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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박물관 여행]매혹하는 전시실
[박찬희의 박물관 여행]매혹하는 전시실
  • 교수신문
  • 승인 2020.06.1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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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민속박물관

민속품은 생활의 체취 강하고 범주 넓어
한국인의 삶, 일터, 한국 문화 주제로 전시
다양한 전시 기법과 효과 천천히 음미해야
감각적인 의류 전시. ⓒ박찬희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단지 사람만이 아니다. 유물도 전시 환경에 따라 달라 보인다. 때로는 느낌뿐만 아니라 해석과 평가까지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박물관 큐레이터는 유물이 들어갈 자리를 여러모로 고민한다. 유물의 성격과 가치는 무엇일까, 누가 어떻게 썼을까, 어떤 점을 부각시킬까, 어떤 주제 아래 들어가면 좋을까, 진열장의 분위기는 어떻게 만들까. 다양한 고민 끝에 효과적인 전시 기법을 활용해 유물에 어울리는 전시 환경을 만든다. 반짝이는 상상력으로 매력적인 전시실을 만드는 박물관 가운데 한 곳이 온양민속박물관이다. 

온양민속박물관은 민속품을 폭넓게 수집하고 전시하였다. 민속품은 다른 종류의 유물과 달리 생활의 체취가 상당히 강하고 범주도 무척 넓다. 다양한 생활 공간에서 자주 사용된 만큼 전시할 때도 뛰어난 상상력이 필요하다. 어떤 맥락 속에서 민속품이 전시되는가에 따라 관람객의 반응이 다르다. 때문에 이야기의 선정, 다른 유물과의 조화, 전시 기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민속품은 가까운 옛날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것이 제법 많다. 관람객 중에는 많든 적든 실제로 그것을 사용하거나 혹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곳에서 봤던 사람이 제법 있다. 사람은 자기의 삶과 연결된 유물을 보면 반갑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진다. 다른 유물과 구별되는 민속품의 강점이다. 관람객이 어떤 전시를 만나는가에 따라 그들의 이야기 주머니가 열렸다 닫혔다 한다.    

온양민속박물관의 일상적인 전시는 상설전시실과 야외전시장에서 진행된다. 상설전시실의 전시 주제는 한국인의 삶, 한국인의 일터, 한국 문화와 제도 등 세 가지다. 각 주제는 여러 소주제들로 구성되었다. 상설전시실은 큰 주제마다 층이 달라 공간적으로 분명하게 구분된다. 또 주제마다 다른 전시 기법으로 유물을 부각시켰다. 전시 기법을 살펴보려면 야외전시장도 빼놓을 수 없다. 상설전시실과 야외전시장을 두루 살펴봐야 온양민속박물관의 전시 기법과 효과가 눈에 들어온다.

설치 미술을 떠올리게 하는 쟁기 전시. ⓒ박찬희

첫 번째 주제인 한국인의 삶은 진열장 안에 유물과 사람 모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던 전시는 다음 전시실로 가면서 큰 반전을 맞는다. 집의 여러 공간을 시원하게 연결했고 그 집 내부를 여러 가지 유물들로 채웠다. 여러 박물관에서 자주 사용하는 전시 기법이지만 이곳에서는 부엌, 안방, 마루, 사랑방이 두루마리 그림처럼 길게 펼쳐졌다. 집 안 구석구석을 채우는 유물들은 허술하지 않고 알차다. 박물관 개관을 준비할 당시부터 체계적으로 민속품을 수집한 결과로 보인다. 덕분에 잠시 서서 이곳을 살펴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생활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민속품은 현대적인 감각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만약 의(衣) 즉 옷에 관련된 전시를 본다면 생각이 바뀔지 모른다. 이곳에서는 민속품 한 점 한 점이 돋보이도록 전시했다. 민속품 사이의 간격, 배치, 민속품을 받치는 받침대에 아기자기한 변화를 주어 관람객이 어렵지 않게 민속품의 현대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인지 백화점의 명품관을 보는 것 같다. 유물이 어떤 공간에 어떻게 전시되는가에 따라 관람객이 받는 인상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곳이다.

