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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전공학부 10년 넘어도 ‘지그재그’
자유전공학부 10년 넘어도 ‘지그재그’
  • 허정윤
  • 승인 2020.01.1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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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시대 융합인재, 디딤돌로 작용
일부선 존폐 찾아 '자유폐지'학부 핀잔

10년 전. 자유전공학부는 “‘자유’(自由)를 전공한다고?”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생소한 학과였다. 그렇다면 10년을 넘겨 11년 차에 진입하는 지금의 자유전공학부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자유전공학부는 한동대학교에서 최초로 ‘자율전공학부’ 도입을 시작하면서 알려졌다. 2009년 서울대학교가 ‘급변하는 시대를 이끄는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인재양성을 목표로 한다’는 취지로 자유전공학부를 설립하자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자유전공학부가 도입된 지 11년이 넘은 2020년. 자유전공학부는 국내 40여 개 대학에서 운영되고 있고, 자유전공학부로 시행되는 학교는 12개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명맥은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주요 대학만 약진했을 뿐, 인기학과 쏠림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는 대학이 많다는 게 쇠퇴의 주된 이유로 꼽히고 있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이 전공박람회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 서울대 제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이 전공박람회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 서울대 제공)

- 로스쿨과 의전원을 ‘위한’ 자유전공학부
과거 자유전공학부의 숫자가 늘어난 이유로는 융합교육이나 학생들의 적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유’와 ‘융합’에 방점이 찍혀 있다기보다, 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의 설립과 관련이 깊다.

2008년경 고려대·서울대·연세대를 비롯해 로스쿨 유치에 성공한 대학들은 법학부 폐지와 더불어 이로 인해 부득이 발생한 정원을, 신설된 자유전공학부에 배치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당시에도 ‘프리(pre) 로스쿨·고시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상위 대학의 자유전공제 학부생이 로스쿨을 점령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자유전공학부는 폐지와 설립도 대학의 자율성에 근거해 좌지우지되어 왔다. 교육부는 “정원 범위 내에서 모집 유형을 조정하는 것은 대학의 자율에 맡긴다”는 입장을 유지했고, 시간은 흘렀다. 

한 학기 만에 30여 명이 휴학하는 등 학생들이 대거 이탈한 경우도 있다. 중앙대는 공공인재학부로 전환 전 공청회를 통해 학생들이 직접 진로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도입(2009년) 1년 만에 자유전공학부가 폐과 수순을 밟은 것이다. 연세대와 한국외국어대의 경우에는 2013년도에 학생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폐지와 타과 편입 수순을 밟아 ‘자유폐지학과’라는 비판도 받았다.

- 자유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앞으로의 10년
자유전공학부의 운명 자체는 설립 동기가 ‘정원 유지’와 연동되어 있어 로스쿨과 의전원의 운명에 따라 안정적 운영이 힘들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한편으로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융합인재를 기르기 위한 자유전공학부의 움직임은 현재진행형이다.

서울대자유전공학부는 지난 12월 전국 자유전공학부 교육 관계자들을 초청해 ‘전국 자유전공학부 연합 세미나’를 개최했다. 방청록 교수(한동대), 이진로 교수(영산대), 신철균 교수(강원대), 이용주 교수(광주과학기술원), 이기준 교수(대구경북과학기술원), 이상민 교수(서울대)가 발표자로 나서 각 학교 자유전공학부의 지난 10년의 성과와 앞으로 10년의 계획을 나눴다.

방청록 한동대 창의융합교육원 원장이 첫 발표자로 나서 자유전공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사진=허정윤 기자)
방청록 한동대 창의융합교육원 원장이 첫 발표자로 나서 자유전공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사진=허정윤 기자)

- ‘적성’을 찾고 ‘깊이’를 누리는 시간
한동대는 어느 학교보다 자유학부 체제의 융합교육이 자리 잡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은 많은 학부모가 자유전공이라는 제도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학교에 접근할 때 ‘갖춰진 체계와 진로탐색’에 방점을 찍어 설명한다.

방 원장은 “학생들이 전공에 입학할 때 한동대로 입학하고 1년간 교양교육을 받으면서 자유롭게 전공 탐색의 기회를 가지고, 2학년부터 전공선택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자신의 목표를 뚜렷하게 설정하고 들어온 학생들도 1년간 교육을 통해 방향을 전면 전환하거나, 자신이 가진 계획을 ‘융합’에 맞춰 수정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고 예를 들었다.

한동대를 입학하는 모든 학생은 무(無)전공으로 입학해 2학년이 되면 전공을 선택한다. 전공도 졸업하기 전까지 이수학점과 필요요건을 채우면 무제한으로 바꿀 수 있다.

영사대 이진로 자유전공학부 학부장이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허정윤 기자)
영사대 이진로 자유전공학부 학부장이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허정윤 기자)

영산대 이진로 자유전공학부장은 “‘자유’는 청춘의 특권”이라고 말하며 “인기학과인 경찰행정학과의 편중은 여전하지만, 어떤 과를 선택해도 더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 학생들 사이에 만족도가 높다”고 발표했다.

