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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 ‘전쟁의 기억’ 다룬 두 권의 책
[책들의 풍경] ‘전쟁의 기억’ 다룬 두 권의 책
  • 이세영 기자
  • 승인 2001.04.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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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16 00:00:00
일본의 새역사교과서 문제로 반일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탑골공원 앞에서는 연일 일장기 소각시위가 벌어지고 미온적 태도를 보여온 정부 역시 들끓는 여론에 밀려 주일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기에 이르렀다. 피해자의 시각에서 볼 때, 검정을 통과한 일본의 새역사교과서는 용인되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 세월이 흘렀다한들 ‘침략’이 ‘진출’로, ‘학살’이 ‘진압’으로 바뀌어 불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가해자측 입장에서 본다면 문제가 그리 단순치만은 않다. 그들에게 역사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내부의 갈등과 대립은 ‘상쟁하는 기억들간의 투쟁’이라는 ‘정치적’ 의미를 지니는 까닭이다.

가해자, 죄의식의 부재

사회학자 기든스의 고상한 표현대로 인간이란 “개인적·집합적 기억이 만들어내는 현전과 부재의 상호침투를 통해서만 체험의 즉각성을 초월할 수 있는 존재”다. 요컨대 기억이 있기에 인간의 행위는 동물들의 ‘행태’ 수준으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억 또한 구체적인 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 그려내듯, 동일한 사건을 체험했을지라도 그에 대한 기억은 개인들이 처한 사회적 관계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기억의 불일치와 대립은 극복불가능한 것인가.
여기 두 권의 책이 놓여있다. 일본 교토여자대학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중인 노다 마사아키의 ‘전쟁과 인간’(길 刊, 2000),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한국위원회 증언팀’(이하 ‘증언팀’)이 펴낸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풀빛 刊, 2001)가 그것이다. 이 책들은 면접을 통한 구술자료에 기초해 집필이 이루어졌으며, ‘대동아 전쟁’이란 하나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과 관련된 저술이라는 점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비교지점들을 제공한다.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이란 부제가 암시하듯 마사아키의 ‘전쟁과 인간’은 패전후 일본인들이 보여온 침묵과 집단적 망각의 역사를 정신분석학적으로 진단한 책이다. 그는 45년 종전을 전후로 한 일본사회의 변화를 ‘초조의 시대’에서 ‘多幸의 시대’로의 전환으로 규정한다. “내용이 없는 공허한 상쾌함. 현실을 보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잘 돼가고 있다’고 미리 받아들이는 자세.”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다행의 시대’의 풍경이 근대화와 부국강병으로 표상되는 ‘초조의 시대’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내무반에서 초년병을 집단으로 구박하고, 중국인을 죽이면서 전쟁의 귀신으로 단련되고, 군대에서의 출세에 매진하면서 피억압자의 고통에 무감각했던 침략전쟁 시기 일본인의 정신”은 “사람들을 어릴 때부터 경쟁에 몰어넣고, 선망과 굴욕의 관문에서 공격성을 고조시켜 그것을 조직의 힘으로 바꾸는” 오늘날의 메커니즘 속에서도 변함없이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볼 때 이 같은 연속성의 씨앗은 패전 직후의 혼란이 가라앉은 후 일본인들이 보여준 두 가지 심리적 태도 안에 이미 감추어져 있었다. 하나가 “전쟁 가담자도 피해자도 뭉뚱그려 벌하지 않는다”는 ‘無罰化’라면, 다른 하나는 “경제부흥, 공업의 재건, 미국의 경제력을 따라잡는 것으로 일본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꿔치기에 의한 물질주의’다. 저자는 ‘무벌화’가 “이겨도 져도 전쟁은 어차피 비참한 것”이라는 논리에 따라 전후 평화운동의 심리적 토대가 되었다면, ‘물질주의’는 패전의 충격을 물질적으로 과잉 보상하려는 일본적 심성의 본류가 되고 말았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무벌화’건 ‘물질주의’건 저자가 볼 때 ‘죄의식의 부재’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로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전쟁에 관여한 일본인의 죄의식을 파헤쳐 분석함으로써 죄의식을 억압해온 일본인과 일본문화의 어두운 그림자를 부각시키고자 한다.
‘기억으로 다시쓰는 역사’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발족 1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된 증언집으로, 9명의 일본군 위안부 출신 여성들의 구술텍스트가 담겨있다. 이 책에 담긴 구술자들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대중들이 접해온, 정형화된 고발기록들과는 성격이 다를뿐더러 “복합적이고 다면적이며,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예컨대 “일본군에 대한 원한이 일본군 장교와의 사랑과 공존하기도 하며, 독립운동가의 딸로서의 자부심은 다른 위안부들의 삶을 ‘더러운’ 과거로 치부하기도” 한다. 이 책은 이처럼 다의적·다성적 목소리와 그들을 구성하는 다중적 정체성을 드러냄으로써 그것을 바라보는 해석의 시선을 개방시키고자 노력한다.
이 책의 두드러진 미덕은 증언자가 자신의 말을 통해 스스로를 재현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증언자의 침묵, 언어, 몸짓을 포함한 모든 기호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증언자의 진술을 이론적 격자로 어설프게 재단하지 않고 그들의 고유한 정신과 기억에 들어가 그 목소리를 체득하고, 동시에 증언자의 자기재현을 바라보는 거리를 인식하고자 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대표적이다.
“도망했으니까 맞지. 맞을 짓을 하니까. 밤늦게, 청진으로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면서) 도망해두 뭐 당장 붙들렸을끼여. 그러는디 그걸 몰르구 도망을 해니께, 패구, (정강이를 가리키며) 이눔을 묶어서 꿰달아 매.”(정윤홍의 증언 中에서)

‘기억의 현상학’ 넘어 ‘기억의 정치학’으로

두 권의 책은 “기억은 곧 투쟁”이라는 평범치만은 않은 진리를 다시금 반추하게 만든다. 과거는 단지 지나가버린 사건들의 다발로 경화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능동적 추체험을 매개로 현존재의 삶에 끊임없이 개입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동일한 하나의 사건일지라도 그에 대한 기억은 항상 ‘복수’로 존재하며 각각의 기억들은 특정한 이데올로기적·개인사적 맥락 속에서 재구성된다. 따라서 전선은 망각과 기억의 경계지점, 그리고 경합하는 ‘복수적’ 기억들 사이의 대치선상에서 형성된다. 이때 ‘억압과 피해의 기억’을 되살려내는 작업은 ‘망각’과 ‘공식화된 역사’에 맞선 이중의 인정투쟁이자 진정한 역사를 현실 속에 구현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전환된다. ‘기억의 현상학’을 넘어서는 ‘기억의 정치학’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세영 기자 syle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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