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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페스탈로치 비명(碑銘)
다시 읽는 페스탈로치 비명(碑銘)
  • 교수신문
  • 승인 2020.04.0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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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남을 위해 있으며 스스로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가 1827년 2월 17일 81세로 영면한  페스탈로치의 묘지명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은 인류의 교사. 교성(敎聖)이라 일컫는 페스탈로치(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 : 1746~1827) 교육 철학과 같은 맥락일게다.

18세기 유럽 왕족과 귀족 등 상류계층을 위한 교육을 민중을 대상으로 제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코페르니쿠스적 레짐(Regime) 체인지로 교육계에선 높이 평가하고 있다.

교육의 기회균등을 강조한 교육사상은 지식정보화를 뛰어넘어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하게 밀려오는 오늘날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유효한 시대정신이라 하겠다.

페스탈로치는 1746년 1월 12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아버지 요한 밥티스와 어머니 봐델스 빈의 둘째 아들로 청빈하고 다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외과의사였던 아버지가 5살 때 세상을 떠나 어머니와 충실한 가정부 바벨리의 정성어린 보살핌에서 자랐다.

그는 8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갔으나 선생님과 학우들에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 수집고 고독한 소년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도시생활보다 전원생활을 동경하게 되었다. 수집고 감수성이 예민한 페스탈로치는 16살에 취리히 대학에 입학, 신학을 하여 성직자가 꿈이였으나 룻소의 자유주의에 심취되어 순수한 생활과 광범위한 인본주의에 영향을 받아 신학을 멀리하게 되었다.

또한 법률공부를 하여 실제적 사회개혁의 열정으로 교육이 최선의 길이란 신념을 갖고 교육의 길에 투신하였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페스탈로치는 목사였던 할아버지는 아름답고 감명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는 할아버지가 교구를 방문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동행하여 농촌생활을 생생하게 체험하였다.

훗날 그가 농민생활 개선에 열정을 쏟는 계기가 되었으며 7살 연상인 아내 안나슐테와 노이호프 농장경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농장경영은 열정과는 달리 순조롭지 않았다.

결국 목화재배 실패로 6년만에 농장경영을 포기하고 저술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이처럼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가 의욕을 잃지 않고 열정을 쏟을 수 있었던 것은 7년 연상인 아내의 헌신적 내조가 있어 가능하였다.

안나는 페스탈로치에게 어머니같은 포근한 사랑과 여느 아내처럼 애틋한 애정을 아낌없이 주었다.

그들은 대학시절 애국단체에 소속되어 사회개혁활동에 참여하여 1769년 결혼하여 사회개혁에 열정을 쏟았다. 사회개혁은 부부의 꿈이었던 것이다.
프랑스 시민혁명(1789)의 여파로 스위스로 밀려온 난민을 위해 슈탄스고아원을 설립, 전쟁고아를 돌봤으며 그 후 부르크 도르프 이베르돈에 학교를 세워 독자적으로 교육제도를 실천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수많은 저서들을 보면 전쟁고아를 통해 온갖 고경(苦境)을 인내하면서 언제나 교사로 열정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교육이란 외길을 걸었던 강인한 실천성으로 인류구제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확립하여 소상히 전개한 교육천재의 품성을 유감없이 보였다.

대표저서론 농민학교(노이호프 농장) 운영 실패 후 쓴 교육 선언 <<은자의 황혼>> (1780),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한 불후의 교육소설 <<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 (1781), 그의 근본적 철학적 인간학적인 사상이 담긴 <<인류 발전에 있어 자연의 운행에 대한 나의 탐구>> (1797), 교육방법에 대한 독자적 견해를 담은 <<게르트루트는 어떻게 그의 아들을 가르치는가>> 등이 있다.

또한 만년의 역작인 <<백조의 노래>> (1828)에서는 교육사상으로서 전인적(全人的), 조화적 인간도야의 입장을 읽을 수 있다.

이 저서에서는 인간성에 대인 깊은 신뢰와 신(伸)에 대한 순수한 신앙이 그의 생활과 사상의 바탕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는 아동중심의 교육을 중요시하며 자발적인 감정경험과 사회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력을 키워야 한다는 교육철학을 주장, 오늘날에도 중요한 교육기저가 된다는 평가다.

페스탈로치는 전통적 유럽 계급사회에서 교육의 혁명적 사회활동으로 결코 호의적인 시선이 아닌 분위기에서 세상을 등졌다.

그의 교육철학은 자유민주주의 세상이 추진하고 있는 교육유토피아 실현을 과제로 남겨두고 영원히 잠들었다.

그렇다. 오늘도 그는 딴 세상에서도 수많은 어린이들이 재잘대며 뛰어노는 공원에서 행여 다칠새라 한시도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함기철 신한서 재능경력 대학원 이사장, 총장
함기철 신한서 재능경력 대학원 이사장,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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