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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인종·민족·문화로 인한 갈등 해결할 이념과 체제는?
문명·인종·민족·문화로 인한 갈등 해결할 이념과 체제는?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4.30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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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동서 문명과 근대’_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문명 충돌과 다문화」

오늘날 미국은 인종차별을 용인하지 않는다. 미국은 인종차별주의를 극복하기 위하여 다문화주의를 주창하고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다문화주의와 인종차별주의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인종차별주의가 다른 인종들끼리는 같이 살 수 없으며 살아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면 다문화주의는 다른 인종들끼리 같이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다문화주의가 인종차별주의와 마찬가지로 ‘인종’과 그 인종의 ‘문화’가 본질적인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종 간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기에 극복될 수는 없지만 그렇기에 서로 다른 ‘인종’과 ‘문화’를 배우고 익히면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공존하자는 것이 다문화주의다.

인종차별주의로 전락하는 다문화주의 

유럽의 다문화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독일은 터키계 이민들에 대하여, 프랑스는 알제리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이민자들에 대하여, 스웨덴은 이란 등의 이민자들에 대하여 다문화주의 정책을 펴왔다. 이민자들의 종교와 언어, 문화를 존중하고 보존하도록 도우면서 주류 문화와 ‘공존’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유럽의 다문화주의 정책은 모두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그 이유는 ‘문화’를 본질적으로 보고 무조건 서로 다르며, 따라서 무조건 존중하고 보존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차이는 결코 극복될 수 없는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 다문화주의다. 정치, 사회 통합이 일어나지 않는, 일어날 수 없는 이유다.

그나마 경제 사정이 좋을 때에는 다문화주의가 어느 정도 작동할 수 있다. 서로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이 보장된다면 다른 인종과 문화를 존중하고 함께 공존하고자 하는 ‘여유’가 있다. 그러나 경제가 어려워지면 다문화주의는 곧 그 한계를 드러낸다. 경제적인 박탈이 다른 인종이 나의 직업을 빼앗아갔기 때문이고, 소수민족에게 복지 혜택을 주기 위해 나에게로부터 세금을 많이 걷는 대신 혜택은 적게 주는 역차별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다문화주의는 곧바로 인종차별주의를 초래한다. 인종과 문화에 대한 같은 이론과 인식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다문화주의가 인종차별주의로 전락하는 것은 쉽다.

미국에서 경제적 박탈감을 느끼는 계층이 늘면서 트럼프와 같은 인종차별주의자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EU에서 탈퇴할 것을 결정하고 유색인종과 소수민족에 대한 폭력이 급증하며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에서 백인우월주의 정당이 득세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일찍이 다문화주의를 채택하였던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최근 들어 다문화 정책이 실패하였음을 토로하고 있다. 예견된 실패였다

한국의 민족사관과 다문화주의

많은 한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한 핏줄을 나눈 ‘한민족’, ‘한겨레’, ‘단일민족’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민족주의 이념은 단재 신채호(1880~1936)가 그 이론적 기초를 닦았다.

신채호는 1908년 발표한 『독사신론』에서 ‘민족사관’을 주창했다. 신채호는 동북아시아의 민족(동국민족)을 선비족, 부여족, 지나족, 말갈족, 여진족, 토족 등 6개로 나누고 그중 부여족을 한민족의 원조로 삼는다. 그리고 4천년에 걸친 조선 민족사를 부여족의 성장, 성쇠의 역사로 본다. 

이로부터 한민족의 ‘민족사’ 서술이 시작된다. 1931년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된 「조선상고사」에서 ‘대단군 신설’을 소개함으로써 조선민족이 ‘단군’이라는 시조로부터 비롯됐음을 주장한다. 신채호의 민족주의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로 3·1운동이 일어나고 상해임시정부가 결성되고 민족해방의 기치가 본격적으로 올라가면서 깊이 뿌리내린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은 신채호의 민족사관이 주장하듯이 과연 ‘단일민족’인가? 세종대까지만 하더라도 조선의 고유 풍습은 오늘의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판이하게 달랐다. 그렇다면 한국 문화의 ‘본질’, ‘정수’는 무엇인가? 그런 것은 과연 있는가?
다문화주의는 민족적, 인종적, 문화적 본질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전제로 하는 이론이다. 만일 변치 않는 민족적, 인종적, 문화적 본질과 정체성이 없다면 이를 전제로 하는 다문화주의 역시 설 땅이 없어진다. 물론 다양한 풍습과 언어, 종교의 차이를 모두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다르다고 특이하다고 보전할 수는 없다. 다문화주의는 재고돼야 한다.

