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22:55 (일)
생각하는 이야기 : 내가 납골당에 반대하는 이유
생각하는 이야기 : 내가 납골당에 반대하는 이유
  • 김열규 / 계명대
  • 승인 2003.06.12 00: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덤마저 '개혁'하는 우리의 새것 콤플렉스

김열규 / 계명대 석좌교수, 국문학

비교적 외딴 산기슭을 가노라면 매우 낯선 구조물을 보게 된다. '저게 뭐야? 별 게 다 새로 생겼네!' 자신도 모르게 중얼댄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니면 길게 잡아서 재작년쯤까지만 해도 전혀  못 보던 새로운 저 구조물은 도대체 뭐지.


높이는 사람 키 정도다. 머리 부분(아니면 지붕 부분)은 제법 그럴듯한 아치 모양, 곧 穹  형이다. 넓이라야 어른 하나가 두 다리를 한껏 벌린 정도일까. 슬쩍 보면, 무슨 작은 규모의 문 같다. 하지만 그 뒤로는 아무 것도 안 보인다. 게다가 이적 드문 산이다. 집이 없는데 무슨 문일 턱이 없다. 그럼 도대체 뭘까.

저 낯설고 서툰 모양의 구조물


이렇게 낯설고 우리들에게서 동떨어져 보이는 이 서툰 모양의 구조물, 그것이 이른바 '납골당'이라는 것은 한참 뒤에야 간신히 알게 되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아무래도 엉뚱해 보이고 당돌하게 느껴진다. 저럴 수는 없다. 적어도 한국인의 墓所가 , 적어도 우리들의 산소 山所가 저럴 수는 없다.


그 둥그스레한 정다웠던 封墳은 간 데 온 데가 없다. 누군가가 누워도 아주 편하게 길게 누운 듯 보이는 그 봉분은 이제 더는 못 본단 말인가.

그 붕긋한 타원형의 봉분을 감싸 안듯이 둘러 처진 垣墻까지 합쳐서 우리의 묘소는 큰 꽃봉오리 같아 보인다. 봉분이라는 꽃망울을 꽃받침이 바치고 있는 아름다운 모양새를 우리들의 산소는 갖추고 있다. 모르긴 해도 온 세계에서 적어도 모양새로는 가장 아름다운 무덤일 것이다.


그 기막힌 '꽃 무덤'을 밀어내고 이제 유래도 근원도 알 수 없는 '납골당'이 들어 서 있다. 떠돌아 들어온 나그네가 어느 날 문득 안방을 차지한 것이나 별로 다를 것 없다. 한데도 집주인이 별로 말이 없다면 그는 관대한 걸까. 아니면 무심한 걸까.


통과의레, 예컨대 혼례와 장례 등의 통과의례는 가장 끈질기게 전통을 지켜낸다. 그것은 한 민족 문화, 한 공동체 문화의 전통을 지켜내는 마지막 보루다. 그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직 하나의 예외인 나라 그게 한국일 것 같다.


한국인의 '새 것 콤플렉스'는 정말 별나다. '새 나라', '새 마을', '새 살림' 등등의 새것 노름에다가 그 무슨 놈의 '개혁' 노름까지, 역대로 정권이며 정부가 앞서가면서 '새것에 엎어지기' 운동이 狂氣를 부려댔다. 改革인지 '개가죽'인지 모를 일이 벌어졌다.


그 여세로 전통은 소위 '개혁'의 대상이 되어 갔다. 우리들의 마을에서 서낭나무가 베어지고 서낭당이 뜯겨 나갔지만 이웃 일본에서는 대 도시 거리 곳곳에 아직도 저들의 서낭당 격인 작은 神堂을 보게 된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에게 우리의 것이라고 할만한 혼례는 없다. 정체 불명의 혼례가 예식장에서 치러지고 있다. 그렇듯이 장례에도 더는 전통이 없다. 내력이 없고 역사가 없다. 어느 날 홀연히 솟아난 낯선 것이 지금의 혼례고 또 장례다.


그러더니 무덤도 드디어 '개혁'되고 '새무덤' '새 죽음'이 나부댈 모양이다. 묘지가 국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 큰 것도 안다. 또 일부 묘소가 지나치게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도 모른 척 할 수 없다. 무엇인가 조금은 손 댈 필요가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부모님 뼈가 무슨 물건이던가


하지만 그럴수록 신중해야 한다.  범 국민적인 합의도 이끌어 내어야 한다. 전통과의 절충도 시도되어야 한다. 한데도 오늘의 '납골당'은 '문득'이고 '홀연'이고 또 '제 멋대로'다. 또 뜻밖이다. 난데없는 게 나타난 것이다.


거기다 죽음을 홀대한 혐의도 매우 짙다. 이름부터 그렇다. '납골'이라니. 조상의 뼈를 수납하다니. 아버지, 어머니의 뼈가 무슨 물건이던가. 조상의 유골이 어디 납품의 대이란 말인가. 남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면 산 사람 인생도 가볍게 되고 만다.


우리 문화의 正統性을 위해서, 우리가 어디서 온 누구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또한 우리들 산 사람의 목숨의 소중함을 위해서라도 이제부터라도 무엇인가 합의를 보아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후,,,, 2003-06-29 23:58:09
저도 납골당이란 걸 볼때마다 비감한 느낌이 들고는 합니다.
망자가 저렇게 깨끗한 건물에 누워있으면 저승에서 더 행복하다고 그러나?. 아님, 묘소를 찾아 깊은 산속으로서 들어가는 불편함을 없애주니까 아주 편리하다고 좋아해야 하나?.아니면 무덤으로 국토가 덮이지 않을 테니까 기뻐해야 하나?.
영혼에게마저도 실용성을 부여해야 하는 시대 자체가 저에게 비감함을 주는 걸까요?.

구조물 2003-06-14 09:18:22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산등마다 여기저기 흉물스럽게 자리잡고 자연경관을 해치고 있는 산소들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요? 좁은 국토와 국민의 대다수가 화장을 선호하는 의식의 변화를 애써 외면하면서 납골당을 '구조물'로 비하하는 교수님의 시대감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