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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획_ '한국 과학자 사회' 분석한다
과학기획_ '한국 과학자 사회' 분석한다
  • 강성민·최철규 기자
  • 승인 2005.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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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괴리된 과학담론…내부 구조·문화 분석해야

과학자 사회는 우리 사회에서 공개되지 않은 유일한 영역이다. 과학자도 잘 모르는 게 과학자 사회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과학윤리’나 ‘과학의 사회적 의의’ 등을 과학자 사회에 요구하고 있다. 유령에게 요구하는 것인가. 수용 대상에 대한 이해 없이 추상적 당위성은 소모적이며 불합리한 담론의 지속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과학자 사회의 내부 구조와 문화, 정신 등에 대한 최소한의 파악이 필요하다.

1. 과학자들이 폐쇄적인 게 큰 문제인가

‘과학의 민주화’를 요구하거나 ‘과학 지식의 절대화’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굳게 잠긴 과학의 빗장은 여전히 묵묵부답인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과학의 폐쇄성을 비난하는 주장들이 과학자 사회의 현실을 무시하는 일방적인 요구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열악한 연구 환경에서 연구 그 자체에 집중하기도 어려운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과학의 개방만을 요구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최근 이공계 위기담론에서 보이듯이, 과학자 사회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경험이 부족했던 것도 현재의 ‘폐쇄성’을 구성한 역사적 현실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일면적으로 과학자 사회의 폐쇄성을 비난하기보다는 과학계 외부가 스크린해주는 모습을 과학자들이 관찰함으로써 자기점검을 통해 점차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도록 하는 공동의 노력이 전개돼야 한다.

2. 다양한 정체성을 분류, 분석해서 전체를 보자

한국의 과학자 사회는 1960년대에 학회 등의 조직신설로 초기 인프라가 형성됐다. 그러나 지나친 학회 분화와 리더십 부재로 전체 과학자들의 의견을 조정하거나 수렴할 수 있는 구체적 장치는 미비한 채, 개별적으로 당면 이슈를 관리해 왔다.

종합관리능력을 지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서 전체로서의 과학자 사회를 고민하고 대외적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만은 않다. 이은경 전북대 교수(과학기술사)는 “과학자 사회를 단일 공동체로 규정하기 전에, 그 내부의 이질적 문화에 기반 한 정체성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한다. 연구와 실험이라는 공통점 이외에는 수도권-지방, 대학-정부연구소-기업연구소, 교수-강사-학생, 남성-여성 등의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으로 과학자 사회가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로서의 과학자 사회상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화적 정체성을 특징별로 일별하고, 그 차이들의 공존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3. 협동연구의 현황 점검

학제간 접근에 대한 유행에서 과학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인문사회과학분야와의 융합적 접근 모색뿐만 아니라 BT나 NT 등 다양한 과학 분야간의 학제간 담론도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다. 그러나 강재효 서강대 교수(화학)는 “학제간 연구는 외부의 시각에서 장려되거나 강요되기보다는, 연구자의 필요성에 의해 자발적으로 수행될 문제”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선진국 모방하기식의 당위성 제시가 아니라, 각각의 분과 영역의 발전 상태에 대한 내부적 고찰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학제적 접근의 필요성이 무르익은 영역에서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이영백 한양대 교수(물리학)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서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 학제간 접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도 힘든 상태”라고 말한다.

4. 메타과학의 역할

과학사회학이나 과학학, 과학사 등 학문으로서의 ‘과학’을 연구하는 메타학문들이 최근 들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과학자들로부터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데, 한 과학자는 “인문학으로서의 과학학이 과학을 보는 시각에는, 과학을 왜곡시키거나 변질시키는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박진희 가톨릭대 강사(과학기술사)는 “국내의 메타과학들이 연구 초창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이호중 한국과학사학회 회원(장물리론)는, “한국의 메타과학들이 외국의 추상적 담론으로서의 과학학을 수입하는 것에 그치고 한국의 과학현실에 대한 실증 분석을 결하고 있는 것에서 과학과 메타과학간의 괴리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라고 분석한다. 무엇보다도, 과학과 과학학이 대화할 수 있는 논의 공간조차 부재하다는 점이다. 양자의 생산적 조화를 위한 필요조건들에 대한 탐구가 진행돼야 한다.

5.‘최초·최고’ 담론에 사로잡힌 과학계

‘최고’라는 수식어를 중심으로 과학기술이나 과학자 사회를 평가하는 사회의 경향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기술의 실용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단순 수치 비교만으로 ‘최고’를 규정하고 그것에 안주한다는 것이다. 기술영향평가가 발달한 외국에서는 연구개발이나 실험 단계에서 지속적 평가를 통해 지속여부를 판단하고 부적절할 시 과감히 중단한다.

