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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모임을 찾아서9: 역사인류학연구회
연구모임을 찾아서9: 역사인류학연구회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1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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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사를 가꾸는 사람들

국내에서 역사인류학이 수면위로 오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인류학의 방법론들이 현재의 지역 연구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1993년 5월에 열린 한국인류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는 역사인류학에 관련한 논문들이 여러 편 발표됐던 것은 당시만 해도 독특한 현상이었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역사인류학 학위 소지자들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접근법을 선보였던 것. 학술대회를 마치고 역사인류학을 전공했거나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은 자연스럽게 연구회를 만들기로 했다. 같은 해 6월 18일 첫모임을 가지면서, 소장 인류학자들로 결성된 '역사인류학연구회'(회장 오명석 서울대 교수)의 출발은 첫 발을 내딛었다.

오명석 교수, 함한희 전남대 교수, 윤택림 정문연 연구교수, 윤형숙 목포대 교수, 송도영 서울시립대 교수, 한경구 국민대 교수, 한승미 연세대 교수, 김은희 정문연 연구교수, 한건수 강원대 교수, 유철인 제주대 교수, 박부진 명지대 교수 등 10여명이 주요 얼굴들인데 창립 멤버 대부분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소속 및 출신학교도 다양한 편이어서, 작은 연구모임치고는 꽤나 전국적인 모임이다. 하지만 상당수가 서울에 거처를 두고 있어 주로 모임은 서울서 연다. 그래서 제주도에 있는 유철인 교수는 매번 비행기를 타고 오르내리고 있다.

독회모임에서 연구모임으로

역사인류학연구회의 모임은 매달 첫 번째 토요일 미래인력연구센터에서 열린다. 학자들 스스로도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관련한 외국 서적 등 같이 읽어나가는 독회모임의 성격이었다. 모임초기에는 이런 독회만으로 회원들의 참석을 끌어낼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활동이 점차 느슨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규모가 작다보니 한 두 사람만 빠져도 휑하니 김이 새기 십상이고, 속력을 붙여나가기도 힘들었다.

고민 끝에 이들이 잡은 화두는 '역사인류학의 관점들을 한국사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 라는 것이었다. 독회모임에서 연구모임으로 일종의 방향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이후 조선후기부터 일제시대를 대상으로 하는 한국사 책들을 읽어내고, 관련 연구자들을 초청해 본격적으로 세미나를 열기 시작했다. 연구회 회원 대부분이 참가해 따낸 대우학술재단의 지원연구 '해방 이후 충남 서산지역의 지방사: 역사적 담론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는 연구회가 올린 첫 공식성과였다. 1995년부터 2년간 진행했는데 지역 생활공간의 변화, 토지소유에 대한 관념의 변화, 현대 간척사업에 따른 주민 피해보상운동, 전통의례의 부활과 재창조, 여성의 생애사·가족사 등을 두루 살핀 이 연구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지방사 연구였다. 이 때의 연구 보고서들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내년 초 단행본으로 나온다.

한국근대사의 일상 연구 계속할 터

한번 가닥 잡기 시작한 방향은 다채롭게 그 맥을 뻗어나가고 있는데,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한국생활문화사' 연구다. 일제시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부엌과 혼인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이 연구는, 무심하게 넘어갔던 일상의 모습들을 찾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도 시장, 죽음 등의 일상의 테마를 가지고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며, 연구회 회원을 중심으로 외부 연구자들과의 연계를 강화시켜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의 작업은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역사학 분야의 미시사·일상사 연구와도 많이 부분 겹쳐있다. 역사학과 인류학의 차이점도 궁금해질 터. 오명석 회장은 "역사인류학에서는 문화의 상징과 의미에 집중한다"라고 설명했다. 문헌 연구를 통한 역사서술보다는 구술사 등을 발굴하고 기저에 깔린 의미에 접근한다는 것이다.

모임이 출발한지 꼭 10년이 되는 지금 역사인류학에 대한 관심도는 부쩍 늘었다. 윤택림 교수의 '인류학자의 과거 여행: 한 빨갱이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 등 개인의 성과물도 나와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른 분과학문에 비하면 연구자들의 수도 적고 학문적 입지도 좁은 편이지만, 꾸준한 걸음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 것. 앞으로 이들이 조명할 한국근대사회의 문화적 의미가 무엇인지 새삼 기대가 된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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