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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단-동덕여대의 울타리
교수논단-동덕여대의 울타리
  • 김정란 상지대
  • 승인 2003.12.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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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란 상지대 불어불문학 교수 ©
동덕여대의 고통이 한 해를 넘기고 있다. 발랄한 여학생들이 스스로의 수업권까지 포기하면서까지 일년이 가깝게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고 있지만, 학교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이 있는 재단이나, 문제를 풀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교육부는 팔짱을 끼고 수수방관하고 있다. 수업일수 결손으로 학생들이 대량으로 유급될지도 모르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불을 지른 사람들과 불을 꺼야 할 소방수 모두 사태를 방관하고 있는 형편이다. 저러다가 지치면 불 혼자 꺼지겠지, 그런 속셈인 걸까.

이 사태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보다도 도덕성 없는 재단이 학교 운영을 사익추구 수단으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원인은, 대부분의 비리사학들이 그렇듯이 족벌 체제라는 소유형태의 특성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다. 족벌에게 학교라고 하는 가장 공익성이 큰 기관의 경영이 맡겨져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사회의 큰 비극들 중 하나이다. 여기에 교육부의 너무나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태도가 문제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다른 원인이다. 문제가 불거진 초기에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문제가 커지지 않고도 해결이 가능했을 것이다. 교육부가 주로 내미는 핑계는 ‘사립학교법’이다. ‘사립학교법’ 때문에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조치’를 취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투성이인 사립학교법은 차제에 개정돼야만 마땅하다. 그것은 그 문제대로 해결할 일이되, 우선 당장은 학교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풀어야 한다.

학생들과 교수들의 문제제기 과정에서 문제시됐던 재단의 비리 의혹들 대부분이 이미 사실로 밝혀졌다. 그 수법을 보면, 통탄스럽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다. 이들은 대학을 자신의 사금고로 생각한다. 학생들이 낸 등록금이 자기 돈인 줄 안다. 그리고 교비로 설립된 사회교육원의 이익금을 빼돌렸을 뿐만 아니라, 그 운영비마저 교비로 충당했다. 교수 임금을 가짜로 신고하는 고전적인 수법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런 범법자들을 교육부는 ‘사립학교법’ 핑계만 대면서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학생들과 교수들의 주장을 묵살하고, 계속해서 문제가 덧나는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재단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문제를 모면해 보려고 눈속임수만 써왔다. 교육부는 이러한 시도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미봉책으로 얼렁뚱땅 넘기려 했던 것이다. 학생들 수천 명이 거리로 뛰쳐나오고, 학생과 교수들이 삭발을 하면서까지 목이 터지도록 요구하고 있는 이 문제를 어떻게 이렇게 안이하게 대처했던 것일까.

상지대가 비리재단과의 갈등 속에서 고통을 겪었지만, 구성원들이 합심하여 문제를 풀었던 일이 이미 십여년 전의 일이다. 상지대는 지금 대한민국 어느 대학보다도 민주적인 대학으로 빠르게 발전해 가고 있다. 10년의 세월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도 이런 문제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명목상의 민주화는 이루어졌으되, 민주화의 실질이 달성되는 과정은 참으로 지난하고 험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더 하게 된다.

동덕여대 구성원들의 요구는 너무나 정당하다. 학생들은 재단의 주머니를 불려주기 위해서 등록금을 가져다바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교육을 받고, 밝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 학교라는 공익 기관에 자신의 미래를 의탁한 것이다. 따라서 단지 학교의 법적 소유주라는 이유 한 가지만으로, 파렴치한 전횡을 저지르고도 그 자리를 고수하겠다는 발상은 근본부터 잘못된 생각이다. 존경을 잃은 재단이사장은 학교라고 하는 신성한 공간을 떠나야 한다. 떼어먹었던 돈을 돌려주었다고 원인무효로 돌릴 수 없다. 교육부는 당장 관선이사를 파견하여 동덕여대 문제를 해결하라.

아울러 고통을 겪고 있는 동덕여대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보낸다. 지치지 말고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기 바란다. 상지대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는 그것을 배웠다. 그 기간은 내가 실제로 내면화할 수 있었던 빛나는 코뮌의 경험이었다. 아무리 약하고 힘이 없다고 해도, 정당성이라는 울타리 안에 함께 모여 있는 구성원들은 스스로의 연약함으로부터 힘을 길어낸다. 그때 사랑은 단순히 추상적인 덕목이 아니라, 구체적인 힘이며 전략이다. 사랑과 믿음만이 문제를 해결한다. 나의 존경과 사랑도 함께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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