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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살리는 회복적 생활교육
학교를 살리는 회복적 생활교육
  • 조재근
  • 승인 2020.05.14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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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살리는 회복적 생활교육
학교를 살리는 회복적 생활교육

 

김민자 이순영 정선영 지음 | 살림터 | 256쪽

학생인권조례 제정, 체벌금지 정책 등으로 지금은 과거처럼 명령과 복종, 억압과 강제로 학생들을 지도할 수 없다. 불행하게도 학생인권조례가 폭넓은 인권차원이 아니라 체벌 찬반 논쟁으로만 치닫게 되면서 교권과 인권 사이에서 방향을 잃고 오히려 관계가 무너져버렸다. 관계가 무너진 교실에서 진정한 배움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학생과 학생의 관계는 물론이고 교사와 학생, 교사와 교사의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이 관계를 회복해야 학교가 살고, 교육이 살 수 있다.

『학교를 살리는 회복적 생활교육』은 답답한 교육현실에 ‘회복적 생활교육’의 철학을 토대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관계가 무너진 학교현장이 회복적 생활교육을 통해 어떻게 살아나는지를 생생하고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규범을 준수하지 않는 학생을 처벌과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기 않는다. 그런 학생일수록 관계의 회복을 통해 책임감과 상호 존중을 배우는 학생이 되도록 이끈다. 이 책은 그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회복적 생활교육이 갖는 힘을 절감하게 한다.

회복적 생활교육의 근간은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패러다임 위에 세워진 생활교육 방식이다. 회복적 정의는, 잘못된 행동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가 자발적 책임을 지도록 하며, 피해자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참여하여 그 피해가 최대한 회복되었을 때 정의가 이루어진다는 신념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잘못에 대해 처벌하는 것을 넘어서 학생과 공동체의 성장과 변화를 목표로 회복적 정의의 패러다임을 학교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존중과 책임’, ‘관계’라는 회복적 생활교육의 핵심 가치는 회복적 정의의 나침반에 따라 살아가다보면 공동체라는 열매를 맺게 됨을 보여준다. 이 책은 학생 생활교육에 대한 근본 개념을 회복적 정의로 대체할 것을 주문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자기 경험을 통해 구체적으로 회복적 생활교육을 소개하고 있어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옛 질서와 가치는 무너지고 이전에 유용하던 방법들이 더는 작동되지 않는 이때 이 책이 제안하는 생활지도는 교사와 학교에 대한 인식 변화는 물론 신뢰 회복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 1장은 개인이 만난 회복적 생활교육에 관한 것이다. 회복을 만나기 전의 모습과 회복을 만난 후 자신의 가치와 신념이 어떻게 변화되었고, 그 소중한 가치들을 가정과 학교에서 어떻게 나누며 살았는지 진솔하게 펼쳐보인다.

2장은 학급 운영으로 만난 회복적 생활교육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관계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관계를 잇는 것은 ‘존재에 대한 연민’이다. 그 존재들을 안전하게 만나기 위한 공유목적 세우기, 신뢰형성서클을 공들여 소개하고 있다. 특히 갈등전환서클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했다.

3장과 4장은 평화적 하부구조가 교실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그 평화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기존의 교사 중심의 생활지도에서 평화적 압력을 바탕으로 한 교실공동체 문화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했다. 실제로 프로그램을 구안하고 실천하면서 예측 가능한 자료도 제대로 없어서 ‘이게 과연 될까?’ 불안했던 자신들의 경험을 떠올리며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교사들은 이런 불안감과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직접 실천했던 프로그램과 적용할 때의 생생한 교실 풍경을 공들여 들려준다.

또한 4장에서는 교사의 ‘자기 돌봄’에 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교사는 자신이 맡은 학급의 어려움을 겉으로 드러내서 말하지 못하고 혼자 해결해보려고 하다가 결국 마음과 몸이 상하는 경우가 많다. 차마 말하지 못하는 속마음을 들어주는 단 한 사람이 필요한 교사들에게 이 책은 그 한 사람이 되어 줄 것이다. 공동체로 만나는 ‘교사 내면의 방’과 ‘나만의 내면의 방’은 그런 마음을 담았다. 또 교실의 평화적 하부구조가 무너졌을 때 어떻게 교실을 재건해나가는지 학급에서 적용한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교실이 무너졌다는 것은 곧 관계가 훼손되었다는 것이기에 그 관계를 어떻게 세우는지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5장에서는 2019년 8월에 개정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서 달라진 점을 다루었다. 관계회복을 위해 교육적 접근을 하도록 물꼬를 열어준 학교장 자체해결 조건과 절차, 학교현장에서 기대하는 점과 우려하는 점을 살펴보았다. 또한 학교현장에 도움이 되는 갈등조정 과정과 사례를 소개하였다. 회복적 대화모임 방식을 자세히 소개한 것은 학생들과 갈등하면서 소진되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을 담은 것이다.

이 책에는 표지를 비롯하여 각 장마다 물방울을 머금고 있는 벌새가 나온다. 이는 <벌새 이야기>에 등장하는 벌새가 회복적 생활교육의 상징처럼 사용되기 때문이다. 안데스산맥 어느 산에 큰불이 났다. 모두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는데, 작디작은 벌새 한 마리가 깃털 전체에 물을 적시고 입에 머금은 뒤 불이 난 숲에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본 동물들이 그러다가 까맣게 그을려 죽을 거라고 비웃었다. 그러자 벌새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알아. 그렇지만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벌새 이야기>는 회복적 생활교육이 지향하는 가치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들은 무너진 관계를 세우고 학교공동체를 회복하는데 기꺼이 한 마리 벌새가 되고자 한다. 비록 지금은 그 힘이 약할지라도 언젠가는 커다란 반향이 되어 우리 교육을 살리고 학교를 세울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책 곳곳에는 저자들의 이런 간절함과 진솔한 마음이 묻어난다. 무너진 관계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교사,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는 교사라면 이 책이 한줄기 빛처럼 훌륭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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