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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같은 품격, 渾身의 연주 그러나 ‘絶頂’을 놓치다
보석같은 품격, 渾身의 연주 그러나 ‘絶頂’을 놓치다
  • 한정호 / 월간객석 기
  • 승인 2003.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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쭦문화계산책 : 양성원 첼로 리사이틀을 보고

 


 

 

한정호 / 월간객석 기자

첼리스트 양성원(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과 피아니스트 문익주(서울대 음대 교수)는 지난 1996년 본격적인 듀오활동을 시작한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실내악 커플로 불릴만한 연주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이들이 심혈을 기울여 세계적인 음반사 EMI를 통해 발매한 ‘코다이 첼로 작품집’은 올해 2월 영국의 음악 전문지 ‘그라모폰’의 ‘에디터스 초이스’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9일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양성원 첼로 리사이틀은 2003년 양성원과 문익주의 관계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연주회의 첫 곡으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2번 D단조를 들고 나온 양성원은 “첼리스트로 무르익는 나이는 쉰을 넘겨서부터”라며 “현재의 자신의 모습은 아티스트의 관점에서는 청소년의 수준”이라고 겸손했지만 “나이가 어리든 많든 바흐는 도전”이라고 했다. 이 날 연주는 바흐가 시도한 첼로가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끄집어내는 靈媒 역할에 충실했다. 양성원의 스승 야노스 슈타커의 음반과 양성원의 연주에서 공통점을 찾으려는 세속적인 접근은 별무 소득이 없었다. 슈타커의 지론이 ‘자신의 음악을 찾아라’여서 “스승의 연주를 모방하는 제자를 용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연주에도 반영된 것이다.
리사이틀의 하이라이트는 프랑크 소나타 A장조였다. 널리 알려진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를 첼로로 편곡한 곡을 양성원과 문익주는 리사이틀 후반부 전체에 할애했다. 그는 한 현악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네 곡의 레퍼토리 배치에 의미를 각각 부여했다”라고 했다. 독주회를 관통하는 레퍼토리의 흐름에 양성원은 메시지를 담으려 했고 청중이 이에 교감하기를 원했다.
최근 세계적인 첼로 독주회 추세는 연주시간 1시간 30분 분량의 리사이틀 구성을 통해 슈트라우스-슈만-프로코피예프 소나타 사이클 정도의 스케일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리잡고 있다. 관객은 감상의 부담을 덜고 연주자도 집중력을 최적으로 발휘해보라는 기획자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다. 과감하게 첼로편곡의 프랑크 소나타를 후반부에 단독으로 배치한 양성원의 의도가 좀 더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전반부에 레퍼토리 하나 정도는 빠지는 것이 ‘세속적인 전략’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프랑크 첼로 소나타는 형식미와 음색미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곡이다. 네 개 악장의 완벽한 돌림 노래형식이 주는 재미와 바이올린에서는 화사하고 발랄했던 프랑크의 소나타가 첼로로 편곡되면서 장중하고 침울하게 톤을 달리하는 묘미를 한껏 살려 냈다. 바이올린을 위해 작곡된 소나타를 첼로로 연주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양성원은 첼로 연주에 유연함은 없고 긴장만이 존재한다고 했다. 긴장 공간에서 듀오는 숙련된 마이스터처럼 템포의 이완과 조임이 리드미컬했다. 문익주가 보조하는 풍부한 피아노 페달의 울림은 품격을 잃지 않고 치달을 수 있는, 프랑크 색깔에 어울리는 첼로의 상승 지점을 가리키는 고도계 역할을 했다. 악장의 순환동기에서 지긋이 어울리는 첼로와 피아노의 조합은 “양성원과 문익주의 신뢰 관계는 이런 맛을 우려내는구나” 무릎을 치게 했다. 그러나 혼신의 연주가 최고의 연주와 엄격한 등식을 이루려면 그에 상응하는 연습량도 뒷받침돼야 하는데, 듀오가 이를 거듭 고민하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거센 첼로의 음향이 양성원을 통해 전아하게 들리는 것은 혹자의 지적처럼 첼로가 사람의 목소리에 가장 근접한 악기라는 특성에 기인해서인지 모른다. 그러나 양성원의 첼로의 품격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예술에 대한 그의 궁극이 반영된 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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