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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일상적인 거짓’ 풍자…강력한 메시지 아쉬워
미술비평: ‘일상적인 거짓’ 풍자…강력한 메시지 아쉬워
  • 김종근 홍익대
  • 승인 2003.08.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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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在日화가 곽덕준 展

홍익대 미술평론가

해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학예사들이 그들의 시각으로 본 작가들을 선정한다. ‘올해의 작가전’이 그것이다. 이번에는 한묵과 곽덕준이다. 한묵은 프랑스에서 또한 곽덕준은 일본에서 각각 재외 한국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무엇보다 곽덕준은 외국에서 살아본 사람만이 갖는 이방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 문제를 치열하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그는 이번 개인전에서 회화, 사진, 오브제,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90여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무엇보다 그는 일본사회에서 ‘에뜨랑제(이방인)’로 살아가는 자신은 누구인가라는 ‘존재의 물음’에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그 화두는 곧잘 그가 사용하는 해학과 풍자, 유머와 위트, 그리고 탁월한 상상력에 의해 연출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 쓸쓸함을 치열한 예술언佇?치환시키는 파라독스적인 기법과 역설적인 수사학으로 ‘세상의 존재에 대한 무가치 혹은 무의미와 헛됨’이 펼쳐진다. 

영원한 이방인의 치열한 존재언어

그의 작품은 추상화 시리즈다. 1960년대 초기 작품인 ‘위선자 시리즈’에서는 유화의 독특한 질감들이 보여진다. 그러나 1969년부터 그는 전통적인 평면을 버리고 이벤트, 비디오, 사진 작업 등 전방위적인 작품으로 시각을 전환시킨다. 그동안 견지해왔던 평면작업을 떠나 지도나 줄자, 계량기 등을 이용한 오브제 설치작업 등으로 이동한 것이다.

특히 계량기와 같은 객관적 측정의 상징인 오브제를 통해 무비판적으로 신뢰하는 인간 시각의 허구성에 주목한다. 즉 인간의 시각과 의식의 지평에 있어 실재가 뒤집어졌을 때 나타나는 허상을 통해?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캐묻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실체적 진실에 관한 물음이 바로 주목할만한 70년대의 ‘계량기’ 시리즈다. ‘10개의 계량기’는 10개의 저울을 쌓아 올린 것인데, ‘계량하는 것이 계량된다’는 역설적인 답변과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이런 류의 측정이 거짓 정보라는 실상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실측 가능한 존재의 이러한 비판적 행위는 1974년부터 꾸준히 발표해온 `곽덕준과 대통령'에서 그 비판의식이 명쾌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들 작품은 케네디, 부시, 클린턴 등 ‘타임’지에 실린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거울로 반쯤 가리고 아래쪽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 찍은 연작 합성사진이다.

이외에도 만화 형식을 빌린 ‘무의미’ 시리즈에서는 수십 개의 분할공간 속에 코트깃을 세우고 가는 왜소한 남자를 표현했는데, 그 남자는 세상과 모든 것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일관한다. 이렇게 그의 작품 하나하나에는 인간과 인간, 개인과 사회에서 빚어지는 한 외국인의 숙명적인 모습이 때로는 역설적으로 때로는 시니컬한 어법으로 결집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정치와 역사를 통해 보여지는 인간의 ‘일상적인 거짓’을 풍자하는 작업들에 집중한다. 근작인 ‘풍화?시리즈에서 월남전, 9?11테러 등 매우 민감한 소재들이 다뤄진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숙명적 갈등, 그러나 치밀하지 못한 치열성

그는 일상의 진실을 일관되게 캐물으며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그런 면에서 다테하타 아키라 교수가 "곽덕준은 위대한 타자다. 그의 분신인 주인공은 여러 광경 속에서 여행하며, 무의미를 계속 외치며, 상황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타자의 태도를 유지한다"고 말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

그는 일본과 한국이라는 서로 다른 꿈속에서 스스로의 존재와 정체성을 끊임없이 증명해야하는 예술가로서의 숙명적 갈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치열함은 너무 다양한 언어의 발언으로 폭발적이거나 뜨거운 언어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은 그의 집요함과 치밀함이 그다지 투철하지 못해 더욱 분명한 메시지를 뱉어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는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국인의 설움을 좀더 가슴 아프게, 통렬하게 우리들 가슴을 치며 정녕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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