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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관통하는 추동력은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의지와 계책의 파노라마 ”
“삼국지를 관통하는 추동력은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의지와 계책의 파노라마 ”
  • 윤상민
  • 승인 2017.12.2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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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로 후반기 인생 사는 한형수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한형수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강남시니어클럽에서 삼국지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윤상민 기자
한형수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 삼국지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윤상민 기자

“여포는 잇속에 아주 밝은 사람이죠. 술 한 잔 안 마신다고 장비에게 곤장을 맞은 도겸의 옛 부하 조표가 억울해서 여포에게 하비성을 접수하라고 합니다. 전날 술을 많이 마신 장비의 창끝은 날카롭지 않았어요. 주군 유비의 처자를 다 두고 하비성을 빠져나옵니다. 결국 유비는 서주를 여포에게 빼앗기고 조조에게 의탁하게 됩니다. 정욱이 말하죠. 유비는 영웅의 자질을 가진 교룡이니 지금 죽이라고요. 그런데 조조는 천하를 다스릴 자신의 관인함을 보이겠다며 그러지 않아요. 정욱 말을 그때 받아들여서 조조가 유비를 제거했으면 삼국시대는 전개되지 않았을 겁니다. 역사에 가정법은 무용하지만요.”

지난 21일 오후, 강남시니어플라자 4층 인문학관을 가득 채운 백발의 삼국지강좌 수강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대 한국정치판을 소환해 조조의 교만함을 비교하는 대목에서는 강의실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戊戌年에 다시 만나자는 말로 한형수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강의가 끝나자 수강생들이 그와 아쉬운 인사를 나누며 강의실을 나섰다. 대부분 어렸을 때 한두 번은 읽어 본 삼국지 내용을 떠올리며 1천8백 년 전 삼국시대의 사건들이 21세기를 사는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곰곰이 되씹는 표정들이었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사회정책·노인복지를 가르치다 지난 2009년에 정년퇴임한 한 교수의 일과는 여전히 분주하다. 평생을 공부해온, 어쩌면 전공보다도 더 매진했던 삼국지를 연구하고, 그를 찾는 곳에서 정기적인 강좌를 열어 수강생들을 삼국지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강의도 수년 간 계속해온 그의 강좌 중 하나였다.

왜 삼국지였을까? 어떻게 삼국지에 이렇게 매달리게 된 것일까? 한 교수의 어린 시절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덕유산 기슭에 살던 촌놈이 초등학교 졸업하고 전주로 유학을 떠났는데 밤마다 어찌나 고향집 생각이 나던지요. 하숙집 가까이 있는 도립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그 마음을 달랬습니다. 그러다 중국 4대 기서로 일컫는 서유기, 수호지, 금병매, 삼국지를 만나게 됐죠. 서유기는 허황된 상상의 이야기이고, 수호지는 양산박 의적들의 이야기로 매우 흥미진진했고, 금병매도 있을 법한 인간의 이야기긴 했지만 삼국지는 충의의 끓는 피를 충족시키는 교훈이 있고 삶의 지혜가 담겨 있어 그 읽는 재미는 단연 압권이었어요. 1954년에 나온 10권으로 된 정음사 판을 읽으며 밤을 하얗게 지샌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그는 고향 서당에서 1년간 『명심보감』, 『통감절요』 등으로 한문의 기본을 익히고, 대학 1, 2학년 때 『대학』, 『논어』, 『주역』, 『맹자』, 『시경』 등 교과목을 이수하며 자연스럽게 한문 원전에 가까워졌고 진수의 삼국지를 탐독하게 된다. 서울시립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는 1992년 마음이 맞는 교수들과 ‘삼국지를 사랑하는 교수들의 모임’을 발족한다. 동료 교수 2명과 관악산을 등반하는 내내 삼국이 이야기를 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타 대학 교수들까지 참여해 이십 여명의 교수가 20여년간 春夏秋冬, 일 년에 4번 세미나를 했고, 10여 차례 답사여행도 다녀왔다.

삼국지에 대한 애정과 노력이 담긴 결실이 세상에 나왔다. 바로 『삼국지 군웅할거 인물론』(홍문관 刊, 2017.12)을 출간한 것. 그의 책이 유의미한 지점은 소설이 아닌 역사삼국지 이야기라는 부분이다. 소설이 아닌 삼국지는 중국 CCTV에서 이중텐(易中天)이 방송강의 한 것을 번역해 지난 2007년 김영사에서 출간한 『삼국지 강의 1,2』가 있었고, 이후 10여 년 간 주목할 만한 저작은 없었던 상황. 소설이 아닌 역사삼국지로는 읽힐 만한 삼국지 관련 도서가 없던 상황에서 그의 저작은 가뭄에 한 줄기 단비 같다.

한 교수는 수천 명이 등장하는 삼국지에서 44명의 인물을 선택했다. 그야말로 삼국지를 이끌어가는 주동인물만 추린 셈. 군웅할거시대 인물 6인, 주군과 모신, 무장 중심으로 위나라 13인, 촉나라 10인, 오나라 10인 그리고 삼분귀진 5인이다. 총 5부작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1권에서는 동탁, 여포, 공손찬, 원소, 원술, 유표 등 군웅할거시대의 인물 6인을 複眼의 프리즘으로 심층적으로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왜 인물론일까? 한 교수가 제갈량과 모택동의 사례를 끌어온다. “제갈량은 조조가 하북의 제일주자였던 원소를 무찌르고 중원과 북방을 제패한 것을 天時때문만이 아니라 人謀에 의지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모택동은 「지구전을 논함」에서 승패에 대한 결정을 초래하는 데에는 전쟁에서의 의식적 능동성이 필요하다고 말하죠. 삼국의 수많은 주군, 모신, 무장이 어떤 의지가 있어서 어떤 계책을 내어 역사 국면을 바꾼 것인지, 이것이 삼국지를 관통하는 추동력이라고 보아 인물론으로 이론적 틀을 구축한 겁니다.” 수많은 인물들의 개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는 것, 또한 그 인물들의 의지와 계책이 추동력이 되어 난세 국면을 바꿔나가는 삼국정립의 판세에서 ‘인물론’은 어쩌면 필연적으로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삼국지를 꿰뚫어 보는 패러다임이라고 할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삼국지에서 눈여겨봐야 할 관심 인물은 누구일까? 돌아온 그의 대답은 곱씹어볼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우리나라 삼국지 독자들은 촉나라 유비 아니면 위나라 조조를 들겠지요. 여기에서 오나라의 손권을 주목해 보는 제3의 관점도 유용하리라 여겨집니다. 동오의 손권은 아버지와 형의 막료들을 이어받고도 여기에 새로운 인재를 의기투합하게 등용했고, 조조가 강할 때는 유비와 동맹을 맺지만, 유비의 공격을 받았을 때는 조조의 아들 조비에게 稱臣하기까지 하며 손을 잡았죠. 분명 기존의 촉한정통론과 조위정통론이 삼국지의 양대 관점이지만, 격변하는 삼국시대를 오늘날의 우리 삼국지 독자들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는, 오나라에도 주목해보는, 그런 다원적인 시각을 갖고 삼국지의 시대라는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윤상민 학술문화부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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