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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전래식 회화 표면의 생명력
<미술비평>전래식 회화 표면의 생명력
  • 이희영 미술평론가
  • 승인 2003.06.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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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7일부터 이 달 10일까지 청작화랑에서 전래식의 14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이 번에 걸리는 전래식의 회화들은 미술가가 일관되게 관심 가져 온 '조형산수'연작 중 최근의 버전들이다. '조형산수'는 전통적 소재인 산수를 현대적 의미로 새롭게 변형시킨 개념으로서 시대정신과 자연의 본성 그리고 삶의 진실을 회화로 종합하는 시도의 소산이라고 한다. 이 전시회는 전래식의 세대가 처했던 추상과 구상의 선택국면을 전래식이 '조형산수'라는 독자적인 어휘로 종합했던 1980년대 말을 회고한 1992년의 개인전 이후 거의 10년 만에 같은 화랑의 초대로 이뤄졌다.

4대가 혹은 6대가로 불리던 1세대의 근대산수화가들이 자신들의 업적을 반복할 즘 전문미술가로서의 훈련을 받거나 본격적으로 등단했던 세대에 전래식은 포함된다. 전래식은 전통산수화를 극복하기 위해 전통산수화의 붓질을 부단히 연마했고 그 속에서 자신이 속한 시대의 새로운 어법을 모색했다. 그 결과 1982년 제 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추상에 경도된 '餘情'으로 대상을 수상하게 됐다. 과거를 능가하기 위해 과거를 탐구한 결과였다. 미술가에 의하면 추상과 구상, 이들 양쪽을 하나로 묶는 종합은 1988년에 도달하게 됐다고 한다. 이 번 개인전은 '조형산수'의 지난 10년간의 변화를 돌아보는 것과 함께, 다양하고 새로운 최근의 매체들 앞에 회화의 가능성을 엿볼 기회가 될 것이다.

전래식의 화면에서 불규칙적인 삼각형 형태의 중첩은 일견 산이라는 현실의 구체적 대상을 연상시키는 한편, 산이라는 현실의 재현물이 시각적으로 견고한 형태로 축약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상반된 판독이 공존하는 표면은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었던 미술가의 추구 과정들이 한꺼번에 요약된 때문일 것이다. 미술가에 의하면 현실에 실재하는 산의 풍경으로부터 제작의 동기가 유래되고 삼각형의 비정형적 형태는 관찰된 산의 모양을 면으로 해석한 회화적 시도라고 한다. 여기서 관찰된 현실이 예술적 변용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 과정은 미술가의 삶 자체를 하나의 매체로 다루는 방식이다. 이 지점에서 전래식은 자신이 속한 시대를 과거에 대한 지속적 탐구의 연속선상에 올릴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전래식의 평면에는 종이 혹은 천의 바탕을 고스란히 남긴 채 배경이 아닌 오히려 형상으로 부각되는 부분이 간간이 있다. 바탕이 지닌 물질적 속성이 어느 듯 관람자가 연상하는 대상으로 읽혀진다. 미술가의 손이 미치지 않는 여백이 형상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이는 곧 물질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지점이다. 이 표면은 상반된 성격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방식은 전래식의 연작 속을 면면히 흐르는 일관성으로 보이고 이처럼 작위적이지 않은 우연성을 통해 미술가는 수묵화의 전통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논증하는 듯 하다.

산의 대부분 형태는 여백이나 발묵과 같은 안료의 전통적 고착방식에 의존하지만 때때로 바탕에 스며들 징조가 전혀 없는 아크릴릭이 적용된다. 전래식의 아크릴릭은 전통적 채색화에서 목격되는 불투과성 안료의 고착과는 사뭇 다르고 발묵이 수행하는 것과 동일한 미술가의 그침 없는 몸짓을 그대로 기록을 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우연성을 거스르기라도 하 듯 활기찬 붓질로 중첩되고 분할된 면의 표면을 휘 젖고 있다. 여백의 자연스러움과 표현적 몸짓의 의지가 충돌하는 전래식 회화의 표면은 엔트로피에 역행하는 생명의 원리를 웅변하는 듯이 보인다.

이번에 걸리는 연작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목격된 파격적인 원근법은 안정돼 보이고 따라서 화면 전체가 정묘한 상징으로 다가 온다. 하늘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조건의 원근법이 최근의 연작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는 대지를 디디고 선 인간의 체적에 풍경을 담음으로써 함축된 형태들이 지닌 상징성을 실재하는 삶의 조건에 가까이 옮겨 놓는 시도로 감지된다. 최근의 버전들은 회화가 결국 삶의 진실을 대리하는 매체임을 확인시키고 전래식이 그동안 '조형산수'를 통해 추구해 온 시대정신과 자연의 본성을 보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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