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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세계전략과 주한미군 재배치
미국의 세계전략과 주한미군 재배치
  • 이철기 동국대
  • 승인 2004.06.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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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환경 악화우려

주한미군 1개여단의 이라크 차출을 계기로 주한미군의 감축과 개편이 가시화되고 있다. 주한미군 감축은 사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이미 충분히 예견돼 온 것이다. 이는 현재 미국이 세계전략 변화와 군변환 차원에서 추진 중인 해외주둔미군 재배치계획(GPR)의 일환이다. 세계전략 변화에 따라 지금처럼 대규모 병력을 해외의 일정한 장소에 고정 배치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군변환의 핵심은 군의 첨단화와 기동화다. 미사일방어(MD)와 같은 첨단무기체제를 도입하고 군을 첨단무기로 무장시킨다는 것이다. 다른 군사작전지역으로 신속하게 이동배치 하는 스트라이커(Stryker)부대로 불리는 신속대응군으로 개편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아시아의 경우 주둔미군의 재편과 재배치 필요성이 다른 지역보다 더 크다. 중국에 대한 견제와 봉쇄를 세계전략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서 주한미군을 비롯한 아시아 주둔 미군의 재편과 재배치는 긴급한 현안이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재편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추진되고 있다. 하나는 지상전력인 미 제2사단을 감축하고, 대신 해공군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억지력의 의미가 있던 2사단 중심의 지상군을 감축하는 대신, 미국의 동북아전략과 대중국봉쇄전략 차원에서 해공군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주한미군을 신속대응군으로 개편해 한국 이외에 다른 군사작전지역에 이동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주한미군부대를 평택과 오산지역으로 통폐합하고 있는 이유는 오산공군기지와 평택항을 통해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의 역할과 성격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주한미군이 북한에 대해 전쟁억지력 역할을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주한미군을 다른 군사작전지역으로 이동 투입하는 것은 주한미군의 역할이 더 이상 대북억지력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재배치계획은 우리의 안보환경을 악화시키고 동북아에서 군비경쟁과 군사적 대결을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이 지역동맹으로 변화하고 있고, 한미연합군의 작전범위가 동북아지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찰스 캠벨 미8군사령관의 최근 발언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증폭시켜주기에 충분하다. 그 발언의 중대한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의도를 그대로 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미동맹이란 미명아래 한반도 밖에서 행해지는 미국의 군사작전과 군사적 필요에 한국군이 동원될 수 있음을 뜻한다. 미국이 치르는 침략전쟁마다 따라 다녀야 할 판이다. 대만해협에서의 군사적 충돌에 한국군이 동원돼 중국과 전쟁을 치러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주한미군기지는 대중국봉쇄를 위한 전진기지로 활용되고 주한미군은 전진배치첨병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미군의 재배치전략은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높이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현재 미국의 과도한 군비와 공세적 전략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전쟁위험성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1994년과 2004년의 한반도전쟁위기가 그것을 입증한다. 한반도에서 가장 유력한 전쟁시나리오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과 이에 대한 북한의 대응반격이다. 이것은 미국의 과도한 공격용 무기의 한반도 반입과 주변지역 배치 그리고 선제공격과 같은 공격적 전략의 채택이 한반도에서 오히려 전쟁억지력을 손상시키고 있음을 뜻한다.

게다가 자주국방이라는 미명아래 국방예산의 대폭적인 증액을 통해 대규모 군비증강을 추진하고 있어 우려된다. 자주국방은 러시아나 중국에 필적할만한 군사력을 갖추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또 필요도 없다. 자주국방은 주변 강대국들과 군사적 긴장이나 군사적 대결을 가지오지 않을 안보환경을 만드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과 미군의 재배치계획은 오히려 우리 안보환경의 악화를 가져오고 있다.

자주국방과 안보환경의 개선은 미국의 군사전략과 정책의 틀에서 벗어나 얼마나 독자적인 안보전략과 정책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최근 주한미군의 재편과 성격 변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안보패러다임의 필요성을 긴급한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철기 / 동국대 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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