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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출신·서울대·미국박사 여전히 강세… “탈권위주의 세대 아직 등장하지 않아”
영남출신·서울대·미국박사 여전히 강세… “탈권위주의 세대 아직 등장하지 않아”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3.03.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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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주류 교체 진행 중인가 - 참여정부 장관들로 본 우리시대 주류론

노무현 정부의 파격적인 관리등용을 둘러싸고 한국 주류사회의 지각변동이 운위되고 있다. 개혁성, 젊은피, 주변부로부터의 상승이 기존 주류세력을 무대에서 밀어냈다는 이런 관측은 한편에서는 주류들의 과장된 엄살이라는 빈축을 사고 있다. 실제로 참여정부 장관(급) 20명의 성향을 역대 정권과 비교 분석한 결과 그리 큰 차별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신중론자들은 정치적 차원에서 통치엘리트 유형이 다소 바뀐 것일 뿐이라는, 현정부의 개혁성에 대해 다소 반신반의하는 견해들도 내놓고, 현재의 개혁지수가 5년은 지속돼야 신주류의 정착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다리는 건 기존 지배블록에의 흡수통일 뿐이라는 건 역사가 말해주는 진실이다. 현재 주류언론이 퍼뜨리고 있는 신주류 담론은 그런 흡수통일의 첫 단계가 아닐까.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후, ‘주류 세력 변화’, ‘신주류측 인사’라는 말이 여과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능력 검증도 되지 않은 비주류 인사들을 대거 임용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으며, 신주류의 반대항인 ‘구주류의 우울한 퇴거’도 연일 보도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 개혁’이 ‘사회 위기론’과 결합하다보니, ‘신주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사회 저층에 하나의 여론으로 형성되고 있다.

40대 여성 변호사 강금실 법무부 장관, 44세의 남해 군수 출신 김두관 행자부 장관, 행정경험이 전무한 영화감독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등에서 볼 때, 새 정부의 첫 인선은 과연 ‘파격’적인 면모를 띠고 있다. 그러나 장관 가운데 비주류 인사 몇몇이 등용됐다는 이유로 ‘주류 교체’ 등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닐까.

장관 인선의 특성을 대략적이나마 가늠할 수 있게 하는 학력, 나이, 경력, 출신 등을 따져보더라도, ‘신주류 담론’은 그리 설득력 있지 않다.
참여정부 장관(급) 20명 가운데 서울대 출신은 12명(60.0%)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동안 학벌주의 청산을 주 공약으로 삼았던 것을 상기시켜본다면, 서울대 일색의 장관 인선은 참여정부가 서울대 중심의 학벌주의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역대 정부의 서울대 출신 비율을 본다면, 김대중 정부 44.9%, 김영삼 정부 67.0%, 노태우 정부 58.6%, 전두환 정부 51.5%, 박정희 정부 23.2%, 이승만 정부 12.4%로 나타났으며, 노무현 정부는 김영삼 정부 다음으로 서울대 출신을 높은 비율로 기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사출신 장관 16명 가운데 10명(62.5%)이 미국 박사학위 소지자인 것도 큰 특징이었다. 

이번 인선에서는 출신지역별 편향도 컸다. 장관 20명 가운데 영남출신이 8명(40%), 호남 출신이 4명(20%), 서울·경기 출신이 2명(10%), 충청이 2명(10%), 제주·평양이 각각 1명(10%)였다. 지역별로 빠짐없이 발탁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영남 출신이 과도하게 포함돼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역대 정부 가운데 김대중 정부가 영남출신 장관(25.8%)과 호남출신 장관(25.8%)을 동일하게 인선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정부가 영남권 출신을 다수 등용시켰다. 이시원 경상대 교수의 논문 ‘우리나라 역대정부 장관의 재임기간 및 배경분석’에 따르면, 영남권 출신 장관 비율은 김영삼 정부가 37.0%, 노태우 정부가 30.3%, 전두환 정부가 39.8%였다.

참여정부 장관들의 평균 연령은 55.2세이다. 전두환 정부의 장관 평균 취임 연령이 52.5세, 노태우 정부가 55.7세, 김영삼 정부가 56.2세, 김대중 정부가 58.9세인 것에서 볼 때,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나이 파격도 전례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이인제 자민련 총재 권한대행은 1993년 45세의 나이에 노동부 장관으로 발탁됐으며, 이해찬 새천년민주장 서울시지부장은 지난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때, 46세 운동권 출신 교육부 장관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럼에도 참여정부 장관들의 개혁성을 속단할 수는 없는 상황. 참여정부가 노사모와 같은 자발적인 정치참여운동과 인터넷·386세대 등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서 정권을 획득했다는 사실을 기초로 한다면, 새로운 인물의 등장은 사회구조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시원 경상대 교수(행정학)는 “그간 주류에서 빗겨서 있던 사람들이 이번에 대거 등용됐지만, 이런 현상을 ‘주류 교체’로 섣불리 얘기할 수 없다”라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동안의 정책과 사회 변화 흐름들을 봐야할 것”이라는 신중한 입장을 내놓았다.

혹자는 ‘세대 교체’, ‘신주류’라는 말을 단순한 ‘수사’로 여기길 권고하고 있다. 기존에 특권을 가졌던 최상위 집단의 앓는 소리라는 것. 사회 제도적 권력이나 지배적 지위를 갖췄던 주류층 및 언론들의 과잉된 우려와 현실 왜곡이 ‘신주류 論’에 섞여 있다는 지적이다. 주류에 새로운 인물이 편입될 뿐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인적구성에 있어서는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주류를 대체해 신주류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가치관과 사고방식, 특히 경제에 있어서는 사실상 메인 스트림에 포섭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라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기업, 종교조직, 대학, 언론 등 사회 제 영역에서 실질적으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집단이 바뀌지 않았다”라면서 “행정부 내의 권력 집단이 다소 바뀌었지만 그것을 ‘주류교체’라 말할 수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정치적 차원에서 통치 엘리트 유형이 다소 바뀌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권위주의적인 속성을 탈피한, 개방적이고 위축되지 않은 사고방식을 지닌 세대들이 사회 전면에 나설 때 주류 교체를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류가 교체되기보다는 새로운 유형의 특권층이 ‘주류’에 포섭될 뿐이라는 것은 기존의 역사가 스스로 말해왔다. 차관 34명 가운데 단 한명의 여성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은 기성의 벽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성급한 비관도 현실적이지 못하다. 참여정부 임기 동안, 새로운 세대가 각자의 영역과 경계를 넘어 주류의 지위를 놓고 생산적인 문화투쟁, 권력투쟁을 벌여나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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