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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통합의 新세계관 요청…선험적 동질성 극복 필요
지역통합의 新세계관 요청…선험적 동질성 극복 필요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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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 동북아 공동체 담론의 당대사적 전개

현재 동아시아 공동체 담론은 학문분과의 목소리들이 별다른 교섭도 없이 개별적으로 구성한 동아시아상이 어떻게든 융합의 과정을 거쳐 종합적인 공동체상을 구축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환상을 갖고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중심의 제국적 자본의 압박과, 신지역주의로의 세계경제권 재편성에 비교적 선명하게 응답하고 있는 사회과학 영역의 동북아 공동체론이 담론의 헤게모니를 잡아가고 있다.
정계-경제계-언론계-학계 등 4계의 분업시스템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동북아 공동체론의 요체는 극동아시아 지역의 先 안보 확보와 後 경제 통합이다. 미국, 북한,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향후 경제협력국이 될 나라들로 다자적 논의틀을 구성해 우선 북핵을 잠재우고, 경제적 제휴의 그림을 빠른 시일 내에 그려보자는 것이 최근의 논의라 할 수 있다.
동북아 안보공동체 논의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 즉 한미일 군사동맹을 중심으로 중국을 에워싸려는 노력과 길항적 관계에 있다. 이삼성 가톨릭대 교수(정치학)를 비롯한 진보적 학자들은 미국의 對中 봉쇄전략이 가져온 동북아의 긴장과 불안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한중일 3국의 안보협력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인문적 공동체론의 한계
동아시아 혹은 동북아가 단순히 자유무역지구를 넘어 유로연맹이나 나프타에 뒤지지 않는 경제적 자율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국제역학적 계산을 넘어, 역내국에 대한 상호신임과 일상문화적 융합이 함께 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동북아의 쟁점을 잠시 벗어나 역사문화적 동아시아 공동체 담론의 원류를 더듬어보는 일이 필요하다.
그 시작은 유교자본주의론에서 찾는 게 합당할 것이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경제적 성장에 대한 서양학계의 원인추론 및 청교도적 기반을 잃어버린 서구 자본주의의 심리적 방황이 다다른 대안적 신대륙이었다. 유교가 강조하는 근면의 습성과 집단적 기율이 자본주의 근대화 과정에서 아시아 경제를 일으키는 중심적 요소로 기능했다는 논지다. 뚜웨이밍, 헤르만 칸, 시마다 겐지 등의 주장을 국내 학자(조혜인, 유석춘, 함재봉)들이 받아들이고 퍼뜨리면서 이 문제는 논쟁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했다. 유교자본주의를 넘어 아시아민주주의 등 아시아적 가치와 서구적 이념을 교섭시키려는 노력으로 확대된 논의는 “과잉단순화된 문화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정치경제에 접근하는 한계”가 지적되면서 동조자보다는 비판자(김영명, 김석근, 이승환, 김홍경, 김경동)를 더 많이 얻었다. 그러다가 IMF 이후 아시아 경제몰락의 이유로 가족주의 같은 유교적 요소들을 지목한 해외의 분석(정실 자본주의)들이 打電되면서 한풀 수그러들었고, 이로써 동아시아적 자본주의의 고유성을 증명하려는 韓中日 삼국의 이론적 노력은 잠정 중단됐다.
한편으로 동아시아를 서구적 근대에 대항하는 탈근대 담론의 기지로 구성하려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내재적 버전(정재서, 조한혜정)도 있다. 이것은 대만을 포함한 동북아 삼국을 한자문화권의 틀 위에서 상호연관된 사유체계를 형성한 집단으로 묶으려는 일련의 철학적, 문학적, 신화학적 노력을 말한다. 이런 동양담론의 창출 노력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데, 동아시아 여성소설에 나타나는 공통된 심성구조 연구라든지, 동아시아 건국 신화의 역사와 논리를 북구 신화의 수준으로 종합해보려는 논의라든지, 아니면 식민지 근대 혹은 수입근대의 비교연구를 통해 근대화 과정의 유사성을 확인하는 일들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역사적, 문화적 경험의 공분모를 높이고 오랜 알력관계가 완화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백색신화에 대한 언-씽킹(un-thinking)에 강조점이 놓이고, 인종중심적 지역연대라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어 한계로 작용하는 면이 있다. 반면 국가중심주의 같은 20세기형 정치철학을 탈중심화해서 ‘중심’들 밖 혹은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식으로 동아시아론을 전개하는 일부의 논의(최원식)는 현실과 가까워지는 모습이다.

일국적 가치관과 세계주의 가치관 의 균형
정치경제학 차원의 동아시아 공동체론은 이런 인문학적 차원의 작업들과는 별개로, 시기적으로도 나중에 국제정치경제의 변화와 함께 등장했다. 그것은 개방강화(GATT→WTO)와 지역통합(EC, NAFTA, AGELTA)이란 상반된 두 흐름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 시작은 1987년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수상이 제안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개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에 한중일을 비롯한 북아시아가 주춤주춤 다가선 방식이었는데, 이런 배타적 경제협력은 미국과 호주의 반대로 싱겁게 무산됐고, 그것이 비교적 현실성 있는 공동체 논의로 구체화된 것은 아태경제협력기구가 출범한 1999년 이후부터라 할 것이다. 최근엔 다시 중국의 고도성장이라는 절대변수와 마주치면서 한중일을 꼭지점으로 동북아 광역지구를 설정하는 게 생산적일 것이라는 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현재 노무현 정부는 패권다툼을 벌이는 일본과 중국을 중재하고, 또한 지정학적 조건의 역사적 逆轉을 맞아 물류중심국의 꿈을 키우고 있다(남덕우, 성경륭). 동북아 공동체론은 역내 국가들의 지리적 인접성, 경제규모 등이 EU와 대등한 것으로 평가되면서 어떻게든 세계조류와 함께  구체화의 길을 걸을 것으로 전망된다. 학계의 몫은 이런 정부의 행보에 보편적 당위성의 힘을 실어주는 게 아닐까 한다. 즉, 일국적 가치관과 세계주의적 가치관의 중간단계인 지역통합의 세계관을 생산해내고, 주변 강국들의 이해관계, 각국의 정치경제사정 및 전망을 분석하며(경제학, 국제관계학), 또한 환경이나 노동 같은 문화적 소수자들의 문제의 돌파구와 함께, 시민사회 같은 다양한 교류협력체제의 구체적 방안들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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