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06:20 (월)
학이사: 캠퍼스에도 변화를
학이사: 캠퍼스에도 변화를
  • 홍성열 강원대
  • 승인 2004.04.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성열/강원대· 심리학

침침한 전등 불 아래 젊은이 몇 명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어떤 친구는 신문을 읽기도 하고, 다른 친구들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기도 했다. 필자도 그 가운데 앉아서 멍하니 한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곳은 다름 아닌 사우나실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하며 조금의 여가도 낼 수 없었던 나는 학교 안에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막판에야 겨우 알게 됐다. 내 옆에 아주 다부지게 생긴 친구가 있기에 어디 출신이냐고 물어 보니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며, 취미가 레스링인데 오늘 밤 동호회에서 자기가 출전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가 레스링을 얼마나 잘하는지 궁금해서 꼭 관전하겠다고 약속했다. 친구의 차례가 왔다. 내가 보기에 그가 훨씬 더 강해 보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상대방의 힘에 눌려서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 친구 나를 보며 멋쩍어 하던 행동이 머리에 아직도 남아 있다. 레스링 시합은 학생들끼리 수업이 다 끝난 후 벽에 붙어있는 대진표에 따라서 한 학기 동안 진행되어 간다. 그러니까 수업을 빼먹고 시합을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시합에 모든 회원들이 다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출전하는 선수의 친구들 몇 명 혹은 선수들과 심판을 맡는 선배만 참가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시합장은 이상할 만큼 조용한 분위기였다.

이렇게 동아리 모임을 소개하는 이유는 수업시간이 모든 것들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떠한가. 각 대학이 공통적으로 봄 학기에는 대동제 그리고 가을학기에는 체육대회로 소란스럽고 각종 MT로 야금야금 수업시간을 빼 먹다 보면, 어느 사이 한 학기를 마감하게 된다. 많은 학생들은 과거부터 그래 왔으니까 별다른 감정 없이 또 다른 학기를 기다린다. 일부 학생들은 그런 분위기를 안타까워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자신을 흘려보낸다. 우리의 대학에서 수업시간을 가볍게 보도록 만드는 대동제, 체육대회, MT 같은 공식적 집단행동이 꼭 필요한 것인가. 대학에 있어야 할 것이라면 더욱 강화해서 모두가 참여하도록 독려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사라지도록 강하게 권해야 한다. 집단행동은 구성원 모두가 그 속에 포함되기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집단에 포함되는 경우는 좋게, 그렇지 않으면 나쁘게 평가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각종 행사로 인해서 학생들 간에 갈등이 스며들고 있는 모양이다.

대학생들이 유니폼을 입는 청소년들이라면, 학내 집단행동을 이해할 법도 하다. 그러나 머리가 큰 사람들에게 집단행동을 요구한다는 것은 다시 중고등학생으로 돌려보내는 것과 다름없다. 건방떠는 이야기 같지만, 적지 않은 교수들이 학생들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다람쥐 체 바퀴 돌 듯 캠퍼스의 분위기가 변하지 않고 이어져 가는 듯 싶다. 

대학의 상징은 자율화이다. 이것은 학생들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의 책임을 자신이 질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자율화라는 것은 주관적 판단을 뜻하며, 자아실현을 향해가는 길목이다. 다시 말하면, 자아실현을 향한 대학생들은 독립적이어야 하고, 관습적 동화에 항거하고, 그리고 스스로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여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왜 우리들의 학교들은 왜 옛것을 지키며 그 긴 세월을 이어오고 있는가 말이다.

일부 교수들은 학내의 이런 분위기를 우리나라만이 갖는 대학문화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대학문화라 해도 학생들의 졸업 후 밥벌이를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는다. 좋은 옷도 자꾸 입으면 싫증을 느낀다는데, 이제 우리의 대학에서도 그런 공식적 집단행동에 싫증을 느끼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