역사의 종말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론’에 대한 반동이었다. 1989년 여름에 발표된 『역사의 종언』이란 글에서 후쿠야마는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냉전의 종식만도 아닌, 또는 냉전 후의 특정한 시대에 진입한 것도 아닌 역사의 종말 그 자체 다: 다시 말해서, 인류의 이념적 진화의 종착역, 그리고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인간의 정부 형태의 최종적인 형태로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물론 국제 정치가 여전히 복잡하고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날 것을 인정한다. 자유주의의 승리는 아직도 일차적으로는 이념과 의식의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나마도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쿠야마는 자유주의가 “장기적으로 우리의 물질세계마저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강력한 증거는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자유주의란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인 자유를 법 체제를 통해 인정하고 보호하는 제도’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란 ‘통치 받는 사람들의 동의하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체제를 일컫는다. 물론 이 두 이상은 아직도 그 어느 곳에서도 완벽하게 실현되지 않고 있다. 세칭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조차도 아직도 인종차별이 일어나고 노동자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가 자행되고 여성과 소수인종들에 대한 차별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의 이상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은 아무도 그보다 더 좋은 것을 생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완벽하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안티테제는 없다. 역사가 끝난 이유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뒷받침하는 소비문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뒷받침하는 것은 소비문화를 조장하는 자유시장경제 체제다. “비만에 시달리고, 풍요로우며, 자만감에 빠져 있고, 자기중심적이며, 의지 박약하여 기껏 추구한다는 것이 ‘공동시장’인 국가들의 연합체”, 즉 전후 서유럽의 EU가 바로 자유주의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사회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인류 사회가 안고 있던 모순들이 해결되고 인간의 욕구는 만족된다. 따라서 거창한 이념이나 거대 담론은 필요 없게 된다. 위대한 지도자나 뛰어난 군인도 필요 없게 된다.

영웅과 사상가들이 필요 없는 소비자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프티부르조아의 ‘프티’한 자본주의 사회, 개인의 이익만 챙기는 개인주의 사회, 모든 인간관계를 ‘계약’으로 치환시키는 그런 계산적인 사회, 남는 것은 일상적인 경제활동뿐인 무미건조한 사회가 바로 자유민주주의-자유 시장경제 이념이 그리는 이상향이고 역사가 끝난 다음에 나타나게 될 보편적인 국가의 형태
다. 물론 이슬람 근본주의나 기독교 근본주의가 자유주의 사상과 체제에 도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자유주의의 이념이 이념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공허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양한 종교 간 갈등이 자유민주주의의 정치과정을 통해서 해결될 수 없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미국 역사는 다양한 종교와 인종, 민족이 극단적인 대립 속에서도 다문화주의보다는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통해 공존하고 번영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자유주의는 사적인 영역(the private sphere)을 신성시하고 보호함으로써 다양한 신념과 종교, 관습이 사적인 영역에서 발휘되고 실천되어 공적인 영역에서의 평화를 지켜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민족주의 역시 자유민주주의-자유시장경제체제 속에서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다. 세계 도처에서 민족주의가 여전히 강력한 이유는 다양한 ‘인종’이나 ‘민족’, 소수 종교들이 자신들이 선택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염원을 반영해줄 수 있는 민주주의 체제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민족주의의 발흥은 자유민주주의의 확산을 통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문명충돌론이 걱정하고 다문화주의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들은 자유민주주의-자유시장경제 체제를 통해 해결할 수 있고 또 해결해야만 한다. 역사적으로도 존재하지 않고 이론적으로도 논증되지 않는 ‘문명’, ‘인종’, ‘민족’, ‘문화’의 본질을 인정하고 그 틀 속에서 국제 정치와 국내정치의 갈등을 분석하고 해소하고자 하는 것은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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