적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思無邪가 헛된 것이거나 소용이 없음을 알고 이 보다는 “사특함이 없다”는 무의식적 순수가 더욱 더 소중하다는 점을 내비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노시인의 깨달음이 ‘思無邪’에서 ‘無邪’의 경지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빈 허공에서 들리는 큰 울림 ― 삶의 감동과 시의 참맛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박명용 대전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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