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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과 이한우, 그들이 용감한 이유
복거일과 이한우, 그들이 용감한 이유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12.05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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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 역사인물론의 리더십에 관한 논의들

한국에서 리더십을 학문적으로 다뤄온 영역은 행정학이다. 대통령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역대 대통령의 역능분석을 통해 리더십의 지표를 생산해왔다. 리더십 글쓰기는 경영학 분야에서도 활발해 실용서 판매대를 넘치게 채우고 있다.

국가나 기업의 리더가 자본주의 공화국에서 강력한 제도인 건 분명하지만, 한 개인 차원에 집중되는 저간의 논의 붐은 다소 불안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많은 경우 사회현상을 지도자 책임론에 입각해서 보려는 입장만 드러낼 뿐 시스템적 시각을 균형 있게 동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적 역사인물론의 한계

이런 현상은 리더십에 관한 인문학적 읽을거리에서 두드러진다. 이런 책들은 교양서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정교한 글쓰기로 저자의 이데올로기적 정향을 은연중 학습시키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비판적 분석이 필요하다. 최근 나온 두권의 책이 그렇다. 하나는 사회비평 활동으로 꾸준히 이슈메이커 역할을 해온 복거일의 ‘역사를 이끈 위대한 지혜들’(문학과지성사 刊)이다.

이 책은 진시황, 카이사르, 한니발, 도쿠가와 이에야스, 벤자빈 프랭클린, 클린턴 등 60여명의 역사인물의 삶과 사상을 통해 교훈이나 잠언을 뽑아내는 연작형태의 에세이다. 다른 하나는 이한우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세종, 그가 바로 조선이다’(동방미디어 刊)다. 조선적 이념과 제도를 파생시킨 장본인으로 세종을 주목하고, 그의 40대까지의 삶을 추적해 세종型 지도자상을 제시하려 했다. 이 두권은 역사인물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보여주는 최근의 사례로 꼽을 만하다.

복거일의 시장자유주의와 영어공용론, 친일용인론은 나름의 독자를 얻어왔지만, 논의의 일관성과 지적 정직성이 약하다는 평도 받아왔다. 이번 책은 사회평론가로서 그가 어떤 역사 지식을 축적해왔는가를 알려주고, 그럼으로써 보수주의 혹은 고전적 자유주의 논객의 지적 근원을 캘 수 있는 풍경의 일단을 노출한다.

그는 주로 학자와 정치지도자를 다뤘는데, 생각거리도 많이 던져준다. 가령 부시 미 대통령이 민주당 텃밭인 텍사스 주지사 시절, 반대파들을 잘 끌어안아 자신의 정치적 경력을 쌓았다는 부분에서 “화합 정치의 요체는 ‘적’에게 지도력의 매개기능을 맡겨서 반대세력에게도 자신의 지도력이 미치도록 해야 한다”라는 주장은 원칙적으로 올바른 통찰이다.

하지만 이것을 김대중 前 대통령에게 옮겨 “그의 통치시절 언론의 자유나 사회통합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는 주장으로 나아가는 것은 무리가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당시 세무조사를 언론개혁으로, 양당분열구조의 사회반영을 영남 헤게모니의 해체로 보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처럼 역사인물평에 종종 논란이 되는 주장을 곁들이는데, 전반적으로 논리적 비약을 많이 보인다. 우선 대상 인물 과반수가 제국 로마와 중국, 미국에 속해 있어 ‘선택의 과학’이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다. 물론 이는 저자의 자유이지만 그가 찬탄을 금치 못하는, 제국을 운영하는 진시황 등의 노하우가 후진타오의 중국과 부시의 미국에 둘러싸인 한국 상황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의 거시적 역사조망도 낯설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수십억년의 진화로 다듬어진 결과라, 2만년 역사시대는 인간욕망이 최근에 표출된 사례일 뿐이라며 역사읽기를 강조하는 부분이 그렇다. 인간본성에 대한 역사적·과학적 이해는 있지만, 각 시대별로 삶을 규정해온 사회구성체에 대한 고려가 빠진 탓이다. 그런 절름발이 역사추출물을 현대에 적용시키는 그의 과감성은 때로는 수긍도 가지만 때론 매우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교양으로 포장된 일방주의적 신화

이한우의 책은 세종 전기라 보기도 힘들고, 세종型 리더십도 그럴싸하게 제시하지 못했다(본문의 세종예찬을 종합해야 할 결말부분이 아예 빠져있다). 40세까지 세종의 삶을 따라갔는데 자료도 한글로 번역된 ‘세종실록’을 주로 보고 썼다.

저자는 서문에서 학계의 연구를 섭렵하지 않은 이유가 “학술 논문 냄새가 나서 생생함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밝히는데 변명으로 읽힌다. 실제로는 이숭녕 박사를 비롯해 몇몇 책과 논문의 도움을 받지만 선행연구 전반을 포괄하지 못할 뿐이다. 또한 저자는 신격화된 세종을 인간으로 끌어내리겠다고 서문에서 밝혔지만, 본문에서는 오히려 세종을 영웅시하는 듯하다.

經學과 史學의 균형, 이단시되던 불교의 포용, 부녀자 간통을 性본능의 표출로 이해하는 모습 등을 통해 세종의 인간됨, 학문관, 신료들을 다루는 방식 등을 재구성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실록에만 의지해서 취사선택됐고 과장해석도 보인다는 점이다. 실록의 총감독이 정인지였던 만큼 집현전에 대한 서술은 저자도 그 사실 여부에 의문부호를 찍는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당대의 朝廷이라는 권력장의 콘텍스트를 객관적으로 확보하지 못했다. 당시의 사회구성체 속에서 국왕 리더십의 의미, 오늘날과의 온당한 비교 등에서도 별다른 의식이 없다. 다만 리더에 대한 저자의 관념적 욕망을 세종에게 투영시키는 私的인 주장을 내세운다. “민주시민이라면 지도자를 감별하는 눈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은 그야말로 ‘슈퍼맨’의 왕림을 기다리라는 것과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책은 잘 읽히고 나름대로 재미도 있다. 드라마 연속극처럼 치열한 두뇌싸움, 기싸움에 대한 따라읽기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편협된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리더십에 대한 학제적 논의공간 생겨

오늘날의 리더십은 행정적 효율성, 조직 개편, 개인의 퍼스낼리티 차원에서 논할 것이 아니다. 최근 정치사상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공동체주의에서의 리더십, 모던적 리더십 개념에서의 탈피, 인터넷시대의 리더십 등이 고민되기 시작하는 일은 반가운 일이다.

리더십이 학제적 관심영역으로 거듭나, 편협된 시각으로 극단의 풍경을 빚어내는 인물론의 폐해가 빨리 지적 공공영역에서 퇴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물론을 쓰려면 역사로 고개를 돌릴 게 아니라, ‘시사인물사전’같은 책처럼 동시대를 소묘해나가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역사인물이 오늘날 여러 가지 무리한 주장의 근거로 활용되는 것은 그들에 대한 기록이 부족한 까닭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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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03-12-19 10:05:50
저도 정기 구독하고 있는 데 정말 재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