2층은 두 번째 주제인 한국인의 일터가 펼쳐졌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다 깜짝 놀란다. 소가 끄는 쟁기가 전시실 바닥이 아니라 공중부양이라도 하는 듯 허공에 매달렸다. 둥둥 떠 있는 쟁기를 보는 순간 설치 미술 작품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높은 곳에 매달린 쟁기가 낯설게 다가와 새롭다. 이 전시실에서는 유물의 전시 높이 개념을 바꾸어 여러 농기구가 입체적으로 보인다. 특히 소가 끄는 농기구는 비록 소는 없지만 소가 있는 듯한 상상을 부른다. 또 사람은 없지만 사람들이 농기구로 작업하는 현장을 눈앞에서 보는 것 같다. 진열장은 농기구를 비롯한 각종 도구들이 넉넉히 들어갈 정도로 넓다. 만약 농기구가 좁은 유리 진열장 안으로 들어갔다면 농기구에 스며있는 땀, 일하는 소리, 한숨, 기쁨의 생생함은 그만큼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생기를 불어넣는 목가구 전시. ⓒ박찬희

전시실 모퉁이를 돌아서면 눈을 의심하는 유물이 나온다. 배다. 모형인가 싶었는데 1977년까지 바다에서 활약하던 진짜 배였다. 바닷물 대신 큰 자갈돌이 배를 띄웠다. 배를 부각시키기 위한 특별한 장치가 없지만 그래서인지 오히려 배를 집중해서 본다.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던 어부들, 이 배를 수집한 사람들, 바다의 배가 육지의 박물관으로 들어온 과정이 눈앞에 보일 듯하다. 때로는 최소한의 장치가 더 큰 상상을 부른다.

비밀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통로를 따라 올라가면 3층이다. 이곳은 한국 문화와 제도를 주제로 한 전시실이 펼쳐진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눈이 환하게 밝아진다. 유물이 밝은 주황색 옷을 입었다. 진열장 안을 주황색으로 처리해 짙은 갈색의 목가구와 공구들이 명랑해 보인다. 목가구와 공구는 대부분 어둡고 무거워 보이는데 이 진열장에서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진열장 내부는 관람객이 차분히 유물에 집중하고 유물이 주변 영향을 덜 받도록 하얀색이나 회색과 같은 차분한 색으로 처리한다. 이 전시실 대부분도 기본적으로 그렇다. 그러나 유물에 따라서 주황색, 분홍색, 노란색을 사용해 전시실 분위기를 바꾸고 유물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요즘 박물관에서는 비슷한 유물을 대량으로 모아 전시하곤 한다. 특히 토기를 전시할 때 그런 경향이 짙다. 토기 한두 점으로는 별다른 전시 효과를 얻지 못하지만 일정한 공간 안에 대량으로 모여 있으면 모여 있는 그 자체로 압도적이다. 1 더하기 1은 2가 아니라 몇 배의 효과를 낸다. 이곳에서는 토기가 아니라 탈이 일정한 배치에 따라 긴 벽면을 가득 채웠다. 이 벽면은 점을 찍어 완성한 인상파의 그림처럼 탈이라는 점으로 만든 작품 같다. 복잡한 인간의 표정을 담은 탈이어서 더욱 강렬하다. 

마실을 가는 듯한 야외전시장. ⓒ박찬희

박물관 전시실을 나오면 야외전시장이다. 구색을 맞추는 뒷마당이 아니라 넓은 마을 정도다. 마을에 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마실을 가듯 쉬엄쉬엄 걸어가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문화재가 얼굴을 내민다. 어느 순간 불상이 맞아주는가 하면 비각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숲 한 곳에 석물들이 옹기종기 모였고 나지막한 언덕에는 강원도에서 이사 온 너와집이 굳건하게 서있다. 문화재들은 적당한 곳에 알맞게 전시되어 산책하며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다. 

다양한 전시 기법으로 유물을 소개해도 관람객이 눈여겨봐야 의미가 크다. 박물관이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으려면 천천히 음미하듯 걸어야 한다. 그래야 유물, 세심하게 신경 쓴 전시실, 전시의 변화가 보인다. 진열장마다, 전시실마다 서로 다른 전시 기법을 살펴 가며 전시를 보는 즐거움이 제법 쏠쏠하다. 민속품이 전시된 만큼 빨리빨리에 익숙한 발걸음을 잠시 잊고 옛사람들의 생활 리듬에 맞춰 조금만 천천히 걷고 멈추다 보면 전시실 속 민속품이 말을 건넨다. 발걸음을 멈추는 순간 옛사람들의 삶이 보이고 그들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유물을 빛내는 신선한 전시와 그 전시에 알맞은 발걸음, 이 둘이 어울려 매혹하는 전시실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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