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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을 마치며
기획을 마치며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3.07.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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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의 족벌운영이 문제

공공성 강화가 관건

 

글실은 순서

상지대 시민대학 모델
인천대 시립화 모델
녹색대학 대안대학 모델
KAIST·한예종 정부지원 자율모델
연세대 자립형 모델

2002년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한국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02년 8월 현재 전국의 사립대학 가운데 73개교에서는 설립자의 친인척이 이사회나 대학에 관여하고 있다. 물론 이들 대학 모두를 '족벌사학'으로 볼 것은 아니다. 이 가운데는 사회발전을 위해, 육영의지를 가지고 대학을 건립한 이들도 있으며, 자손들이 원하지 않지만 대학 구성원들이 초청해서 자리를 맡긴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는 분명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이들 대학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공공기관으로서의 대학이라기 보다는 '가족'들이 대학과 이사회의 곳곳을 차지하고 대학을 좌지우지하는 '그들의 기업'이다. A 대는 설립자의 아들이 이사장, 형이 상임이사, 사돈도 이사, 딸과 사위가 교수, 조카가 교수와 직원이다. B 대학은 부인이 이사이며, 아들 셋은 교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처조카, 외조카는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해서일까. 혈연관계는 끝이 없다. 대를 물리는 것은 손자, 손녀로 이어지고, 기왕이면 친척이 좋은지 며느리, 사위부터 장인, 사돈, 동서에 외사촌, 이종조카에 이르기까지 끝이 없다. 대학에서 언제라도 가족회의를 열 수 있을 정도다. 이렇게 설립자와 친인척 관계에 있는 이들이 2명 이상인 대학도 50곳이 넘는다.

일부 부유층 자제들이 성년이 되기도 전에 수십억, 수백억원의 재산을 넘겨줘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대학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채 서른도 안된 설립자의 아들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 대학에는 아들이사보다 나이 많은 학생도 적지 않고, 교수 가운데 아들이사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은 한명도 없다. 물론 나이가 사회서열관계를 나타내지는 않지만.

대학은 분명 교육이라는 공공성 강한 사회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공공기관인 지방대학이 요즘 어렵다. 서울의 유수한 대학들도 교육시장이 개방되면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스스로 공공성을 외면한 대학들은 밖의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사회를 통해 대학의 운영을 통제한다. 현재 사립학교법에서 대학 공공성의 핵심은 이사회에 있다. 사립대학에서 이사회가 가진 권한은 △학교법인의 예산·결산·차입금 및 재산의 취득 처분과 관리에 관한 사항 △정관의 변경 △임원의 임면 △사립학교의 장 및 교원의 임면 △경영에 관한 중요사항 등 재정, 인사, 규칙 제정권 모두를 가지고 있다.

대학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은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대학운영의 구조, 특히 이사회의 운영구조, 이사회와 대학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점검하는 기획이었다. 대상인 대학들은 공통적으로 공공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대학다운 대학을 운영하려고 노력하는, 기존의 대학과는 다른 시도로 만들어진 대학이었다.

취재과정에서 확인된 사실은 대학의 공공성은 대학의 대외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이사회의 개방을 통해서도 이뤄진다는 사실이었다. 소유하지 않고, 대학운영에 뜻을 함께 하는 이들과 책임과 권한을 나눈다면 지금 사학들이 겪는 어려움을 타개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상지대와 녹색대학이 이사회를 시민사회에 열고 그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으며, 연세대는 설립초기에 기부자들에게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하나는 이사들의 사회적인 수준이었다. 대학을 대상으로 사욕을 채우려 하지 않을 만큼 지도층 인사들이 참여해야 대학이 대학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인천대의 경우 예외적으로 이사회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대학의 이사들은 사회적 지위를 볼 때 적어도 대학에 기대려는 인사들은 아니었다. 존경받는 인물들이 사리 사욕 없는 판단을 함으로써 이사회의 권위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교육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많은 대학들이 거듭나는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가족기업으로 치열한 경쟁을 이겨나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 기업, 지역사회 모두가 함께 나서서 대안을 찾아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사학 법인이 진정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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