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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한국학술용어: 문제점과 방안’ 조명한 2002년 학술단체연합회 학술대회
[학술대회] ‘한국학술용어: 문제점과 방안’ 조명한 2002년 학술단체연합회 학술대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3.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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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한국학술진흥재단 대강당에서 열린 2002년 학술단체연합회(회장 송희성)의 정기학술대회 주제는 ‘한국학술용어: 문제점과 방안’이었다. ‘문제점과 방안’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사실 논의가 산만할 수밖에 없는 접근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엉성하고 성긴 접근이었지만, 사실 문제의식만큼은 치열하고, 시급한 주제이기도 했다. 학술 용어가 난마처럼 뒤엉켜있는 게 우리 학계 현실이니까.

주최측의 고민은 “한국학술용어의 제정 및 보급과 관련한 어려움, 인접 학회와의 관계 등 각 학회별 경험과 방안 등을 발표하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는 초대글에서도 역력하다. 흥미롭게도 학술대회의 열기가 화끈 달아오른 곳은 발표자의 자리가 아닌, 토론자들이 모인 원탁토론회 자리였다.

발표자로 참석한 송기중 서울대 교수(국어국문학과)가 ‘용어의 생성과 용어의 제정’을, 조남호 국립국어연구원 학예연구관이 ‘국어정책의 관점에서 본 전문용어’를, 박삼서 교육인적자원부 교육과정정책과 장학관이 ‘교과서 개발과 편수용어’를, 신윤식 한국과학기술원 전문용어언어공학연수센터 책임연구원은 ‘산업정보화시대의 전문용어 정비 전략’을 각각 발표했다.

발표자들의 논의가 끝난 뒤, 짧은 휴식 뒤 학회의 주요 위치에 있는, 이번 학술대회 주제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토론자들이 원탁토론회를 이어갔다. 사회는 서대석 서울대 교수(국어국문학회 회장)였다. 지정토론자에는 박은호 한양대 교수(한국생물과학협회 생물학용어심의위원장), 김조자 연세대 교수(대한간호협회 간호실무용어분류분과위원회 위원장), 이준규 서울대 교수(한국물리학회 용어심의위원), 이기석 서울대 교수(대한지리학회 회장), 도춘호 순천대 교수(대한화학회 화학술어위원장), 유평준 연세대 교수(한국행정학회), 이흥식 서울대 수의과학대학장, 김정훈 홍익대 교수(대한전기학회 용어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가했다.
이날 발표자와 원탁토론회의 주요 논의를 정리 소개한다.

발표자들 주요 주장

송기중 교수 용어의 표준화 사업은 해당 용어 사용자들이 제정하고 시험해 정착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게 형성된 용어가 적절하다면, 필요한 사람 대다수가 채택할 것이고, 결국 전국적인 표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바로 미국 영국 등에서 이루어지는 방법이다. 우리는, 용어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안에서도, 국가가 먼저 규정을 만들어 놓고 국민들을 따르게 하는 제도에 익숙하다. 아울러, 표준화되지 않아도 불편이 없는 용어, 표준화의 필요가 없는 용어, 누구도 사용하지 않을 표준 용어를 제정하는 데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일도 이제 지양하자.
조남호 학예연구관 국어정책단계에서 전문 용어와 관련한 과제는 세가지다.
첫째, 용어의 통일이다. 현재 전문 용어에 관한 국어정책에서 용어의 통일과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외래어 표기를 잘못 적용해 여러 용어가 사용되기도 하고 기준이 되는 언어를 어느 언어로 삼았느냐에 따라 여러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최근 논란이 됐던 ‘게놈’, ‘지놈’이 예가 될 것이다.
둘째 용어의 순화다. 용어의 순화도 이미 익숙하게 널리 사용되는 말을 순화하려고 힘을 들이기보다 새로 들어오는 말이 정착되기 전에 국어에 적합한 말로 용어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우선될 필요가 있다.
셋째, 남북 전문 용어의 통일이다. 남북 전문 용어의 대비표를 만들어 남한의 용어가 북한의 용어와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파악하고, 쉽게 통일할 수 있는 것부터 통일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박삼서 장학관 편수용어의 체계적인 정립과 이의 활용은 어떤 면에서 교육의 방향이나 틀을 바꾸는 교육혁신을 의미한다. 편수용어 속에는 교육이 제공할 수 있는 지식과 사상, 철학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앞으로는 교육과정 개정 및 교과서 개편과 동시에 편수용어의 改修 작업도 이뤄져야 한다. 편수용어의 개념규정, 분류방법, 선정 범위, 표기방법, 교과서 개발과의 관계 등은 교육학적 이론과 방법으로 보완돼야 한다.
신윤식 책임연구원 전문용어언어공학연구센터의 목표는 표준화, 전자화된 한국어 전문용어 목록의 생성과 보급에 있다. 또 기존의 단일 학회만의 전문용어 제정에서 벗어나 이 한계를 극복하는 데 목적이 있다.

