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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 - 연세대 자립형 모델
대학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 - 연세대 자립형 모델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3.07.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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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이사회의 균형을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손
법인, 총장임면과 감사권만 행사 … 대학운영은 총장에게

대학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임 6번째는 연세대다. 연세대의 운영구조 그 자체는 새로운 것이 없다. 그럼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의 하나로 설정한 것은 기존 사학법인의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하나의 계몽적 사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연세대의 법인이름은 '학교법인 연세대학교'다. 다른 사립대학들의 법인이 '△△학원', '○○학원'인 것과는 다르다. 연세대학교만을 운영하겠다는 뜻인 동시에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법인격이 아니라 '학교'그 자체라는 것이다.

연세대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법인운영방식이다. 어느 한명, 어느 기관이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균형을 맞추고 있으며, 대학운영에 대한 부분은 철저하게 총장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있다.

'학교법인 연세대학교'(이하 법인) 이사회는 모두 11명으로 구성된다. 6명은 기관의 대표, 4명은 사회유지, 여기에 총장이 예겸이사(당연직 이사)로 참가한다.

우선 기관 몫. 이사 가운데 4명은 연세대 설립에 참여했던 대한예수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성공회 등 관련기관에서 각각 1명씩 추천한다. 여기에 동문회에서 추천한 2명의 이사가 추가된다. 사회유지 이사 4명은 연세대 출신 가운데 2명, 협력교단의 교계인사 가운데 2명을 이사회가 선임하는 방식이다. 결국 이사회 11명 가운데 추천직이 6명인 동시에 교계인사도 6명이 되는 셈이다.

한편, 현재 연세대 이사회에는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의 초대교장이었던 언더우드의 손자인 원일한씨가 사회유지로 참가하고 있다. 그러나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설립자의 직계자손이라고 해서 대학의 '주인'은 결코 아니다.

"대학의 운영의 대학의 몫"

이사회의 의사결정 방식은 대부분 합의제다. 구조적으로 누구 한명이 의사결정과정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것이다. 특정사안에 대해 이사회에서 의견이 엇갈리면 대부분 유보하는 것을 관행으로 삼고 있다. 투표는 총장임명동의 등에 예외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연세대에서 대학과 병원의 운영은 총장의 권한이다. 형식적으로 이사회의 동의절차를 밟기는 하지만 인사권과 대학재정 등 대학운영에 대한 부분은 전적으로 총장의 몫이다. 학내사안이 시끄러워져도 이사회는 총장이 이사회에 안건을 발의할 때까지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올해 학내구성원간의 갈등이 첨예했던 연합신학대학원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1964년에 만들어진 현재의 연합신학대학원건물을 허물고 증축하는 과정에서 문과대 교수들은 이를 반대하며 농성을 벌이고, 신과대학 소속 교수들은 조속한 공사진행을 촉구했다. 일간지에 보도될 정도로 논란이 치열했지만 이사회는 구성원들이 합의하고 결론을 찾아갈 때까지 지켜볼 뿐이었다. 갈등의 골이 깊어 갈 때 간섭해서 문제를 키우는 것보다 기다리는 것이 합리적인 처사였다고도 볼 수 있지만, 법인관계자는 "연신원 문제뿐만 아니라 '대학의 운영은 대학의 몫이다'라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대학운영은 대학의 몫"

반면 법인은 총장인사권과 감사권으로 대학을 견제하고 있다. 특히 총장직선제에 대해서는 교수들의 입장과 다르다. 80년대 후반 사회민주화 이후 연세대에서는 교수들이 총장직선제를 실시했고, 여기에서 당선된 이가 총장으로 임명됐다. 그러나 이사회는 법적으로 확보돼 있는 총장 임면권을 행사한 것이며, 사회적으로 '민주화'가 커다란 흐름이었기 때문에 이를 높게 평가해서 교수들의 선거에 의해 뽑힌 인물을 총장으로 선임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교수들의 선거는 고려의 대상이지 결정사항은 아니라는 견해다.

일단 총장이 선임되면 이사회는 학사행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 대신 감사를 통해 균형을 유지한다. 이사회에 참여하는 2명의 감사가 6개월에 한번씩 공인회계사 15명을 확보해서 1달 동안 감사를 실시한다. 감사에서 지적된 내용들은 총장, 처·실장, 행정과장들을 대상으로 감사강평을 하면서 시정하도록 하고, 이를 이사회에 보고해서 사안에 따라 처리한다.

운영은 대학에 맡기지만 4년에 한번씩 운영의 책임자인 총장을 선임하고, 6개월마다 학사운영의 대하여 시스템적 감사접근 방법으로 운영을 점검하는 것이다. 법인측은 보이지 않는 손과 힘이 대학운영과 이사회의 균형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연세대가 다른 사립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공성이 높은 것은 대학설립에 참여했던 선교사들의 교육관과 문화가 기여한 바가 큰 것으로 보인다. 대학과 병원은 개인이 설립했더라도 사유물이 아니라 '공공기관'이라는 인식이다. 연희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에 참여했던 언더우드(H. G. Underwood)나 세브란스 병원을 신축하도록 거액의 기금을 출연한  세브란스(L. H. Severance)도 한번도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서는 이후 대학운영에 참여하는 이들에게도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학의 재산형성과정도 공공성 확보와 관련해서 눈여겨볼 부분이다. 연세대가 성장한 배경에는 재정적으로 외국의 원조 그 중에서도 미국 선교회의 지원이 컸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뤄져, 1964년부터 1974년까지 10년 동안 국제협력기관(재미연합재단, 미국 장로교·감리교 선교회 등)에서 원조된 보조금이 당시금액으로 1천만 달러였다. 연세대는 이처럼 막대한 원조가 이뤄질 수 있었던 이유로 이사회가 국제적으로 신뢰를 얻고 있었고, 당시 한국의 대학가운데 국제적 성격을 가장 많이 띠고 있었으며, 대학의 사회적인 봉사활동이 활발했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내부의견 수렴절차 미흡"

다른 대학에 비해 이사회가 절차상의 공공성, 대학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연세대도 대학운영과정에 내부적인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연세대 교수협의회는 이러한 문제를 주제로 내부 토론회를 가졌다. 

여기서 지적된 것은 우선 이사회에 총장을 제외하고 학내구성원을 대표할 수 있는 이들이 참여하지 않아, 교육의 목적보다는 사회적 평판, 비교를 중시하게 되고, '경쟁'과 '효율성'만을 강조한 '비젼'들이 불쑥불쑥 나오면서 갈등을 키워간다는 지적이었다. 이는  '문·사·철'보다 의학, 공학, 경영학 같은 실용학문분야의 비중이 대학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문제다. 

또 교수직선을 통한 총장선출이 총장추천위원회를 통한 이사회의 임명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교수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는 결국 총장의 권위나 결집력을 저해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학장도 선출제에서 임명방식으로 바뀌었다. 교수들은 농성까지 벌인 연합신학대학원 건립문제가 문제가 길어진 것도 이러한 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들 교수들은 '敎道理器'를 주장했다. 이사회가 그릇이라면 본질과 기본은 교수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사회를 개선하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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