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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박물관 여행]전쟁의 무엇을 전시할 것인가
[박찬희의 박물관 여행]전쟁의 무엇을 전시할 것인가
  • 교수신문
  • 승인 2020.08.3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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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와 영웅의 서사로 볼 것인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담아낼 것인가
전투사로 볼 것인가, 전쟁의 본질까지 파고들 것인가

임진왜란은 조선의 역사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다. 조선의 역사는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조선 후기는 임진왜란과 뒤이은 병자호란으로 피폐해진 국토를 재건하고 새로운 사회 운영 시스템을 만들고 정착시키는 여정이었다. 임진왜란은 조선 자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쳤다. 조선을 도와 출병했던 명은 망하고 청이 중국을 차지하였다.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가 들어섰다. 조선과 동아시아의 역사를 바꾼 임진왜란, 그 전문 박물관이 진주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이다.

국립진주박물관 전경.

국립진주박물관은 진주성 안에 자리 잡았다. 진주성은 예사롭지 않은 곳이다. 그곳은 임진왜란의 최대 격전지 가운데 한 곳으로 승리의 영광과 패배의 아픔이 공존한다. 1592년에 벌어진 1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3천여 명의 조선군이 3만여 명의 일본군을 물리치는 기적과 같은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를 지휘한 김시민 장군은 안타깝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김시민은 이순신, 권율과 더불어 임진왜란의 승전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의암.

임진왜란 전문 '진주박물관'

그러나 진주성은 다시 고난에 처한다. 다음 해 일본군은 패배를 만회하고 전라도로 진출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진주성을 다시 에워싸고 공격하였다. 조선군 3천여 명은 지원 병력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도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끝내 일본군은 진주성을 함락시키고 진주성 안으로 피난 온 6만여 명의 백성들까지 무참히 죽였다. 이때 논개가 등장한다. 그녀는 적장을 유인해 끌어안고 촉석루 앞 의암에서 남강으로 뛰어내렸다. 논개의 죽음은 2차 진주성 전투의 상징이 되었다. 

만약 일반 병사나 백성의 눈으로 진주성 전투를 본다면 이 전투는 어떻게 보일까? 진주성 전투는 승리와 충성과 의열에서 벗어나 다양하게 평가될 것이다. 임진왜란도 비슷하다. 승리와 영웅의 서사로 볼 것인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담아낼 것인가. 혹은 전투사로 볼 것인가, 전쟁의 본질까지 파고들 것인가. 박물관이 어떤 점에 주목하는가에 따라 전시의 주제와 구성이 달라진다. 가장 손쉽고 강력한 전시 방법은 승리와 충성과 결사항전에 기반을 둔 전시다. 이런 전시는 개인의 목소리나 전쟁의 이면은 추상화되어 잘 보이지 않는다. 전쟁을 다룬 박물관의 역동성은 이 자장을 얼마큼 벗어나는가에 달렸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을 어떻게 전시했을까? 먼저 눈여겨볼 부분은 임진왜란실 앞부분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이름 위에 ‘동아시아 7년 전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임진왜란을 조선과 일본 두 나라의 전쟁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조선, 중국, 일본의 역사를 바꾼 국제적인 전쟁으로 보겠다는 관점이 제시되었다.

조선, 명, 일본의 무기 전시실

전시는 조선이 중심이지만 세 나라의 이야기가 줄 곳 등장한다. 세 나라에서 임진왜란을 부르는 용어의 차이로 전쟁을 바라보는 각국의 입장을 설명하며 국제적인 성격을 강조한다. 가장 두드러진 곳은 비교적 넓은 무기 전시실이다. 물론 조선의 무기가 가장 많이 소개되었지만 일본과 중국의 무기도 빠지지 않았다. 임진왜란 이후 각국의 역사는 전시 후반부에서 다루었다. 임진왜란을 나쁜 일본, 조선군과 의병의 영웅적인 승리, 패배했지만 끝까지 싸웠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의 역사로 확장시킨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임진왜란 기록물 진열장

임진왜란은 우리의 역사에서 무엇이었나라는 문제의식은 임진왜란을 주제로 한 박물관이라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다. 또 그 고민의 결과가 전시에 반영되어야 한다. 이곳에서는 먼저 전쟁 당시의 기록과 전쟁 이후의 기록을 전시하였다. 조선 사람뿐만 아니라 일본 사람의 기록까지 포함하였다. 그런데 국가에서 편찬한 공식적인 기록이 아니라 전쟁을 몸으로 겪은 개인들의 기록이 대부분이다. 공식적인 기록과 기억에 앞서 개인의 다양한 기억으로 임진왜란을 보려고 한 것이다.

