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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필체로 그려낸 로마 제정 타락의 역사
문학적 필체로 그려낸 로마 제정 타락의 역사
  • 최철규 기자
  • 승인 2005.01.07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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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리뷰_ ‘타키투스의 연대기’(타키투스 지음, 박광순 옮김, 범우 刊, 2005, 766쪽)

로마의 역사가이자, 정치가 그리고 문학가이기도 한 타키투스의 ‘연대기’가 전문번역가인 박광순씨에 의해 번역돼 나왔다. 타키투스는 독일 고대사 연구의 첫 번째 사료인 ‘게르마니아’로 잘 알려져 있는데, ‘연대기’는 그의 만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총3부 18권으로 구성된 ‘연대기’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서거(서기 14년)부터 네로 황제의 사망(서기 68년)에 이르기까지 약 55년간의 로마 제정 초기의 역사를 그려낸 작품이다. 1부 6권은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2부 6권은 칼리굴라와 클라우디우스 황제에게, 3부 6권은 네로에게 바쳐졌다.

그러나 현재는 그 3분의 1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의 자료가 유실됐는데, 후대의 사가들은 유실된 부분에 세야뉴스의 몰락이나 네로의 자살 등 타키투스의 취향에 걸맞는 내용들이나, 제정 초기의 기록들이 적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이번 역서는 총4부로 편제돼 있다. 제2부 중에서 원전이 분실된 부분을 역자가 따로 떼내어 다른 작가의 작품들을 참고하여 연대기 식으로 첨가했기 때문이다.

‘연대기’의 확실한 제명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제1권부터 6권까지의 유일한 사본인 제1메디치본은, 각권의 서두에 ‘신군 아우구스투스의 서거 이후부터’라고만 적혀 있을 뿐, 그것이 본제인지 부제인지 확실하게 알려진 바가 없고, 제11권부터 16권까지 가장 보존이 잘된 사본이라 할 수 있는 제2메디치본에는 제명이 아예 없다. 현재 일반적으로 알려진 ‘연대기’라는 제명은 16세기 라틴학자인 리프시우스가 제창한 것이다.

역대의 사가들은 역사가로서의 타키투스에 대해 양면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생생한 묘사와 역동적이며 간결한 문체에 의해 타키투스의 문학성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의 기술이 과연 역사서술로서 신뢰할 만한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연대기’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한 논쟁이 진행중이다. 그러나 최소한 연대기를 작성하기 위해 타키투스가 기본적인 사료 수집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점은 지적될 필요가 있다.

그는 원로원 의사록, ‘국민일보’, 공공의 명각문, 타인의 회상록이나 자서전, 풍자시나 낙서, 서한집, 연설집 등의 풍부한 1차 사료를 참고하였다. 또한 大 플리니우스, 클루비우스 루프스, 파비우스 루스티쿠스, 마르쿠스 세나카 등의 역사서들을 2차 자료로 꼼꼼하게 참고하고 있다.

‘연대기’의 문체는, 이전 타키투스의 작품들과 다소 차이를 보인다. 타락해 가는 로마제정 당시,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지배계층의 부패와 고발의 내용들을 나열해 가기 때문에 다소 단조로운 묘사로 읽혀질 수도 있다. 또한 사회를 견인하는 정치의 역동적이며 활기찬 모습이 배제되고 지배층의 권력술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는 우울한 편이다. 이는 타키투스 최초의 저작으로 긍정적이며 진취적인 의식을 균형 잡힌 깔끔한 문장으로 전개한 ‘웅변가에 관한 대화’와 비교하면 금방 눈에 들어난다.

‘연대기’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타키투스는 ‘제정에 의한 자유의 억압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도덕적인 타락’을 시대의 화두로 삼고, 권력 부풀리기에 전념하는 황제, 이에 붙어 호가호위하는 간신, 직업적 고발자 등을 주요 등장인물로 제시하고 있다. 즉 황제와 그 측근 그리고 원로원간의 온갖 정치적 술수를 둘러싼 갈등과 음모를 통해 본 로마 제정이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고대인은 역사서술의 기교를 서사시나 비극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는 지적처럼, 문학적으로 뛰어난 문체와 생경한 묘사로 정평이 난 타키투스이기에 이 책에서 그려진 칼리굴라와 네로의 타락상은 후대인들의 양 황제에 대한 인상을 강력하게 주조하는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일부 현대 역사가들은 “타키투스가 수도 로마의 사건들에 마음을 빼앗겨 로마제국을 무시하고 있다”라며 그가 대상으로 삼은 시대의 역사 현상을 모두 취급하려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예컨대, 제국의 지탱에 필요한 노력과 희생의 대부분을 담당한 당대 하층민들의 생활상 등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역사 기술의 요건을 짚는 이러한 지적의 타당성을 십분 받아들이더라도, 일차적으로는 ‘연대기’를 통해 타키투스가 제시하고자 했던 발언, 즉 그의 역사의식의 측면에서 이 책을 바라볼 필요성도 간과할 수는 없다.

타키투스는, 역사의 중요한 과제는 “미덕을 망각에서 구해내고 악덕에 낙인을 찍음으로써 과거에서 교훈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즉 역사란 현재의 단순한 거울을 넘어선 준엄한 도덕 교과서일 필요가 있다는 것. 따라서 로마 지배층의 현실 묘사로 로마 제정을 기술한 그의 시도는 교훈적 역사관을 피력하기 위한 타키투스의 ‘의도된 장치’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후대인들이 역사가로서의 타키투스를 기억하고 조우하려는 시도를 지속하는 것에는 이러한 그의 역사관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만약, 포괄성의 의무에 충실하게 단순히 역사적 사실들을 그러모아 놓은 역사서라면 굳이 타키투스의 이름을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지, 당대의 역사를 전공하는 전문학자들의 참고문헌에서나 1차 혹은 2차 사료의 주인으로 거론되면 그만이다.

한편, 다른 역사가들은 유실된 부분에서 지배층 이외의 기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제시하기도 한다. 이는 역사가로서의 타키투스를 연구하기 위해 향후 지속적으로 조명돼야 할 부분이다.

최철규 기자 hisfuf@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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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fuf 2005-01-31 14:46:35
일러두기에서 나와 있는 교정본 및 번역본은 여섯권 가량인데, 주로 브리태니커판(1952)과 펭귄문고(1996)을 중심으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이와나미 문고판도 참고를 했는데, 특히 주해 부분에서 많이 참고를 했다고 합니다.

궁금 2005-01-31 02:18:14
박광순 씨는 이제까지 일본어로 중역하는 번역자로 알고 있는데, 이번 번역도 역시 일본어 중역인지요?

중역이라면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한국 학계 현실이 딱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