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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웍이 생산성 높여...'준비형' 성과 크다
팀웍이 생산성 높여...'준비형' 성과 크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4.05.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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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정보 : 협동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인문사회 분야

학제적 연구가 현실로 구체화될 때는 연구자들 상호간의 협동이 그 핵심적 관건으로 떠오른다. 연구주제 설정부터 시작해 연구인력 구성, 연구계획서 작성, 업무분담, 연구진척 점검회의, 핵심테마를 둘러싼 토론, 수정보완, 보고서 작성 등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챙길 수는 없다. 어떤 주제, 연구규모인지에 따라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현재 학술진흥재단의 지원 아래 진행되는 협동연구들을 통해 그 사정을 살펴본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는 '새로운 사회자본으로서 사이버 커뮤니티의 형성동학과 유지유형에 대한 연구: 트레이스 데어터 분석을 중심으로'를 진행 중에 있다. 이 연구는 한 기업체의 웹사이트에 방문하는 이용자들의 행태를 모두 기록하고 있는 '트레이스 데이터(trace data)'를 추출해 통계분석 및 사회연결망 분석을 통해 현재 사이버 공간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사이버 커뮤니티의 형성과 유지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것이다.

국내에 사회연결망 분석은 아직 도입단계인지라,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많은 난관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장 교수는 "너무 잘되고 있어서 문제"라고 대답한다. 장 교수는 비교적 젊은 연구자라 협동연구의 경험도 그리 풍부하지 못할 텐데 어찌 이런 자신감에 찬 답변이 나올까. 그 구체적인 진행상황이 궁금해졌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공동연구자들의 면면이다. 이 연구팀은 총 4명으로 구성된다. 장 교수를 비롯해 배영 숭실대 교수(정보사회학), 김기훈 (주)사이람 대표, 천명규 (주)잇이즈콤 대표다. 구성을 보면 학자 2명에 현직 기업체 대표가 2명이다. 보통 기업이 연구를 지원해주는 경우는 있어도 직접 연구원으로 참가하는 경우는 적어도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럼에도 이런 인적구성을 하게 된 것에 대해 장 교수는 "연구 내용이 학문적 가치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즉시 기업활동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협동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인력'과 '생산성 유지를 위한 지속적인 발표 계기'라고 본다. "연구인력을 잘 구성하려면 '공통의 관심'을 가지고 있되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게 중요하다"라고 장 교수는 강조한다. 왜냐하면 서로 비슷한 관심과 능력을 갖고 있으면 서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중복돼 생산성이 떨어지고, 비슷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힘들며, 꼭 내가 안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많기 때문에 업무분담을 둘러싼 갈등도 생길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협동연구의 인적구성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며 그는 강조한다.

그렇다면 실제 협동은 어떻게 이뤄질까. 장 교수는 사회연결망 분석을 전공했고, 배영 교수는 정보사회학과 사회자본론을 전공했다. 또 김기훈 대표는 사회연결망 분석 소프트웨어 및 솔루션 개발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천명규 대표는 연구의 대상이 되는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그는 온라인 데이터 수록 및 저장 분야에서 국내에서 선두를 달린다고 한다.

장 교수는 사회연결망 분석의 전공자이지만 '대용량 데이터의 처리'는 혼자서 할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주)사이람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고, 또 이런 도움이 있더라도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료인 트레이스 데이터가 (주)잇이즈콤에서 제공되지 않으면 분석이 불가능하다. 또한 연구된 결과물을 해석하는 데는 배 교수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김 대표는 자기 회사에서 새로 개발하는 솔루션을 상품화하기 전에 (주)잇이즈콤의 웹사이트에서 실험해봄으로써 솔루션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알고리즘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사회이론적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두 학자에게 자문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물고 물리는' 업무분담의 사슬을 통해 이 연구팀은 사회과학에서 매우 드물게만 가능한 '실험설계 상황'에서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장 교수의 협동연구는 이공계뿐 아니라 사회과학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산학협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살펴진다.

하지만 현재 학술진흥재단의 '협동연구'를 진행중인 많은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학자들이 연구인력 구성, 의견차이 조율, 개념통일, 토론, 업무분담, 돈문제, 성실성 등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협동연구는 여전히 난제임을 드러냈다. '외교와 경제: 조선후기 통신사외교와 경제시스템'을 연구중인 정성일 광주여대 교수(경제학)는 "순수하게 협동이 이뤄지는 부분은 '자료수집' 정도일 뿐"이라고 말한다. 특히 외국학자도 끼어있는 정 교수 연구팀은 "세월이 흘러도 남는 것은 자료뿐이고 학자들은 잠시 공동이익을 위해 만난 것"이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관련자료를 모으고 있다.

박재욱 신라대 교수(정치학)는 '글로컬리제이션 시대의 동북아 도시거버넌스'를 주제로 협동연구를 진행중에 있다. 박 교수는 협동연구 수행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공동연구자의 성실성"이라고 지적한다. 결과물에 있어서도 다른 연구자의 불성실로 인해 야기되는 불이익(평점 등)이 크며, 실제로 이런 문제로 연구자간에 불화가 이어지기도 한다며 토로했다. 그는 다음번 연구에서는 되도록 "연구자 수를 줄일 생각"이다. 감당할 수 없는 불필요한 인력을 줄여 분야별 책임영역을 명확히 구분한 연구수행방식이 작업을 용이하게 한다는 생각에서다. 박 교수는 현지조사가 필요한 연구일 경우 방문 지역에 해박한 공동연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공동연구 수행경험이 많은 백은기 전남대 교수(중국철학)는 철저한 '준비형'이다. 협동연구를 신청하기 2∼3년 전부터 사람을 모아 주1회 정도의 지속적인 모임을 2백50여회 정도 갖고 충분히 파트너십을 조성한다. 가능한 한 논문도 시작단계에서 70%이상 완성하도록 한다. 이 결과 그의 '주자대전 번역연구'는 3년간에 15억원을 수주받는 결과를 낼 수 있었다.

'문화 제국주의와 비판적 영어교육의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는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언어학)는 "서로의 학문적 배경은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상대방의 전문영역에 자신의 의견을 반영해 학문적 접목이 이뤄지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라고 밝힌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고창택 동국대 교수(철학)는 "다양하게 작업을 분담해 진행시켜도, 결국 어느 한 분야의 연구자가 주도적으로 작업을 해야한다"라며 분산과 통합의 묘를 강조했다.

장윤수 대구교대 교수(중국철학)는 "미리 중요한 개념을 통일해놓고 연구를 시작해야, 나중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특히 공동연구자들이 같은 대학이 아니고, 다른 대학이거나 해외에 있을 때는 자주 만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처음 연구를 위해 모였을 때 집중적으로 대부분을 해결해둬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많은 학자들이 실제로 연구해보면 1년 정도의 시간에 중간연구결과를 내놓는 게 너무 짧다는 말들을 한다. 장윤수 교수는 "제대로 하려면 다년과제를 신청해야 하는데, 탈락률이 높아 학자들이 연구주제를 쪼개서 단계별로 도전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의문은 같은 연구자들로 계속 그 주제에 대한 연구가 수행된다는 보장이 없고, 그럴 경우 반쪽짜리 연구들만 양산하는 결과가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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