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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보도> SCI의 타당성을 묻는다
<과학보도> SCI의 타당성을 묻는다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0.11.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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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 기준 맞춰 ‘줄서기’…논문평가 획일화 우려

 

과학기술계에 여러 차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SCI(Science Citation Index)는 과연 무엇인가. 97년 대학평가에서 주요 항목으로 기재되면서 점차 과학기술 분야에서 평가기준의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기 시작했고, 대학의 업적평가의 기준으로, 연구과제 선정에 객관적 평가자료로 제시되며 연구비 지원이나 평가시 절대 기준이 되고 있는 지표. 그러나 실제 SCI는 수치도 척도도 아니다. ISI(Institute for Scientific Information)라는 미국의 한 회사가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검증한 학술잡지의 목록과, 이 잡지들에 게재된 논문들 가운데 인용·피인용에 대한 상관관계를 데이터베이스화한 자료에 불과하다.

SCI 등재 국내학술지 20종

 

현재 SCI에 등재된 전체 5천8백80종의 잡지 가운데 국내학술지는 20종이며 게재된 국내 학자의 논문은 1만1천10편으로 세계 16위(1999년 기준)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95년만 해도 5천4백14편으로 23위였던 것을 상기하면 놀라운 성장속도가 아닐 수 없다. 가속도만으로 평가하면 한국은 세계 1, 2위를 다투는 모범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SI가 발표한 피인용도로 인해 국내 과학기술계가 동요하고 있다. 많은 논문이 생산되기는 하지만 내용이 알찬 논문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발표에 따르면 피인용도별 국가 순위는 지난 5년간 53위에서 60위로 오히려 떨어졌다. 그렇다면 늘어난 논문이 모두 수준미달이었다는 뜻인가. 평가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런 결과가 기실 SCI 자체의 구조적 문제와 한국 학계의 병폐가 만들어낸 합작품임을 알 수 있다.
“우려되는 것은 획일화되는 대학 연구 풍토이다”라고 SCI가 유일한 잣대가 되어버린 지금의 세태를 비판하는 박승오 한국과학기술원 교수(항공과학)는 그것이 ‘하나의’ 평가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구조적인 헛점에 있어서는 짚고 넘어갈 문제는 산적해 있다. SCI 목록을 수치화한 NSI(National Science Indicators)에는 과학기술부문이 80여 개로 분류되어 있다. 공학 및 컴퓨터가 17개, 생명과학이 17개, 물리·화학·지구과학 분야가 10개, 의학이 25개, 농업·생물·환경과학이 11개 분야를 차지한다. 유독 의학의 비율이 높은 것은 당초 SCI가 의학분야의 저널을 중심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는 의학과 생물학 분야에서 SCI 논문이 발표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피인용도 역시, 기초과학 분야의 논문은 생명력이 10여 년인 반면, 공학분야는 5년 내외이므로 직접 맞비교하기 곤란하다는 문제점 역시 무시되고 있다. 공학에 치중하는 국내 학계에서 자연히 피인용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때문에 SCI가 모든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평가기준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화여대 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있는 김원(전산학) 교수의 경우, “정보통신 분야에서 볼 때, 미국의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서는 여러가지 결함으로 인해 SCI를 인정하지 않는 추세”라면서 네 가지 이유를 덧붙인다. “학술회의 논문집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도 SCI에 포함되지 않으며, 정보통신 분야 저널 중에는 수준 미달의 것도 많을뿐더러, 논문 게재의 난이도나 등급이 무시되고 있고, 저널이 등록되는 과정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내부적 모순 이외에도 SCI 분석은 우리나라 과학기술 학계의 뿌리깊은 병폐를 드러낸다. SCI 평가를 분석한 한국과학기술원 정보개발팀의 소민호 연구원은 “논문게재수의 증가와 인용도의 하락이, 응용공학이나 과학분야에 치중된 연구때문에 상대적으로 논문생산이 인용도를 쫓아가지 못하는 형편에서 비롯되었다”며 “기초과학의 논문 백편이 응용과학의 논문 천편보다 인용도가 높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초과학의 부실이라는 오래된 고질을 그대로 반영한 평가라는 말이다.

게재논문은 늘었으나 피인용도는 감소

 

SCI에 학술지 등재가 되는 기준인 국제적일 것·정기적으로 발행할 것·논문의 심사위원들과 저자들이 지역적 대표성을 지닐 것 등의 틈새를 이용해 학술지등재를 하기 위한 로비도 치열해, 학문평가를 위한 객관적 수치의 기준이 정치경제논리로 흔들리는 현실적 한계도 존재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지난 2, 3년간 SCI 발표로 빚어진 동요는, 우리 과학기술계 내부에 객관적이며 세부적인 평가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필요성과 함께 외적인 평가에 동요되지 않는 ‘고집있는’ 학문풍토의 구축을 재촉하고 있다.
<이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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