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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휴대전화의 進化
문화비평: 휴대전화의 進化
  • 민경진 미디어비평가
  • 승인 2004.04.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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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휴대전화가 모두 검은색인 적이 있었다. 믿지 못하겠다고? 5년 전의 신문이나 잡지를 다시 한 번 들춰 보라. 당시 고소득층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모토롤라의 스타택을 비롯해 삼성, LG, 노키아, 에릭슨 모두 한결같이 검은색 일색이었다.

사장님 폰이란 별칭이 말 해 주듯 휴대전화는 한 때 돈 많은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었고 신분과 부의 상징이었다. 자가용 보급 초기 차 크기에 관계없이 모두 검은색 일색이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할까. 신제품은 도입 초기에 대체로 고가를 유지하게 마련이고 따라서 부유층만이 구입할 수 있는 만큼 이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위의식을 과시하는데 검은색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색도 없었을 것이다.

휴대전화만 그랬던 건 아니다. 20세기 초에 유선전화가 보급 될 때도 전화는 모두 검은색이었다. 피라미드 형태를 한 육중한 검은색 전화기가 지체 높은 고관들과 사장님의 책상을 장식했다.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을 듯 버티고 있는 전화기는 완고하고 변하지 않는 관료주의 사회의 상징이었다고나 할까. 

요즘의 휴대전화는 패션 아이템이다. 여인이 철 따라 옷을 갈아입듯 십대의 휴대전화는 계절마다 신기종으로 바뀐다. 64화음에 칼라 벨소리, 카메라 폰에다 이제 MP3 폰까지 신세대들은 철마다 새로운 기능으로 무장된 폰으로 업그레이드를 단행한다. 크기도 육중하고 검은색에다 게다가 변하지도 않는다고? 한 때 성공의 상징이었던 덕목이 이제는 촌스러움과 퇴물의 징표로 전락했다.

KT는 최근 긴 전화는 집전화로 하자는 광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휴대전화에 밀려 점점 쪼그라드는 유선전화 사업을 되살려 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할인 혜택을 주어 유인을 한다 해도 별 성과는 거두지 못 할 것이다. 방향을 한참 잘 못 잡았기 때문이다. KT는 휴대전화를 단순히 이동전화로 여기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당초 휴대전화는 이동 중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무선 통화기능으로 출발했지만 이미 패션 아이템으로 변신한 휴대전화의 진정한 덕목은 가족용, 공무용, 혹은 공중전화가 아니라 바로 ‘개인용 전화’라는 것이다.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나만의 기계다. 수많은 친구와 지인, 그리고 애인의 연락처가 담겨 있고 이들과 주고받은 수백 개의 문자 메시지가 빼곡하게 저장돼 있는 휴대전화는 나만의 개인용 전화인 것이다.

휴대전화에 전화를 걸 때 당신은 무의식중에 바로 그 번호의 소유자가 전화를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삼성전자의 천-지-인 방식 문자입력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이 다른 회사의 휴대폰이 마음에 들어도 새로운 입력방식을 손에 익히는 게 부담스러워 결국 포기하고 마는 것처럼, 휴대전화에 그득하게 저장된 전화번호부와 문자메시지 그리고 각종 이미지와 사진들은 강력한 자물쇠 (Lock-in) 기능을 수행한다. 당신은 이미 휴대전화의 노예가 된 것이다.

KT의 ‘긴 전화는 집전화로’ 캠페인은 이미 휴대전화에 길들여진 소비자의 통화습관을 획기적으로 바꿀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한 아무리 요금을 싸게 매겨도 결코 성공하지 못 할 것이다. 소비자에게 휴대전화는 이제 더 이상 이동전화가 아니라 개인용 전화라는 미디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 하는 한에는.

젊은이들의 가방과 호주머니는 보통 서너 개의 휴대용 전자기기로 가득하다. 휴대전화, MP3 플레이어, 디지털 카메라, PDA 때로는 노트북까지. 아침 통학 길에 나섰다가 문득 이중 하나를 빠뜨리고 왔다고 가정하자. MP3나 디지털 카메라라면 굳이 지각을 감수하면서까지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휴대전화라면 다르다. 웬만해선 휴대전화를 두고 오진 않는다. 그것은 휴대전화의 본질이 항상 몸에 지녀 언제 올지 모를 전화를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재중 수신전화 확인 기능이 보편화된 요즘은 사정이 달라지기는 했다).

어쨌든 다른 모든 휴대기기는 모두 잊어도 휴대전화만큼은 지각을 감수하고서라도 기어이 들고 나온다는 미디어로서의 특징은 대단히 파괴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24시간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닌다 해도 종일 통화를 하진 않는다. 만약 하루 통화시간이 1시간이라면 나머지 23시간은 남겨진 시간이 되는 셈이다. 지금 소비자의 나머지 23시간을 차지하기 위해 휴대전화 업체와 MP3 플레이어, 디지털 카메라 업체가 치열한 머리싸움을 벌이고 있다. 최근 MP3폰의 등장에 음반저작권 협회가 매우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역시 이것이 기존 MP3 플레이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막강한 파급효과를 보일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는 그 본질에 있어 항상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하기에.

굳이 모든 디지털 기기가 하나로 통합되는 디지털 컨버전스 현상이 아니더라도 싫든 좋든 소비자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본질적 속성으로 인해 휴대전화는 앞으로 카메라나 MP3 플레이어 뿐 아니라 PC, 인터넷 검색장치, 건강검진도구, 호신용품 등 상상 가능한 모든 휴대기기로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발전의 궁극에 유비쿼터스 사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민경진 / 미디어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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