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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박한 예술 엿보기…남의 글 비판없이 떼어온 느낌
해박한 예술 엿보기…남의 글 비판없이 떼어온 느낌
  • 노성두 서울대
  • 승인 2004.03.12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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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서평 : 『눈의 역사, 눈의 미학』(임철규 지음, 한길사 刊, 2003, 440쪽)

단숨에 읽었다. 눈에서 묵은 비늘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만약에 눈을 위한 눈에 의한 눈의 역사가 존재한다면, 그 소용돌이 궤도를 롤러코스터에 올라타고 전속력으로 달린 기분이다. 저자는 백 개의 눈을 가진 괴물 아르고스처럼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부터 성서와 신화를 거쳐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구석구석을 훑어 내려간다.

그의 두 눈은 때로 로도스의 등불처럼 번쩍이고, 또 불길한 떠돌이별처럼 긴 여운의 꼬리를 달고 깜빡인다. 암흑과 죽음에서 태양과 구원에 이르는 대장정을 뚜벅 걸음으로 걸어가는 동안 결코 한가한 졸음에 빠지는 일은 없다. 여기서 눈은 빛이고, 생명이고, 시작이고, 소통이다. 또 정자와 섹스의 뻔뻔한 표상이다.

저자는 마치 장난꾸러기 사랑의 신 아모르가 아프로디테와 아레스가 바람피우는 장면을 즐겨 훔쳐보았던 것처럼 이미지와 기억의 이부자리를 훌러덩 들추며 즐거워한다. 또 눈동자의 거울에 비친 눈을 훔쳐보기 위해 카메라 옵스큐라의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가 하면, 자연의 거울을 감시하기 위해 고전의 파놉티콘에 오르기도 한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보고도 알지 못하고, 알고도 깨치지 못하며 세상의 미로를 헤매는 눈뜬 소경들에게 충직한 안내견 역할에 너끈하다.

성서와 신화를 거쳐 인문학과 자연과학으로

▲마르셀 브로테르, '시각의 탑', 1966년, 88x50cm, 에딘버러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
이 책은 또 신화와 비극, 문학과 예술의 창문을 통해서 볼만한 눈요깃감들을 펼쳐 보인다. 노아의 방주에 얻어 타고 지붕에 뚫린 쪽창을 통해서 성서의 산등성이와 계곡들을 배회하고, 이리스 여신의 무지개에 걸터앉아 신화의 현장으로 눈길을 돌린다. 이곳저곳 들쑤시지 않는 곳이 없는 저자의 해박함이란 아닌 말로 기가 질릴 정도다. 함부르크에 있던 바르부르크 도서관에 들어선 미학자 카시러는 섬뜩한 전율을 느꼈다지만, '눈의 역사 눈의 미학'도 책장을 넘길 때마다 팔 다리에 소름이 돋았다.

책에 대한 찬사는 이쯤으로 접고, 속상한 이야기도 몇 마디 하자. 이 책을 읽다보니, 뭐랄까, 한참 열심히 두다가 손을 뗀 바둑판처럼 눈에 밟히는 구석이 몇 군데 있다. 저자는 무엇보다 참고 문헌을 읽는 방법이 독특했다. 가령 독일 철학자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펭귄에서 나온 영어본으로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헤라클리토스의 '단편'에 대한 인용은 또 베를린 바이트만에서 출간된 독어본을 들여다본다(32쪽과 33쪽 주). 보통 학자들 같으면 니체는 독일어로, 헤라클리토스는 고대 그리스어로 읽을 것이다.

서지학적 오류 너무 많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책 날개에 실린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니, 영문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단다. 고개를 더욱 힘차게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또 원문과 재인용을 따로 알아볼 수 있게 구분해서 밝히지 않고 한 소쿠리에 주워 담는 방법도 낯설었다. 그뿐일까. 다 알만한 인물인데도 굳이 이름을 거명하지 않고 ‘한 기독교인 저자’라고 표기한다든지, 작품제목이 뻔히 있는데도 이름은 쑥 빼놓고 장황하게 설명을 붙이는 습관도 곱게 보이지 않았다.

가령 로마의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조각을 두고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그의 이미지는 1863년에 발견된 기원전 1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그의 전신상을 통해서이다. 이 조각상은 실물보다 훨씬 크게 재현했는데, 이 조각상의 크기가 약 213센티미터인데 반해 그의 실제 키는 약 173센티미터였던 것으로 알려진다”(233쪽). 이런 식이다. 도대체 어떤 작품일까, 제 자리에 돌아왔던 고개를 다시 갸웃거리면서 문장꼬리에 달린 각주를 살펴보니 재스 엘스너가 쓴 무슨 책의 161쪽을 안내한다. 재스 엘스너가 책꽂이에 안 꽂혀 있는 독자들은 한 가닥 지푸라기를 놓쳐버린 기분일 것이다. 흑백 도판도 한 장 없는 것을 보니, 책을 펴낸 출판사도 독자들이 알아먹든 말든 별로 무관심인 모양이다. 내친 김에 조금 더 읽어보기로 했다.

