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19 20:15 (화)
김용준 교수의 내가 본 함석헌 25
김용준 교수의 내가 본 함석헌 25
  • 김용준 교수
  • 승인 2003.09.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형'이란 호칭, 그 속에 담긴 큰 인간의 체취

▲미국방문당시 펜들힐에서의 함석헌 ©

 

 

 

 

 

 

 

 

 

 

이미 소개한 바 있는 1962년 5월 8일자로 안병무 박사에게 보내신 선생님의 편지에는 ‘유럽여행 계획’이 대체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플로리다주로 떠나시기 약 한 달쯤 전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선 독일에 좀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과 더불어 구라파에서 머무는 동안의 생활비 및 교통수단 문제 그리고 미국 국무성에서 준 한국과 미국사이의 왕복 항공권을 세계 일주할 수 있는 비행기표로 바꾸는데 필요한 경비 문제, 구라파 여행 끝낸 다음 인도로 가는 시기 및 경우지 문제, 당신 생각으로는 아프리카 콩고, 슈바이처 있는 곳 그리고 신흥국, 특히 퀘이커가 많이 거주하고 있는 케냐 등을 거쳐 이집트, 그리스 등을 거쳐서 돌아가는 길 등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당신의 이번 방문으로 인해서 안병무 박사의 학위취득이 늦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이 가장 가고 싶어하시던 간디가 살던 인도방문의 시기문제 그리고 다음 편지를 줄 주소로 나의 워싱톤 디씨의 아파트가 적혀 있다.

당시의 함 선생님은 한국에서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한국 옷을 입고 외출하실 때는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쓰시고 다니셨는데 이와 같은 모습을 바라보는 미국사람들은 라바이 즉 성경에 나오는 랍비라고 수근대는 것을 흘려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집에서는 조끼 호주머니에 미화 20불짜리 한 뭉퉁이를 간직하고 계셨다. 국무성의 초빙객으로 3개월간 미국 각지를 여행하고 계실 때 매일 매일 받은 퍼디움(per diem)을 꼬박꼬박 모으신 돈이었다. 그 돈이 당신이 이제부터 세계일주를 하시는데 소요되는 경비의 전부였을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의 편지의 여러 곳에서 경비에 대한 걱정이 나와 있다. 어떻든 이 무렵에 선생님과 나는 머리를 맞대고 세계 일주여행 계획을 짰다. 구라파는 안병무 박사의 안내로 이루어질 것이고 지금 내가 기억하기로는 인도 아프리카 그리고 불교국인 당시의 미얀마를 보신 후에 한국에는 1964년 봄에나 돌아가시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현재 내게 남아있는 선생님의 편지로 텍사스로 내려간 나에게 제일 먼저 온 편지가 7월 21일자로 되어 있다.

<김형께

편지 받은지 여러날 되면서도 회답 못드렸습니다. 안녕하시오? 나는 내일 여기 모임이 끝납니다. 그동안 잘 지냈지요. 조용한 곳이고 모인 사람들이 다 좋아서 맘도 편안히 있었고 말도 좀 연습이 됐지요.

나도 원하거니와 여깃 분들도 원해서 여기 가을 학기 넉 달을 더 있을 교섭을 합니다. 여기서는 스칼라쉽을 주겠다니 문제없고 국무성서만 승낙하면 비자 연기가 될 것입니다. 며칠 있어야 알 것입니다. 23일은 떠나서 Meadiville가서 사흘 있고 여기와서 하룻밤 자고 혹은 비자 여부 알고 뉴욕으로 갈까 합니다. 그러면 유럽行도 연기가 되지요. 글세 本國에서 어쩌는지 궁금도 한데 이렇게 여행만 하기 미안한 생각도 있으나 어떤 의미론 이 기회에 다음 준비나 하고 있은 것이 좋을 듯도 하고.

오늘 저녁은 마지막이라 여흥이 있었는데 참 놀랍습니다. 유쾌한 것도 그렇지만 상식정도가 참 높군요. 작란이지만 하여간 시를 짓고 극을 임시로 꾸며가지고 나와서 하는데 조곰도 난잡한 것 없으면서도 참 즐겁게 노는군요. 그리되려면 많은 세월 두고 된 것이지요. 우리는 언제나 사람답게 살아볼까? 그럼 안녕 하시오.>

9월 22일자 편지는 다음과 같다.

<글월 받았고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참 놀랍군요. 그런 일이 있은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지오. 그러나 좌우간 지나갔고 서로 이 얘기를 할 수 있게 됐으니 참 감사할 일이지. 그러기에 날마다 마지막 날의 심정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이것이 마지막 유언이될지 누가 알아요?

