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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마음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 교수신문
  • 승인 2021.03.2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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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경 지음 | 김영사 | 240쪽

일상의 사유 근간을 뒤흔드는 경이로운 시간!
수행하는 철학자가 밝힌 나와 세계 그리고 마음

불교의 핵심개념으로 나와 세계 그리고 마음의 실상을 밝힌 다섯 번의 명강의. 이 책은 2020년 불교방송 BBS에서 5회에 걸쳐 진행된 한자경 교수의 유식(唯識) 강의를 정리·보강한 것으로, 어렵기로 유명한 유식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여 남녀노소 불문하고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이 책은 방영 당시의 강의 언어를 그대로 살려 마치 강연의 현장에 앉아 있는 듯 지적 몰입감을 선사한다. 또한 일상과 맞닿은 예시와 다양한 비유로 독자들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개념을 명쾌하게 풀어내었다. 난해하고 복잡한 개념들은 50여 개의 직관적인 그림과 도표로 정리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촘촘하게 전개되는 논리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틈을 마련해두었다. 서로 물고 이어지는 핵심개념들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퍼즐을 맞춰나가는 듯한 지적 쾌감을 경험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어느 날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근원적 질문.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답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 법. 답을 찾았다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의문이 생기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점점 더 커져가는 답답함에 결국 대부분은 어느 지점에서 탐구를 멈추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40년이 넘도록 이 의문을 놓지 않고 서양철학부터 동양철학까지 모두를 아우르며 현재까지 연구해오고 있는 한자경 교수. 그 긴 시간 동안, 그가 찾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던지는 ‘마음’ 자체에서 그 답을 찾았다.

“'나는 누구인가?' 그러나 답이 쉽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찾고자 하지만 찾아지지 않아 마음이 텅 빌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공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경험하는 모든 것이 실은 인연 따라 일어나는 연기의 산물임을 직감하게 된다. 존재의 실상을 깨닫기 위해 우리는 수행을 하고, 그 결과 발견하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본래 마음이다. 이 마음이 곧 모든 것을 만드는 일체유심조의 마음이며, 자신의 빛으로 세계를 밝히는 공적영지의 마음이다.”_p. 7

1. 일상의 논리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공

우리는 가끔 같은 대상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것을 본다. 대상 자체에 보는 이의 주관이 개입되면, 알고자 했던 대상 자체는 뒤로 물러나고 결과적으로 나에게 알려진 것만이 대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저자는 게슈탈트심리학에서 자주 사례로 드는 [토끼와 오리] [루빈의 꽃병], 에셔의 그림 [천국과 지옥] 등 여러 예시를 들어 인식 결과의 차이와 그 이유를 심도 있게 조명한다. 그럼 대상 자체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것과 저것으로 규정되기 이전의 경계선이라고 말한다. 이 경계선은 어느 하나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 것’(a)과 ‘아닌 것’(~a) 사이에서 끊임없이 유동하는 경계선이다. 그것은 이것과 저것을 넘어서고, 이것과 저것이 모두 생겨날 수 있는, 분별의 사유가 모두 정지되는 지점인 ‘공(空)’이라고 할 수 있다.

“공으로서의 경계선은 유동하는 것으로서, 이것과 저것을 넘어서되 다시금 이것도 될 수 있고 저것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꽃병이 될 수도 있고 얼굴이 될 수도 있고, 또 악마가 될 수도 있고 천사가 될 수도 있지요. 이처럼 이것과 저것을 넘어선 공이되, 그것으로부터 이것과 저것이 모두 생겨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을 참된 공이면서 그것으로부터 일체가 생겨날 수 있는 묘한 유라는 의미에서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합니다.”_p. 36-37

2. 모든 것은 어떻게 해서 존재할까: 연기

우리의 일상의식, 즉 표층의식은 이것과 저것을 각각 독립된 별개의 것으로 나누는 실체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삶이 있기 위해서는 죽음이 있어야 하고 밝음이 있기 위해서는 어둠이 있어야 하듯이,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 아닌 것’이 있어야 한다. 이처럼 모든 것은 다른 것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하는 ‘연기(緣起)’의 산물이며, 독립된 별개의 것이 아닌 서로 끊임없이 의존하고 소통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 이러한 관계는 서로 안에 서로가 들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이로써 그것은 ‘그것 + 그것 아닌 것’ 즉 전체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모든 존재는 표층에서 보면 서로 다른 것으로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심층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포함하여 서로 다르지 않은 하나이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은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에 비친다는 말입니다. 강은 서로 다르지만, 그 안의 달은 모두 같은 하나의 달입니다. 천 개의 눈동자가 하늘의 달을 바라보면, 그 각 눈동자에 모두 동일한 하나의 달이 보이겠지요. 만 개의 영혼이 우주를 바라보면, 그 만 개의 영혼 안에 만 개의 우주가 그려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그려진 우주가 결국은 동일한 하나의 우주이지요.”_p. 76

