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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장원제
서양의 장원제
  • 조재근
  • 승인 2020.05.19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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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장원제
서양의 장원제

마르크 블로크 지음 | 이기영 옮김 | 한길사 | 276쪽

『서양의 장원제-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에 대한 비교사적 고찰』는 여러 가지 점에서 서로 닮고 동일한 추세의 영향을 받았는데도 서로 몹시 다른 두 이웃 사회, 곧 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 역사를 탐구한다.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 1886-01944)는 『서양의 장원제-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에 대한 비교사적 고찰』에서 ‘장원제의 역사’를 추적한다. 하지만 모든 유럽사회의 장원제를 탐구하지는 않는다.

그와는 정반대로, 여러 가지 점에서 서로 닮고 동일한 추세의 영향을 받았는데도 서로 몹시 다른 두 이웃 사회, 곧 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 역사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장원제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고 어떤 사회를 구성하려 했는지를 살펴보려는 의도를 지닌다. 더 나아가 장원제가 두 국가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밝힌다.

마르크 블로크는 20세기 초 영국과 프랑스의 농촌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 경제적 구조의 차이가 어떻게 생겨났을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외관상 영불해협의 프랑스 쪽 땅은 울타리가 없이 탁 트인 개방경지제와 집촌(集村)을 특징으로 하는 풍경이 펼쳐지는 데 비해, 영국 쪽은 울타리로 둘러쳐진 경지제도와 외딴집(散村)으로 된 풍경이 전개된다.”(29쪽) 또한, “농촌사회의 구조에서도 영국은 프랑스에 비해 농업인구의 비중이 훨씬 낮고, 토지 가운데 곡물경작지가 훨씬 적은 대신 목초지의 비중이 높아 곡물의 자급률이 매우 낮으며, 대토지 소유제가 지배적이다.

이에 반해 프랑스는 농업인구의 비중이 훨씬 높고, “곡물경작지의 비중과 곡물의 자급률이 매우 높으며, 대토지 소유가 존재하지만 중소 규모의 농민적 토지소유와 병존한다.”(29쪽) 블로크는 이렇게 차이가 생기는 이유가 ‘자연발생적’이지 않으며 두 국가의 ‘장원제’를 비교하면서 그 이유를 밝히겠다고 선언한다.

이처럼 이 책에서 단연 돋보이는 연구방법은 비교사적 방법이다. 현대 영국과 프랑스 농촌사회가 지니는 차이의 원인을 시종일관 양국의 장원제 역사를 비교해 고찰함으로써 규명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형태의 장원은 두 부분의 토지로 구성된다. 한 부분은 땅의 소유주이자 지배자인 영주가 여러 가지 노동력을 이용해 직접 경영하고 그 수확물을 차지하는 영주직영지다. 다른 한 부분은 소규모의 농장들로 구성되며 그 보유자는 영주에게 각종 부역노동과 공납을 이행할 의무를 지는 농민보유지다.

장원제는 본질적으로 경제적 차원의 제도다. 하지만 장원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장원제가 중세에 사회구조를 구성하는 기본요소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는 것, 즉 가족, 봉신(封臣) 집단, 도시공동체처럼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기본단위 조직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장원제는 이런 경제적 차원의 이익 도모와 지배권과의 결합이며, 강한 지배권과 경제적으로 착취할 수 있는 권력이 영주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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