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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고생하기’의 作心
‘사서 고생하기’의 作心
  • 손상순 제주교대
  • 승인 2003.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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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어느덧 삼십여 년이 지난 옛이야기이다. 혼인을 하고 한두 해쯤 지나면서부터 아내는 종종 내게 바가지를 긁곤 하였다. 내용인즉 요컨대 내가 너무 편안하게만 살려드는 게 못마땅하다는 불평의 토로였다. 하지만 나로선 부인도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실상이 그랬고 또 굳이 내세울만한 꼭 편히 살지 않으면 안될 까닭이나 내 나름의 확고한 신념 같은 게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그런 거듭된 충고에도 불구하고 대저 어려움이나 괴로움을 될수록 피하며 살아가려는 내 생활 습성이 크게 바뀌지는 않은 성 싶다. 하지만 아내가 온통 헛수고만 한 것은 아니다. 그 덕분에 나는 이따금씩은 내 삶을 점철하고 있는 안이한 나날들의 연속을 돌이켜 살펴보고 뉘우치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반성을 통하여 거둬들인 이런저런 결실들도 없지 않았다.

이들 수확된 열매들 가운데는 그 후 내가 두고두고 필요할 적마다 써먹은 내 나름의 행위 준칙 즉 격률 하나도 들어 있다. 그것은 앞으로 할 일이나 진로의 선택을 두고 이럴까 저럴까하고 마음의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그 중 내 생각에 하거나 이루기에 ‘쉬운 쪽’보다는 ‘어려운 쪽’, ‘넓고 편안한 길’이 아닌 ‘좁고 험난한 길’ 쪽을 일부러 택해 일을 도모하고 추진토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 학기의 담당과목을 고를 기회가 주어질 때에 전에 맡아 가르친 적이 있는 것 대신에 전연 새로운 과목을 택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물론 여기에는 교재연구라든가 강의계획 등에 이런저런 번거로운 고려와 수고가 더 많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젊은 시절에는 사서라도 해야한다는 이런 고생은 쉬이 안일로 기우는 내 삶에 새 의욕과 도전을 끌어들이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됐다.
특히 인생행로의 중대한 갈림길에 부닥쳤을 적에 나는 이 준칙을 감연히 활용해여 진로를 결정하곤 했다. 예컨대 중등에서 순탄한 교직생활을 하다가 방향을 바꿔 늦깎이로 대학으로 자리를 옮길 때에 그랬다.

또한 대학에 와서 처음 총장 선거에 뛰어들 때, 그리고 또 그 4년 뒤 당시는 그런 선례도 거의 없고 아내마저도 극구 만류하는데도 총장 연임을 위한 출마를 결심할 적에도 마찬가지였다.
하기는 이런 식의 선택이 결국은 내 주위의 크고 작은 사회나 내 자신을 위해서 잘한 일이었는지 아니면 그 반대였는지에 대해선 확답할 자신은 없다. 아마 이는 평가자의 시각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을 듯 싶다. 그렇더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그런 시도를 통해 자신의 고질적 안일 선호의 타성을 깨고 정년까지 좋았든 나빴든 꽤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었음은 여간 아닌 보람으로 여겨진다.

퇴임을 전후해 그 동안 고생했으니 이제 좀 쉬며 편안히 살라는 인사를 주위로부터 자주 듣고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만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사서 고생하기’는 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게 요즘 한창 굳히는 중인 내 소신이다. 그게 곧 몸은 늙어도 마음은 젊게 사는 방도라고도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당분간, 아니 여생 내내 앞서 말한 험로 선택의 격률을 계속 충실히 지켜갈 작정으로 있다.   

실은 이 글도 원고청탁 전화를 받았을 적에 사절하고 편히 소일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짐짓 ‘사서 고생하기’ 위해 수락해 쓴 것이다. 손상순/제주교대 명예교수(도덕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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