- 급속한 사회변화도 이겨내는 ‘융합의 힘’
자유전공학부는 학생이나 사회가 바라는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새로운 전공을 신설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이는 전공 수요가 줄어들거나 없어지면 폐지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말과 같다. 새로운 전공·학사 제도를 가장 먼저 시도해 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것과 마찬가지다. 4차산업혁명의 키워드인 ‘융합’도 자유전공학부에서 발현되기에 가장 적합하다.

서울대는 학기 중 전공박람회를 개최해 석박사과정의 학생을 멘토로 참여시켜 1학년 학생이 의문을 가질 때 전공에 대한 가이드를 제시해 준다. 특히 ‘주제탐구세미나’를 통해 다양한 기초학문에 접근하고 관심분야는 심도 있게 탐구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 후 ‘전공설계’ 과정을 통해 연구과제를 설계하고 개별 면담을 통해 계속 피드백을 받는다.

서울대도 초기에는 상경계열로 쏠림 현상이 극심했지만 전임 교수를 확보하고 겸무 교수를 충원해 학생들이 모색하는 다양한 길의 동반자가 되며 이를 점진적으로 해소하고 있다.

서울대는 현재 다양한 전공으로 구성된 교수 8인과 겸무교수 16인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교수의 지도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인권학’, ‘법소통학’, ‘놀이문화학’, ‘공공발전학’, ‘가상현실학’ 등 자신만의 전공을 만들고 성과를 내고 있다.

(사진 =한동대 제공)
(사진 =한동대 제공)

한동대의 경우 실질적으로 조합 가능한 수의 전공은 617개고, 학생들은 2019년 연말 기준으로 보면 332개(단수 전공 제외) 조합으로 전공을 이수하고 있다. 그중 인문과 이공계열을 교차전공하는 비율은 2.07%(2008년)에서 19.18%(2019년)로 늘었다.

한동대 방 원장은 “가령 수학 통계학과가 없어도 데이터 이해역량이 중요해지면서 각 공대에 수학과 관련한 교수를 중심으로 여러 전공의 교수들이 모여 수학통계를 신설하는 식으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학생들 역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고자 하는 학문적 열정과 4차산업혁명 시대의 환경이 반영된 추세가 반영된 결과다.

 

- 신설보다 폐지가 많지만 그럼에도...
하지만 주요 대학을 제외하고는 자유전공학부에 대한 오해는 여전하다. 자유전공학부의 융합적 특징을 살리기보다 ‘1학년 교양 교육 후 2학년 인기 학과 진학’은 그저 학부를 ‘징검다리’로 여기는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인식이 뚜렷하다.

자유전공학부로 입학해 성적이 되지 않은 학생은 다시 한번 좌절을 겪기도 한다. 그저 교양학부로서의 역할만으로는 ‘쏠림 현상’ 해소는 고사하고 ‘정체성 모호’라는 평도 피해기 어렵다.

서울대도 학과 간 균형이 맞춰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경제학(20%)과 경영학(18%) 순으로 전공 선택률이 높았다.  한동대도 인기에 따라 개설되는 전공이 있어 교원수급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다가 또 인기가 없어지면 분리하는데 교무처의 수고가 많다고 언급했다.

교육과정의 정체성이 교양교육에 수준에 머무는 것 아니냐는 지적 또한 피할 수 없는데, 이러한 점은 여전한 숙제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강원대는 2019년 처음으로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해 융합인재 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강원대 발제자로 신철균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수업마다 전문 강사의 특강 및 집중 강의 형태로 구성하고 특화 교양을 개설해 전임교원과 외부 강사 초청으로 수업의 질을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원대는 종합대학의 장점을 살려 ‘자유전공학부’ 및 ‘미래융합가상학과’를 도입해 유연한 학사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이는 총장의 의지와 대학의 지원 정도에 따라서 교육과정의 역량이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총장 교체 시기마다 ‘부’의 명운이 달려있다는 불안감도 지울 수 없다. A대학의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총장이 바뀌면 당장 학과가 존재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곧 총장 선거인데 지금 총장이 연임하지 않거나, 학부 존속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1년 안이라도 학교 자율성에 의거해 폐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각 대학에서 자유전공학부가 유지되는 것은 융합시대를 맞이하는 시대적 변화가 융합인재를 원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양일모 자유전공학부 학부장은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이 그 누구보다 선택하는 즐거움과 책임감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학과의 특성을 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 학부장은 이를 이룩하기 위해서 “자체 교수 확충도 중요하지만, 겸무 교수제도를 확대·안정화하고 모든 학생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게 학생역량에 집중하는 대학역량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자유전공학부를 가진 대학의 교수들과 관계자들도 ‘전국 자유전공학부 운영 대학 연합회’ 결성에 대해 앞으로의 10년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허정윤 기자 verit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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