마틴 부버는 哲學者 神學者 오스트리아 出生 유대人입니다.  지금도 八十五․六歲 됐을 것입니다. 예루살램 大學에 아마 있다는가 봅니다. 그의 ‘I and Thou’란 책이 有名하고 그外에도 著이 많습니다. 나는 지금 그의 것만 날마다 읽고 있는데 어쩌면 그렇게도 平時에 생각했던 것과 같은 것을 發見할까 하고 놀랍니다. 勿論 같다면 건방진 말이 되지요. 그는 더 豊富하게 말하고 또 實生活을 그렇게 하는가 봅니다. 그러니 그 根本되는 思想의 줄거리를 말하면 내가 생각하던 것도 결국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고 그러기 때문에 아주 재미있게 읽고 가르침을 얻은 바가 많습니다.

책들은 Paperback으로 나온 것들이 있으니 一弗二三十錢 정도로 삽니다. 어디서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 웬만한 사람은 ‘I and Thou’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해 전에 金天培氏가 번역하여 냈답니다.

나는 오늘이야 비자연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시오 學期 十二月 十五日까지인데 거기 參與하기 爲한 것이라 했고 연기신청을 明年 一月末까지를 했더니 연기는 十二月 十五日까지로만 꼭 해보내주지 않었어요? 있다가 또다시 연장해야 겠지요. 年末은 아무래도 여기서 지나야 할 것이니.

그럼 조심하시고 工夫 열심히 하시오. 九月 二十二日 함석헌>

지금 내가 간직하고 있는 선생님의 편지를 모조리 이렇게 공개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위의 두 편지는 그대로 공개하는 것은 우선 독자들에게 선생님의 선생님됨의 편모가 전달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선생님의 글을 그대로 옮겨 보았다. 이제 이 글 시작할 앞부분에서 이미 나의 생각을 말했던 것 같지만 어떻게 27년이나 아래인 나에게 ‘김형’이라는 호칭이 나올가? 선생님의 체취가 이 한 마디에서도 물씬 풍긴다. 그리고 두 번째의 편지의 첫머리의 사건을 내가 텍사스의 대학으로 내려가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서 일어났던 교통사고에 관한 말씀이다. 교통사고란 모두가 그렇지만 하마터면 죽었을지도 모를 뻔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큰 교통사고로 상당히 괴로움을 당한 일이 있는데 아마도 내가 이 사실을 편지로 말씀드렸던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의 나의 삶이 나의 마지막의 순간인줄 누가 아느냐? 이 편지가 나의 유언장이 될지 누가 아느냐? 라는 말씀 항상 간직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마틴 부버의 철학 및 종교를 새삼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 내가 간직하고 있는 책중에 마틴 부버의 ‘Pointing the Way’라는 책의 Paperback이 한 권 있다. 1964년 3월 18일에 내가 다니던 대학의 구내서점에서 구입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선생님의 편지를 받을 당시는 나는 미국 대학의 교육방식에 적응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때였다. 64년 3월이라는 구입일자를 보면 아마도 소위 박사논문 제출 자격 시험에 합격한 직후쯤으로 생각된다. 이 책은 마틴 부버의 많은 글 중에서 선택하여 30편의 글을 모아 놓은 앤솔로지이다.

나의 머리 속에 깊이 남아 있는 부버의 글은 어디서 읽었는지 그 출처가 확실치 않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다.

지금 내가 마치 로빈슨 크루소같이 어느 고도에 혼자서 살고 있다고 할 때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힘은 끝없이 펼쳐진 저 바다의 까마득한 수평선 저 너머에 그 어딘가에 나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어서 언젠가는 내가 그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희망이라는 뜻이 담긴 글이다. 내가 함 선생님과 만나서 지금도 이렇게 이미 이 세상을 떠나신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한번 나를 뒤돌아 볼 수 있는 이 기적이 없다면 아마도 이 세상은 로빈슨 크루소가 살던 그 절해의 고도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선생님은 1963년 1월초에 영국으로 건너가셨고 영국 버밍험에 있는 Woodkrook College라는 퀘이커 대학에서 3월말까지 한 학기를 보내신 다음 영국 여기저기를 돌아 보셨다. 1963년 4월 23일자 선생님 편지에 따르면 <영국 서부로해서 스콧트랜드를 돌았지요. 글라스코, 에딘바라 돌보았습니다. 농촌 구경하느라고. 그리고 소득이 있지요.… 독일에 28일 가서 安선생 만나서 5月 8日 정말 15일 서전 22일 핀랜드 30일 놀웨이 6월 11일 다시 독일의 예정으로 떠나게 될 것입니다.>라고 적혀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