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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서 우울하다고?
여자라서 우울하다고?
  • 교수신문
  • 승인 2021.04.1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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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아 지음 | 개마고원 | 224쪽

여성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의 몫

2020년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이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었다. ‘코로나 블루’의 영향이 컸지만, 사실 우울증 환자는 그전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2010년에 64만 명이었던 환자는 2019년에 96만 명으로 이미 100만 명에 육박했다.
그런데 남녀 성비 차이가 상당히 크다. 우울증 환자 중 여성은 66%, 남성은 34%로 거의 두 배 차이가 난다. 게다가 증가세도 여성이 더 가파르다. 2019년 대비 2020년 여성 환자의 증가율은 6.1%였는데, 남성 환자 4% 증가보다 높았다. 특히 20대 여성 환자는 2019년 대비 39.5%나 증가했고, 30대 여성 환자는 2019년 대비 14.8%가 증가해 젊은 여성층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왜 우울증은 증가하고 있을까? 그리고 여성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는 건 어째서인가?
이 책은 우울증이 사회적 질병임을 확인시켜준다. 우울증, 나아가 각 나라별 정신건강의 수준은 그 사회의 정치적 안정성, 실업률 등의 경제상황, 복지 수준, 성평등 수준 등에 따라 달라진다. 유럽만 보더라도 우울의 수준이 낮은 나라들은 북유럽이나 서유럽의 나라들이고 우울의 수준이 높은 건 동유럽 국가들이다. 여성이 더 우울하다는 사실 역시 사회적 여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여성이 경제활동 참여를 많이 하고 노동시장에서의 지위가 높은 나라들에서 여성과 남성의 우울증 격차가 적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남녀 격차가 더 커진다. 미국에서는 경제적 자율성 외에도 재생산에 대한 여성의 권리(즉 낙태에 대한 권리)가 보장된 주에서 여성의 우울 수준이 낮았다.
기존의 여러 우울증 관련 도서들은 우울증의 생물학적·뇌과학적 원인을 설명하거나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한 심리학적 조언을 담은 것이 대부분이다. 누구나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며 위안을 주는 우울증 환자의 체험기들도 있다. 그런데 이런 관점은 우울증을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한 개인의 질병 정도로만 보게 하는 문제가 있다. 우울증을 유발하는 사회문화적 환경과 구조에 대한 고민과 논의는 묻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울증의 근본원인도, 그리고 여성이 더 많이 우울한 이유도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무엇이 여성을 우울하게 만드는가

① 지위는 낮고, 감정노동은 많은 여성의 직업
직장에서 자율성이 없고 남의 통제를 받을수록 정신건강은 나빠진다. 그런데 여성이 많이 일하는 직업이 그런 것들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비정규직 종사 비율이 높고(2020년 기준 남성 임금노동자의 29.4%가 비정규직, 여성은 45%가 비정규직), 여성 관리직과 임원 비율은 낮다(2019년 기준 여성 관리직 비율은 21.6%, 임원 비율은 4.5%). 직종으로 봐도, 교사?간호?서비스업?콜센터?돌봄노동 등 감정노동이 많이 필요한 것들이다. 감정노동의 강도가 세고, 직무에서의 통제력은 약할 때 경험하는 스트레스의 정도는 커진다.

② 독박육아: 전업주부가 워킹맘보다 더 우울하다
직장에서도 일해야 하는 워킹맘이 집에서 살림하며 애 보는 전업주부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유아기 자녀를 둔 워킹맘과 취업하지 않은 엄마를 비교한 연구는 직장이 있는 엄마의 양육 스트레스가 더 낮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영아를 둔 여성을 비교해도 워킹맘이 전업주부로 있는 엄마보다 자기효능감과 자기존중감은 높았고 우울과 양육 스트레스는 낮았다. ‘독박육아’보다는 일을 하는 것이 육아 스트레스를 덜고 스스로의 자존감을 올려주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③아이를 사랑할수록 스트레스도 크다
모성애는 만능이 아니다. 아이를 사랑한다고 해서, 양육이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수록 스트레스가 커진다. 한 연구에서는 자녀가 주는 정서적 만족이 높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우울도 높았다. 아이를 위해 시간을 많이 보낼수록 우울과 부정적 정서상태도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회에서 양육이 엄마만의 고유한 일로 여겨질수록, 엄마들은 힘든 걸 내색하지 못하고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그렇게 될 때 속은 남모르게 썩어들어간다.

④ 남성노인의 혼밥과 여성노인의 혼밥 사이의 차이
혼밥은 노인들에게서 우울 수준을 높인다. 하루 두 끼 이상을 혼자 식사하는 노인은 항상 누군가와 같이 먹는 노인보다 우울 수준이 높았다. 그런데 이는 남성노인들에게만 해당한다. 여성노인은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든, 혼자 먹든, 이에 따라 우울 수준에서 차이가 없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남성노인에게 혼밥은 돌봄제공자가 없거나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걸 의미한다. 삼시 세 끼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마련해야 하거나 식사하면서 하는 대화할 사람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여성노인에게도 혼밥은 외로운 시간이다. 그렇지만 삼시 세 끼를 누군가와 함께 먹는다는 것도 여성에게는 긍정적이지 않았다. 여성노인에게 누군가와 함께 먹는다는 건 그만큼의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더 해야 한다는 의미일 수 있기 때문이다.

⑤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
범죄에 대한 두려움은 여성의 정신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성폭력 범죄가 그 핵심이다. 지난 10년 사이에, 살인·강도 등의 강력범죄가 줄어드는 동안에 성폭력 범죄는 1.8배가 증가했다. 여기에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N번방 사건 같은 젠더폭력 사건들은 여성들의 두려움과 불안을 더욱 증폭시켰다. 서울?경기 지역의 여자 대학생 91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밤길을 걸을 때 아무 특별한 일이 없어도 불안하다고 느낀 이들이 64.8%나 되었고, 누가 말을 걸거나 가까이에 올 때는 83.6%에 이르렀다. 택시를 탈 때나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이들은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며, 행동거지를 조심히 하려고 했다. 여성과 남성의 행복감과 삶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범죄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오히려 여성이 남성보다 행복의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여성의 삶에 대한 만족과 행복의 수준을 억누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자라서 우울한 세상’ 바꾸기

사회경제적 지위와 인종에 따른 정신건강의 격차를 이야기할 때는 아무도 호르몬으로 인한 감정기복이나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심리적 취약성을 원인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만약 실업자나 흑인이 생물학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더 스트레스에 취약하다고 주장한다면 아마도 거센 비판이 일어날 것이 뻔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여성의 우울을 이야기할 때만 뇌의 차이, 호르몬으로 인한 감정기복, 심리적 특성이 등장하고 이것이 중요한 원인으로 고려되는 걸까. -본문 74쪽

여성의 우울을 설명할 때는 유독 사회적 원인이 아니라 생물학적이거나 기질적인 원인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왜 여성이 살기 힘든 세상에서 여성이 더 우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인정하지 않을까? 최근의 ‘코로나 블루’는 정신건강의 문제가 사회적 환경과 조건에 영향을 받는 사회문제임을 명백히 보여주었으며, 그 피해가 성별로 불평등하게 주어진다는 것도 드러내주었다.
코로나19라는 예외적 상황이 보여주는 것은 평상시에도 해당된다. 여성이 더 우울한 이유는 여성이 겪는 삶에 있다. 『82년생 김지영』이 소설로서 그 사실을 보여주었듯이, 이 책은 사회학적 분석으로 그것을 보여준다. 제시하는 해법은 분명하다. 뻔하게 들리지만 이루기는 어려운 길, 성평등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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