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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리뷰 : '문화다양성과 공동가치에 관한 국제포럼'을 보고
논쟁리뷰 : '문화다양성과 공동가치에 관한 국제포럼'을 보고
  • 김신동 한림대
  • 승인 2003.10.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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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론에 머문 '글로컬리제이션' 논의

김신동 /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이른바 글로벌리제이션의 시대다. 세계화는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닌 지금 목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달 23일부터 사흘간 경주에서 열린 ‘문화 다양성과 공동가치에 관한 국제포럼’에서도 문화의 세계화를 둘러싼 학술회의가 열렸다. 지난 십여 년 사이 세계화에 관한 이론에 기여한 학자중 한 사람인 영국 애버딘 대학의 롤랜드 로벗슨 교수도 참석해 다른 참가자들의 기대를 모았다. 세계화라고 부르는 전지구적 사회문화변동 현상이 이제 어떤 지경에 이르고 있는지, 또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개념화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해서 노학자의 예지를 엿보고 싶었던 것이다.

로벗슨 교수는 특히 글로벌리제이션이 로컬라이제이션과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점에 주목해 논지를 펴와, 일종의 자기만의 트레이드마크를 만들어 왔다. 이날 발표에서도 그는 글로컬리제이션, 즉 ‘세계화’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현상이 작금의 글로벌리제이션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세계화의 물결과 지역화의 물결이 부딪치는 갈등과 융합의 접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사실상 글로컬리제이션이라고 우리가 지금 부르는 현상에 유사한 일이 일본과 한국 등에서 오래 전부터 이른바 ‘토착화’라는 개념을 통해 실현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의 토착화, 서구문물의 한국적 토착화 등은 우리 귀에 매우 익숙한 이야기로 들린다. 요컨대 서구의 문물과 사상 등을 받아들이되, 우리 체질과 토양에 맞게 변형하고 개조해서 수용하자는 것일 게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지면 東道西器나 中體西用을 표방한 근대 개화론자들의 입장이 어렵지 않게 연상된다. 옳은 말이고 좋은 뜻이다. 그러나 외래 문물의 주체적 수용을 강조한 토착화의 개념으로부터 세계화와 지역화의 동시적 진행 속에서 세계화 추세를 지역의 실정에 맞추어 변형하는 것을 의미하는 세방화 경향을 발견했다는 말은 또 무슨 소리인가.

글로컬리제이션에 관한 로벗슨 교수의 발표는 원론적 비평 수준을 맴돌뿐 세계적 수준에서의 자본의 흐름과 문화의 변동양상이 각 지역에서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되는지를 지적해 주지는 못했다. 그의 논지에는 여전히 문화의 일방적 흐름이 근본에 자리하고 있는 듯 했다. 나아가 그는 발표의 말미에 ‘모든 문화를 다같이 존중할 수는 없다’며 특정 문화들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강하게 드러냈다. 이슬람 및 비서구적 문명에 대한 암시가 다분한 이 발언에 대해 몇몇 학자들이 강하게 반론을 제기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이 회의에 초대되어온 월레 소잉카 교수는 로벗슨 교수의 주장이 서구중심주의적 문화편견이라고 비판했는가하면, 서강대 강정인 교수는 특정 문화에서 행해지는 비인간적 행태가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 문화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따가운 화살을 보냈다.

세계화 개념의 모호성을 둘러싼 학술적 논의의 어려움을 확인하는 자리였지만, 진지한 토론이 격돌하는 가운데 문화 간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서로 애쓰는 모습은 귀중한 것이었다. 21세기의 지각변동, 세계화. 우리의 문화시계는 이 격동을 따라잡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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