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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학계: 에드워드 사이드를 추모하며
해외학계: 에드워드 사이드를 추모하며
  • 황종연 동국대
  • 승인 2003.10.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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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지학 創導한 실천적 知性

  뉴욕 시간으로 9월 25일 목요일 아침 에드워드 W. 사이드가 맨해튼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사이드는 36개 국어로 번역된 '오리엔탈리즘'을 비롯한 많은 저작으로 20세기 후반 미국과 유럽의 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문학비평가이자 미국의 중동 정책에 맞서 그의 조국 팔레스타인의 대의와 이슬람 문명을 줄기차게 옹호한 公衆 지식인의 표본이었다. 또한 직업적 연주자급의 피아노 실력과 서양 음악에 대한 조예를 두루 갖춘 음악비평가이자 뉴욕시의 다국적, 혼성적 문화의 모범을 보여준 뉴요커였다. 1991년 이래 백혈병과 싸워온 그는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67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서거 다음 날 뉴욕타임즈는 반 페이지 가량의 부고를 실어 동서양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그의 망명자 풍모와 정치적 성향을 부각시켰다. 그가 사십 년 넘게 영문학 및 비교문학 교수로 재직한 컬럼비아대에서도 애도와 추모의 목소리가 잇달아 나왔다. 전임 총장 조너선 콜은 한 세대에 걸쳐 학생과 동료들에게 삶을 향상시키는 영향을 미친 문학비평가라고 칭송했으며, 영문과 동료 브루스 로빈스는 탈식민학 분야를 그 혼자 창시하다시피 했다고 일깨웠다. 그의 서거 당일에는 재학생들이 자진해서 그의 연구실이 있는 건물 앞에 모여 고인의 영령을 지키는 비공식 불침번을 서기도 했다.

사이드라고 하면 보통 탈식민주의를 떠올린다. 탈식민지학을 성립시킨 발상, 개념, 방법의 많은 부분이 '오리엔탈리즘'을 비롯한 그의 저작에서 유래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특정 학문이나 이론에 국한시켜 그의 비평을 이해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의 비평에는 제국주의와 공모한 서양의 학문과 문학에 대한 비판과 함께, 비코 이후 문헌학 또는 휴머니즘에 대한 애착이 나타난다. 실은, 주의(主義)라는 것만큼 사이드가 생각한 비평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도 없다. 그는 비평이 이론적, 정치적 도그마로 축소된다면 그것은 곧 비평의 종말이라고 여겼다. 그가 믿은 비평의 소임은 세속적 세계 속에 확고한 기반을 가지고 인간의 자유에 복무하는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다.

현대 비평의 맥락에서 보면 사이드는 문화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회생시킨 공로가 크다. 그는 텍스트의 자급자족성을 강조하는 탈구조주의 이론에 반대하고 텍스트가 처해 있는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텍스트를 이해하려 했다. 그가 '처세성worldliness'이라고 부른 텍스트 본연의 성질은 텍스트의 발생, 의미, 효력을 결정한 정치적, 사회적 정황과 관련하여 텍스트를 읽도록 요구한다. 특히, 텍스트가 세계에 거처하는 방식을 좌우하는 권력과 어떻게 관계하는가를 탐구하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텍스트의 정치적 처세성에 대한 인식은 사이드 자신의 비평에서 유럽문화와 제국주의의 복합적 관계에 대한 탐구로 구현된다. '오리엔탈리즘'에서 그는 오리엔트라는 유럽인들의 담론적 구성물이 그 지역을 자신들의 지배하에 두려는 유럽인들의 권력과 연루되어 있음을 밝혔고, '문화와 제국주의'에서는 유럽소설에 담긴 인간 세계의 표상들이 제국주의의 사명과 앙상블을 이루고 있음을 논증했다.

사이드의 저작을 둘러싼 논란은 그의 생전 내내 끊이지 않았다. 그의 오리엔탈리즘 비판이 이론상 조리가 없다거나 오리엔트학의 실상에 소홀하다는 이유, 오리엔탈리즘을 배격하는 근거가 서양 휴머니즘의 가치들이라는 이유, 오리엔탈리즘의 대안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미미하다는 이유, 서양 및 비서양의 반제국주의 문화를 온전하게 재현하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줄곧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가 제국주의 문화를 전유하여 제국주의 권력에 대한 저항을 창출하는 지적 작업에 혁신과 융성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부정 못할 사실이다. 그의 비평은 그야말로 제국에 대한 '되받아쓰기'의 전범을 이루었다. 서양문화의 지구적 헤게모니 아래서 자기 자신과 민족을 어떻게 정의하고 표출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비서양의 지식인들에게 그의 비평적 유산은 풍부한 영감과 용기의 원천으로 남아 있다. 

황종연/동국대·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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