문제는 선진국 기술 따라잡기 식으로 전개된 한국의 상황이다. 적지 않은 기술개발이 외국의 흐름을 쫓아서 이뤄지게 되는데, 외국에서는 50% 수준에서 불합격 판정으로 폐기된 개발을 70%까지 추진해 놓고, 그것만으로 세계 최고 기술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형국이다. 실질적인 기술영향평가제도의 정착화를 통해 실용성 있는 기술개발을 감별해 낼 수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6. 과학신문이 필요하다

과학자 사회가 기업이나 정부에 의존하지 않는 영향력 있는 사회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언론 활동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일간지나 주요 방송매체에서 ‘과학’은 계륵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취급을 안 할 수는 없지만, 정작 전문적인 과학기자 육성에 예산을 투입하기는 아까운 존재인 것이다. 각종 매체를 통해 벌어지는 과학대중화 운동도 대부분 관 주도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과학자 사회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자들도 한국 과학의 현실을 모르는 것이 정말로 큰 문제다.

무엇보다도 과학자가 주체가 되는 매체가 요구된다. 과학 전문 언론인 양성 기관 설립을 통해 이공계의 유효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자의 저널리즘 활동을 “쓸데없는 짓”으로 바라보는 과학자 사회 내부에서 현황과 과제를 위한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

7. 베일에 감춰진 실험실 문화

대부분 도제관계로 운영되는 실험실은 분야, 인적구성, 운영 책임자의 리더십 등에 따라 그 문화적 특색이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그간 과학자 사회는 연구비나 강의 등에만 논의를 집중하고 실험 결과의 효율성만 주목했을 뿐, 실험실 문화 자체에 대한 논의를 통해 과학자 사회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 과학자 사회의 실험실 문화는 여전히 ‘지도자 의존적’ 성격이 강하다. 교수나 연구책임자가 어떠한 운영마인드나 인간관계에 관심이 있는지에 따라 실험실의 전체 문화가 크게 좌우된다. 따라서 이러한 특성의 문화가 지니는 장단점을 연구와 실험의 질적 효율성 측면에서 검토하고, 효과적인 인적구성을 위해 필요한 환경과 요소들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8. 과학자들의 인터넷 문화 점검

온라인 커뮤니티가 단순한 정보 전달의 수단을 넘어서서 자료 공유나 뜨거운 논쟁을 가능케 하는 담론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과학자 사회도 온라인 공간에서 연구와 실험이나 다양한 활동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독특한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를 형성해 가고 있다.

학술, 과학정책, 시민참여 등으로 그 유형도 다양하다. ‘과학기술과 사회’ 연구회의 커뮤니티는 국내외의 많은 자료를 공유하고 연구자들간의 활발한 논의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의 홈페이지는 젊은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정부의 주요 과학정책이나 과학계 현안에 대한 공론장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시민참여연구센터’의 홈페이지는 현실 참여적 과학활동을 기반으로 과학과 시민사회간의 매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영백 한양대 교수(물리학)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특징과 장점 분석을 통해 과학자들의 사이버 문화를 관찰하고 이를 전체 과학자 사회의 새로운 문화 형성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9. 과학의 세계화, 어떻게 할 것인가

윤정로 과기원 교수(과학사회학)는 “SCI 인용지수나 대학순위매기기 식으로 세계화를 접근하지 말고 후발국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계화 담론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한다. ‘과연 무엇이 과학의 세계화인가’에 대한 논의가 부재한 상태에서, 단순히 ‘세계적 경쟁력’ 확보만을 세계화로 인식하는 현황을 꼬집는 말이다.

형식적인 세계화 구호는 과학 내적인 분야에서 실험 그 자체가 지니는 특수성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성민 충남대 교수(조류학)는 “생물학이니 지질학 등의 경우, 그 실험 대상은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담고 있는데, 공허한 세계화 경쟁력 논의에 가려져 이 분야가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강성민·최철규 기자 editor@kyosu.net

* 자문에 참여해 주신 분들(순서는 가나다 순)

강윤재(고려대·과학기술사회학), 강재효(서강대·화학), 강한영(충북대·화학), 김기현(세종대·대기환경), 김병수(홍익대·과학기술사회학), 김선태(대전대·대기환경), 김준호(인천대·물리학), 박진희(가톨릭대·과학기술사), 부성민(충남대·조류학), 송성수(과학기술정책연구원·과학기술사), 송위진(과학기술정책연구원·기술혁신이론), 윤정로(과기원·과학사회학), 이덕환(서강대·화학), 이영백(한양대·물리학), 이은경(전북대·과학기술사), 이한웅(성균관대·분자생물학), 이호중(한국과학사학회·장물리론), 전용훈(서울대·과학기술사), 정창수(광주과기원·광과학), 조진수(한양대·유체역학), 홍주봉(서울대·식물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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