3. 고통의 악순환은 어떻게 끊을까: 수행

불교에서는 태어나고 늙고 죽음을 겪으면서 생사윤회를 계속하게 하는 사건들의 흐름, 즉 삶의 고통 과정을 12지연기로 표현하고, 연기의 이 12가지 요소가 순차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순환고리를 이루며 끊임없이 고통을 재생산한다고 설명한다. 그럼 이 순환고리에 갇혀 고통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이 순환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두 가지 수행(修行)이 존재한다. 하나는 느낌에서 애착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명(無明)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느낌에서 애착으로 나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몸의 느낌을 관찰하고 이 느낌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다시 ‘알아차리는 수행’이 필요하다. 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음의 내용을 비워 자신 안의 ‘본성을 보는 수행’, 자신이 연기 너머의 존재임을 깨닫는 수행이 요구된다.

“12지연기에서 그 연결고리를 끊고 순환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느낌에서 사랑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명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집착하는 마음을 따르는 범부와 달리 느낌이 있어도 그다음 항인 애증의 분별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고, 또 어리석은 마음에 휘둘리는 범부와 달리 밝은 지혜를 얻어 무명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_p. 99

4. 마음은 어떻게 세계를 만들까: 일체유심조

유식에 따르면, 마음에는 경험을 통해 남겨지는 정보를 저장하는 심층마음이 존재한다. 우리가 우리 눈앞의 세계를 이런저런 것으로 경험하면, 그렇게 경험된 내용이 우리의 심층마음 안에 축적된다. 그렇게 축적된 정보는 우리 안에서 일정한 개념틀을 형성해가고, 그렇게 형성된 개념틀은 다시 세계를 보는 우리의 경험을 규정한다. 이러한 과정이 동일한 패턴으로 계속 반복해나간다. 세계가 그 자체로 존재해서 현재의 경험이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그 세계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내게 심어진 정보가 발현된 결과이다. 즉 표층의식이 실재세계라고 여기는 것이 실은 심층마음이 만든 가상세계라고 할 수 있다. 세계가 마음이 만든 가상이라는 것이 바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다.

“심층마음을 깨닫는다는 것은 곧 인생의 꿈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꿈을 깬다는 것은 곧 마음이 마음의 본래 자리에서 눈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꿈에서 깨어나야 비로소 꿈의 세계가 허망한 가상이었음을 알게 되듯이, 자신 안의 심층마음을 깨달아야, 우리가 집착하면서 살아가는 나와 세계가 가유(假有)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_p. 181

5. 마음이 마음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공적영지

누구나 수시로 마음속에 욕망과 분노가 일어나는 것을 의식한다. 마음이 아무리 번뇌에 물들어 있어도 그 번뇌 있음을 아는 그 마음 자체는 번뇌를 떠나 있다. 마음이 마음 자체를 스스로 자각하여 즉각적으로 아는 것이 바로 마음의 자기지이다. 이 자기지가 있기에 마음이 마음 이외의 것들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고려의 승려 지눌은 이러한 자기지를 ‘텅 비고 고요한 마음이 신령하게 자신을 아는 것’이라는 의미인 ‘공적영지(空寂靈知)’로 표현하였다. 이 공적영지의 마음에 기반해서 인간이 표층에서는 서로 달라도 심층에서는 모두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로부터 우리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게 되고, 어느 누구와도 하나로 공명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공적영지의 마음은 보이는 것 없고 들리는 것 없는 텅 빈 마음의 자기자각입니다. 자신을 텅 빈 공적의 마음으로 아는 것이지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빈 종이처럼 마음이 텅 빈 마음이 되면, 그 마음은 그 안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게 됩니다. 텅 빈 마음은 그 안에 아무것도 걸릴 것이 없는 마음, 장애가 없는 마음, 무애(無碍)의 마음이지요.”_p. 231

마음은 늘 그 자리에 깨어 있다

불교는 마음을 살피고 다스려 고통의 근원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로 나아가기 위한 가르침으로, 불교의 모든 개념은 마음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불교를 논하는 것은 결국 마음의 본성을 밝히는 것과 같다. 이 책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핵심개념은 서로 맞물리며 마음의 본래자리를 환하게 드러낸다. 보이든 안 보이든 상관없이 항상 빛나고 있는 별처럼, 늘 그 자리에 깨어 있는 심층마음. 이 책은 심층마음을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일상의식에 매여 사는 우리에게 존재의 실상을 보게 하는 경이로운 통찰을 제공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의 폭을 무한히 확장시켜줄 것이다.

“밤하늘 별들이 서울 한복판 밤하늘에서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은 서울 하늘 위에 별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도시의 불빛, 우리가 켜놓은 전깃불이 밤하늘의 별빛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표층의 분별의식은 내가 가까이 주목해서 알고자 하는 것은 알게 하지만, 결국 그보다 더 심층에 있고 언제나 거기 있는 것, 맑고 밝은 본래마음을 가려서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의 표층의식이 알아보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우리의 심층마음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 자신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며 깨어 있다.”_p.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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