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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전 6월의 대학생들, 대공분실 옥상서 태극기 들었다
33년전 6월의 대학생들, 대공분실 옥상서 태극기 들었다
  • 하영
  • 승인 2020.06.10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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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분실서 고문받은 노동운동가는 대공분실 경비원으로
옛 대공분실 옥상서 태극기 든 '33년전 6월 거리의 대학생'10일 서울 용산구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제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6월 항쟁 당시 거리에서 민주화를 외친 연세민주동문회 선후배 사이인 박덕진, 정상훈씨가 건물 옥상에서 국민의례에 맞춰 태극기를 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옛 대공분실 옥상서 태극기 든 '33년전 6월 거리의 대학생'10일 서울 용산구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제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6월 항쟁 당시 거리에서 민주화를 외친 연세민주동문회 선후배 사이인 박덕진, 정상훈씨가 건물 옥상에서 국민의례에 맞춰 태극기를 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10일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제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는 국민의례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사회자가 "왼편 건물 위 태극기를 향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자 건물 옥상에 두 남성이 대형 태극기를 들고 섰다.

두 사람은 연세민주동문회 선후배 사이인 박덕진(56) 씨와 정상훈(54) 씨였다.

이들은 6월 항쟁 당시 거리에서 치열하게 민주화를 외친 대학생들이었다.

박 씨는 1986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장기농성 사건으로 복역하고 출소한 직후 제적생 신분으로, 정 씨는 연세대 동아리연합회 학술분과장으로 6월 항쟁을 맞았다.

당시 낮에는 학내 집회와 거리 시위에 나서고 밤이면 세브란스 병원에서 이한열 열사를 지키는 게 일상이었다.

박 씨는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서 일했고, 정 씨는 사회적 기업 활동을 꾸준히 펼치며 각자의 방법으로 민주화에 헌신했다.

정 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태극기를 드는 순간 87년 거리에서 다 같이 애국가를 부른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벅찼다"며 "고문으로 악명 높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한열이 어머니가 편지를 낭독하시는 걸 보니 여러모로 감명 깊었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이 열린 옛 남영동 대공분실은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이기도 하다. 이곳 경비원으로 일하는 유동우(71) 씨 역시 각별한 사연을 갖고 있다.'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 경비원으로 근무 중인 유동우 씨.(사진=연합뉴스)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 경비원으로 근무 중인 유동우 씨.(사진=연합뉴스)

유 씨는 1973년 인천 부평지역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다 해고된 뒤로 구속과 수배를 반복했다.

1981년 '학림' 사건 직후 예비군 훈련장에서 체포돼 대공분실로 연행된 유 씨는 한 달간 고문을 받으며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온갖 고초를 당했다.

유 씨는 2018년 12월 대공분실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바뀔 무렵 정부로부터 일자리 제안을 받았고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

유 씨는 "'독립된 조국의 정부 청사 문지기를 하는 게 소원'이라고 한 김구 선생을 떠올렸다"며 "민주화 탄압의 상징이 인권의 상징으로 탈바꿈한 곳에서 문지기를 하는 게 나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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