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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은 이미 한국적 예수다"
"보살은 이미 한국적 예수다"
  • 최철규 기자
  • 승인 2005.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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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보살예수’(길희성 지음, 현암사 刊, 2004, 312쪽)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핵심 사상을 비교하면서 두 종교간 장벽을 뛰어넘어 깊이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책이 나왔다.

학문적·신학적·대중적으로 종교간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노력해온 저자는 그리스도교를 모태신앙으로 한다. 그러나 그는 중세 가톨릭의 신비주의 수도사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사상을 통해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창조적 만남’이 가능함을 확인하고, 종교다원주의의 입장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과 교류를 주선해 왔다.

이 책은 저자가 2004년 봄에 ‘새길기독사회문화원’이 주최한 제7회 일요신학강좌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란 제목으로 10회에 걸쳐 강의한 내용을 다듬어 편집해낸 것이다.

저자는 ‘현대 그리스도교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가’라는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한다. 그리스도교가 ‘세계 종교’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지만, 종교의 양적인 팽창에 비해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가 현실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불교와의 만남을 통해 그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불교가 단순히 한국의 문화전통에서 주류 종교로 자리 잡아 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나 현대의 정치철학자 찰스 테일러에게서 보듯이, 서구사상의 정수로 자리 잡은 그리스도교에 회의하는 많은 서구 지성인들이 오래전부터 불교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즉 이미 불교는 “신학적으로나 영성적으로 그리스도교에 가장 큰 도전이 되고 심대한 변화를 줄 수 있는 종교”인 셈이다.

물론 두 종교의 차이가 무시될 수는 없다. 특히, 종교의 핵심인 존재론과 구원론에서 양자는 구분되는 논리를 보인다. 불교의 궁극적 구원인 ‘열반’은 無我的 성격을 갖지만, 그리스도교의 구원인 ‘부활’은 有我的 구원이다. 또한 그러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 부처는 “진리와의 두려움 없는 대면”을 강조한 반면, 예수는 “하느님과의 직접 대면”을 강조했다. 문제는 이러한 차이점이 각 종교의 소통 가능성 모색시도 보다는 반목과 배타감 조성에 과장되고 왜곡된 채로 활용돼 왔다는 점이다.

저자는 ‘참 자아’에 대한 두 종교의 동일 지향에서 대화의 기반을 찾아내고 ‘보살예수’라는 독특한 융합체를 제시한다. “보살의 참 자아와 예수의 참 자아는 모두 타자와의 관계속에서 형성되고 살아가는 열린 존재입니다. 자기상실을 통한 자기회복, 자기부정을 통한 자기긍정, 죽음을 통한 참다운 생명, 이것이 보살과 예수의 존재의 비밀입니다.”

다른 한편, ‘보살예수’는 불교적 전통이 강한 아시아 문화권에서 그리스도교를 수용하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예수의 실천과 지향이 보살의 그것들과 다르지 않다면, 예수는 서구의 보살이고, 반대로 보살은 ‘이미’ 한국의 예수다. 저자는 이러한 시도를 “아시아적 그리스도론”이라 한다.

종교의 차이가 지역적 유혈투쟁을 야기하는 현대의 종교 현실에서 ‘보살예수’론은 ‘무지’로 인한 대립을 지양하고, 상호 이해와 존중의 틀을 통해 ‘창조적으로 공생’할 수 있는 종교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다.

최철규 기자 hisfuf@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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