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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과학자를 도울 수 있는가
철학은 어떻게 과학자를 도울 수 있는가
  • 정민기
  • 승인 2021.05.20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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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에서 유전학 공부중인 대학원생
철학 부전공 통해 창의력·논리력·윤리적 고려 배워

철학과 과학. 둘은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서양 철학사를 조금만 되짚어 보면 두 학문이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서양철학의 시초라고 평가받는 플라톤은 ‘이데아’ ‘정의’ ‘철학자 왕’과 같은 철학적 입장을 펼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플라톤은 영원불변의 우주관, 4원소설 등의 과학 사상을 남기기도 했다. 

근대 물리학의 문을 연 아이작 뉴턴 역시 힘과 물체의 운동을 간단한 수학 법칙으로 표현했다는 업적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뉴턴 물리학의 이면에는 목적론적 우주론과 신학이 결합된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현대에 접어들어 과학은 더 세분화하고 전문화하면서 철학과 거리를 두게 됐다. 현재 살아 있는 과학자 중에서 철학을 심도 있게 공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처럼 과학과 철학이 분리되는 현상이 과연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을까. 지난달 23일 『네이처』는 ‘철학은 어떻게 나를 더 좋은 과학자로 만들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표했다.

이 기사는 스코틀랜드 트리니티대에서 박사과정(유전 데이터 과학)을 밟고 있는 라샤 스레임 씨가 철학을 복수전공하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 내용을 담고 있다.

라샤 스레임 씨(스코틀랜드 트리니티대 박사과정). 사진=네이쳐
라샤 스레임 씨(스코틀랜드 트리니티대 박사과정). 사진=네이쳐

철학 공부가 준 4가지 무기

스레임 씨는 철학을 공부하면서 도움이 된 점을 크게 네 가지 들고 있다.

첫째, 철학은 창의적 사고를 기르는 데 도움이 됐다. 철학적인 주장은 대체로 사고 실험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고 설득력을 높이는데, 그 과정에서 가능한 모든 상황을 고려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스레임 씨는 시간 여행과 같은 물리학 가설이 갖고있는 모순점들을 사고 실험을 통해 살펴보면서 창의력을 길렀다고 했다. 

둘째, 철학의 여러 사상이 과학 연구에 유용한 관점을 제공하기도 했다. 스레임 씨는 ‘도구주의’라는 철학 사상을 예로 들었다. 도구주의란 과학이 세계의 근본적인 진실을 파헤치지 못하고 단지 자연을 예측하고 조작하는 데 활용되는 유용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입장이다. 스레임 씨는 도구주의적 입장을 갖고 실험을 할 때 보다 유연한 접근을 취할 수 있었다고 했다. 

셋째, 철학과 수업 중에 논리학을 배운 것도 과학 연구에 큰 도움이 됐다. 스레임 씨는 석사 과정에서 컴퓨터 코딩을 이용하는 전산 과학으로 전과를 했는데, 이때 논리학에서 배운 내용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또한, 실험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을 보다 논리적으로 따져볼 수 있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철학과 논리학 수업에서는 연역과 귀납의 차이점을 가르치고 이를 구분해서 사용하는데 스레임 씨는 과학 수업에서 이 내용에 대해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고 했다. 스레임 씨는 논리학을 배운 뒤로 실험 결과에서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을 더욱 정교하게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철학은 과학 연구에서 윤리적 고려를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스레임 씨는 철학과 윤리학 수업을 통해 과학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때 고려해야 할 점들은 무엇인지 배웠다고 했다. 예를 들면 유전자 조작 아기와 같은 문제에 대해 과학자로서 윤리적 책임감을 기르게 됐다고 했다.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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