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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의의 문학프리즘] 애도와 윤리적 책임
[심영의의 문학프리즘] 애도와 윤리적 책임
  • 교수신문
  • 승인 2020.08.1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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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여성에게 오히려 책임을 묻거나 비난을 가하는 일부 행위는 폭력이자 범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성범죄에 관대해
삶과 괴리된 교육, 대의만 추구하다 소홀해진 일상,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관성이 문제

김인숙 단편소설 「칼에 찔린 자국」에는 8년여 동안의 시간 강사 생활을 벗어나 6개월 전에야 국립대학 교수가 된 한 남성의 자신의 삶, 그러니까 앞만 보고 달려왔던 맹목의 삶에 대한 회한을 이야기한다. 누구나 그랬듯이 그 역시 더 안정된 직장 혹은 그런 지위를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다섯 형제의 맏형이었던 그는 동생들의 몫을 혼자 차지하며 성장한 대가로 부모와 동생들에게 능력 있는 장남이기를 요구받는다. 어렸을 때부터 달리기를 잘하기도 했던 그의 삶이란 마치 멈출 수 없는 달리기와도 같았다. 

그래서 어느 날 술집 마담의 살해 사건과 관련해서“이 여자 알아? 몰라?”하고 묻는 경찰의 질문에 그는“난 교숩니다, 국립대학의 현직 교수에요”하고 다소 엉뚱한 대답을 한다. 몇 군데 대학에 시간 강의를 하기 위해 온갖 도로 위에서 기름과 함께 쏟아 부어지는 동안에 그의 청춘도 그가 가졌던 첫 번째 차처럼 폐차되어갔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렇게 하여 얻은 교수라는 직함이 그의 인생에 대한 항변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 것일까, 하는 것이 이 소설의 주요한 질문이다. 그가 갖게 된 얼마간의 특권의식이 저 난경을 헤쳐나갈지도 모른다는 그릇된 기대와 함께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인정과 보상을 받고 싶은 심리가 경찰의 질문에 대한 저 대답 속에 들어있다.

그러나 인정과 보상 욕망이 그릇된 방향으로, 자신의 사회적 자원의 위세 앞에 꼼짝 못하고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향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것은 특정한 개인의 문제라 보기 어렵다. 그것은 오랜 시간 역사적 대의에 헌신해왔던 이들이 부지불식간에 갖게 된 일종의 집단적 선민의식의 결과 자기성찰의 기회를 갖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오랫동안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던 몸을 스스로 저버린 사람에게 비난은 예의가 아니겠다. 충분한 예의로 그를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그의 성 추문이 사실이라면, 그에게 오랫동안 피해를 당한 여성에게 망자를 대신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사죄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숙고할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망자를 대신한 우리 사회의 윤리적 책임이다. 그 둘을 조화시키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편 가르기가 참담하다.

그의 죽음이 황망한 것은 사실이나 피해 여성에게 오히려 책임을 묻거나 비난을 가하는 일부의 행위는 용납되기 어려운 폭력이고 범죄다. 망자와 직접 관계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성범죄에 대해 관대한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묻기도 한다. 왜 조심하지 않았느냐고, 부당하게 생각됐으면 왜 당시에는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 비난의 대열에 여성들이 많은 것도 희한하다. 어쩌면 남성 가부장은 여성에 비해 좀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존재라는 낡은 (무) 의식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예전 어느 초등학교에서 교사들이 페미니즘 수업을 준비하자 그것에 반대하면서 교사들을 억압했던 사람들도 그 학교 학부모들이었다. 어느 중학교에서‘억압받는 다수’라는 제목의 프랑스 단편영화를 페미니즘 수업 자료로 활용했던 교사는 직위 해제되고 재판에 넘겨졌다. 그 교사를 고발한 것도 그 학교의 학부모들이었다. 어느 남녀공학 고등학교에서‘임신과 출산’단원 시간에 콘돔 사용법을 교육하기 위해 바나나를 가져오도록 한 교사 역시 학부모들의 항의를 받고 수업을 중단해야 했다.  좀 더 주의 깊지 못했다는 비판은 있을 수 있겠으나 성에 대해 발설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면서 성 평등의 실현을 무슨 수로 이루어나갈 것인지 갑갑하다. 삶과 괴리된 교육, 대의만 추구하다 소홀해진 일상,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관성이 여전히 문제겠다. 

심영의 문학박사. 소설가 겸 평론가.
심영의 문학박사. 소설가 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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