 

보통 사람 개인의 전쟁에 '주목' 

최근 박물관에서는 전쟁을 공식 기억이나 추상적인 담론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개인이 겪었던 전쟁에 주목하려는 움직임이 크다. 개인의 전쟁을 살펴보다 보면 전쟁이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감추어진 혹은 말하지 않은 전쟁의 참혹한 실상이 낱낱이 드러난다. 국립진주박물관에서는 책을 제시하고 책의 일부 내용을 소개하였다. 특히 오희문이 쓴 쇄미록은 중요한 내용을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전시를 확대해 개인 속의 전쟁, 전쟁 속의 개인을 더 큰 비중으로 다루면 어떨까 싶다. 전쟁의 본질을 사유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시의 후반부에는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을 조명하였다. 전쟁의 규모와 피해 상황으로 보면 이 전쟁은 조선을 주저앉힐 정도로 충격이 컸다. 전시에서는 의열의 상징이 된 논개, 불패의 신화가 된 이순신,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운 공신의 선정, 임진왜란 당시 겪었던 일 가운데 본보기가 될 만한 일을 모아 펴낸 동국신속삼강행실도의 편찬을 제시하였다. 아울러 한걸음 더 나간다면 전쟁의 후유증을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임진왜란 전시의 끝부분은 ‘문화의 전파와 교류’, ‘동아시아와 조선 사회의 재편’이 주제다. 이 주제에서는 무엇보다 대일 관계와 일본에 끼친 조선의 영향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임진왜란을 도공 전쟁으로 부르기도 하는 것처럼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의 사례가 전시 앞부분에 제시되었다. 그리고 전쟁 후 일본의 요청으로 보낸 통신사, 일본에서 온 사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장대한 통신사 행렬도는 당시 통신사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한다. 이 전시에서는 서로 오고 가야 신뢰와 평화를 쌓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전쟁을 다룬 박물관에서 전쟁의 진행 과정을 어떻게 전시해야 하는가는 늘 고민스러운 문제다. 전쟁의 발발 원인, 경과, 결과는 전쟁을 이해하는데 기본적이며 중요한 사항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꼼꼼하게 다루면 정보의 양이 상당히 늘어나 관람객의 집중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자칫하면 전투사의 나열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임진왜란 3면 영상

영상 활용한 연표 '눈길'

이곳에서는 다소 파격적인 방법을 제시하였다.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관람객이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임진왜란 연표를 만난다. 그런데 이 연표가 한눈에 보이는 일반적인 연표가 아니라 동아시아 지도와 그림을 바탕으로 만든 영상 연표다. 다음 공간에서도 영상이 등장한다. 이곳에서는 임진왜란의 시작, 전개, 종전에 이르는 과정을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보여준다. 이미지가 강렬한 영상이 영상실 3면에 비춰져 영상을 보는 관람객들의 몰입도가 상당히 높다. 영상을 보고 나면 임진왜란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한눈에 보인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전시실 입구의 영상을 함께 봐야 이어지는 전시가 쉽고 빠르게 이해된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의 한복판에 서있다. 자리 잡은 곳도, 다루는 주제도 그렇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면 박물관 근처에 있는 진주성의 상징 촉석루와 논개가 적장을 안고 몸을 던졌다는 의암을 가보면 좋다. 이곳은 전시실 속 진주성 전투와 논개가 되살아나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곳을 걷다 보면 다시 묻게 된다. 

“임진왜란을 어떤 전쟁으로 기억하고 있는가, 기억시키고자 하는가? 전쟁 속 개인은 어떤 존재인가, 개인에게 전쟁은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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