“…그의 통치를 후원하는 듯 그의 양 어깨에 앉아 있는 스핑크스 등을 통해…”여기에서 드디어 그림이 떠올랐다. 로마 바티칸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에 있는 '프리마 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였다. 로마 북쪽 프리마 포르타의 리바아의 별장에서 발굴됐다고 해서 '프리마 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이 붙은 대리석 작품이다. 원래는 청동으로 구웠을 텐데, 대리석으로 복제를 해서 하나 갖다 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니,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설명글을 붙이다니, 우리나라 독자들의 발굴고고학 지식수준을 너무 높이 잡은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더군다나 작품의 높이는 203센티미터인데 213센티미터라고 엄한 대리석의 키를 멋대로 키워놓기까지 했다. 사소해 보이지만, 고고학에서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오류다. 작품을 제대로 관찰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컨더리만 죽자고 베껴대는 학생들의 보고서에서 자주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처럼 곤란한 대목이 쪽수마다 거의 빠짐없이 나온다는 점이다. 해적 사냥꾼으로 명성을 날리던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머리 모양새를 훔쳐다 응용한 대목도 곱게 넘어가기 어렵다. 본문에는 “옆 이마를 가린 머리 모양이나…”라고 썼는데, 사실 알렉산드로스 헤어스타일은 사자머리처럼 부풀려서 뒤로 올빽한 것이 특징이다. 가운데 이마든지 옆 이마든지 머리카락을 덮어서 가리는 데 포인트를 준 것이 아니라, 뒤로 무조건 제껴서 그림자를 쓸어 담고 그 대신 활짝 드러난 얼굴을 빛나게 보이게 하는 반사효과를 꾀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원래 알렉산드로스의 특허가 아니고, 태양신 헬리오스의 헤어스타일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이마를 가린다는 것은 그릇된 설명이 된다. 알렉산드로스는 머리를 길렀으니 헬리오스를 간단히 흉내 냈지만, 짧게 친 군인머리의 폼페이우스는 우스꽝스럽게 바뀌고 말았다고 한다.

"첫 토막은 별 다섯, 중간토막은 별 하나"

이탈리아 조각가 미켈란젤로와 베르니니의 대리석 조각 '다윗'을 설명하면서도 글쓴이가 두 작품을 혼동해서 기술하는 바람에 뒷목이 뻐근하도록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코끼리를 너무 큰 놈을 골라서 그런지, 뒷다리만 더듬다가 지나간 부분도 적지 않았다. 가령 르네상스 미술 가운데 눈에 얽힌 미학과 사상을 훑으면서 작품은 딱 한 점 뒤러의 '멜랑콜리아 I'을 한참 설명하다가 문학으로 건너뛰어서 맥베스로 빠지는 식이다. 르네상스라면 원근법도 있고, 근사한 시각이론도 차고 넘칠 만큼 많은데, 하필 르네상스 발원지로부터 한참 떨어진 북유럽 화가의 동판화 한 점으로 입을 닦은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미술에 대해 쓴 부분만큼은 전체적으로 글쓴이가 직접 자신의 눈으로 관찰하지 않고 남의 글을 비판 없이 떼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남의 눈으로 본 눈의 역사, 눈의 미학'이 된 셈이다. 글쓴이에게 군밤 맞을 작정하고 감히 이 책의 점수를 매긴다면, 첫 토막은 별 다섯, 중간토막은 별 하나, 뒷부분은 별 둘을 주고 싶다.

필자는 독일 쾰른대에서 '카라바조 회화의 전이와 수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는 '브루넬레스키의 1차 원근법 시연', '거울과 자화상' 등이 있고, '천국을 훔친 화가들', '유혹하는 모나리자' 등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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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두 2004-04-01 03:25:17
제 글 가운데 헤라클리토스에 관한 부분은 임철규 교수의 인용이 올바른 것이었습니다. 고전문헌학에 무지한 터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잘못 썼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 책이 헤라클리토스에 관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판본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의 실수에 대하여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아울러 이 책에 실린 미술사적 오류에 관해 혹시 저자가 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얼마든지 도움말을 드릴 용의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