원탁토론회에서 오간 주요 발언들

박은호 교수 한국생물과학협회는 효율적인 용어 제정을 위해 1993년 11월, 협회 상설 기구로 ‘생물용어제정심의위원회’를 두기로 결정하고 1994년부터 본격적인 협회 차원의 제정 사업에 착수했다. 다행히 1995년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생물학 용어 제정 사업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자유공모과제 연구비를 2년에 걸쳐 지원해 줌으로써 제정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 결과 2000년 1월 15일 생물학 용어 3만5천어를 심의 완료해 이를 ‘생물학 용어집’(아카데미서적 刊)으로 출판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우리 협회는 상설 생물학용어심의위원회에서 절차에 따라서 매년 2천~3천여 개의 용어를 심의 제정해 회원에 1년 단위로 공표하고 있으며, 새로 제정한 용어를 추가해 2005년 2월에 ‘생물학 용어집’ 증보개정판을 출판할 계획이다.
이준규 교수 한국학술용어의 정비 및 통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주요 국가정책사업이다. 제대로 정비되지 못한 전문학술용어의 범람은 결국 우리 국민 전체의 학술·문화에 대한 수준저하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한국물리학회에서는 1991년부터 용어심의위원회를 구성해 물리분야의 일본식 용어, 한문 용어들을 쉬운 우리말 용어로 바꾸는 작업을 학회사업으로 수행한 바 있다. 그 결과로 1995년에 ‘물리학 용어집’을 발간하고 모든 물리학회 회원들에게 가급적 이 책자에 실린 용어를 사용해주도록 협조 요청을 했다. 이에 대한 교수, 교사, 대학생들의 반응은 그리 긍정적인 것은 아닌데, 아마도 순수 우리말 용어에 지나치게 집착한 결과 많은 ‘낯설은 우리말’을 갑자기 접하게 됐을 때 나타난 거부반응이 아닌가 추측된다.
학문 분야에 관계없이 동일한 전문학술 용어가 사용되도록 표준화된 용어를 만드는 작업이 중요하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중국, 북한에서까지 이 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가가 주관하는 기관에서 지속적으로 관련된 연구와 정비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비하면 오천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우리만의 문자를 갖고 있음을 큰 자랑으로 여기는 우리가 처한 실정은 너무 창피할 뿐이다.
도춘호 교수 대한화학회는 1946년 설립됐고, 화학 술어 제정은 화학술어위원회에서 담당하고 있다. 화학술어위원회는 (1)화학 술어의 제정이외에도 (2)원소명, (3)각종 화합물의 명명법, (4)화학과 관련된 각종 기호, 그리고 (5)외국 화학자 이름의 한글 표기 등을 담당하고 있다.
대한화학회에서는 화학술어 제정 원칙을 세우고, 학회 창립 이후 화학술어집을 제4판까지 발행했다. 금년 말 발행을 목표로 1만2천~1만4천 개의 술어가 담긴 제5판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영어-한글 술어집 이외에도 일어-한글, 중국어-한글 화학술어집도 2003년 발행을 목표로 현재 진행중이다.
대한화학회는 화학술어와 명명법 등에 관해 국제 단체 및 국내 학회들과도 협력하고 있다. 국내 화학계를 대표해서 화학에 관한 국제기구인 국제순수및응용화학연합회 (IUPAC)에 가입해있으며, IUPAC에서 정한 국제적 명명법 등을 한글로 표기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한국화학공학회, 한국고분자학회 그리고 한국공업화학회와 함께 결성한 한국화학관련학회연합회의 사업인 학회공동술어집, ‘한국화학관련학회 연합회 종합술어집’을 금년 10월 발행했다.
유평준 교수 한국행정학회 차원에서 학술용어 체계화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하지는 못했다. 2001년도 한국행정학회 행적학 분야의 시소러스 구축 작업이 최근의 노력이다. 이 작업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토론에 임하겠다. 행정학은 인접학문분야와 다양한 용어들을 공유 사용하고 있는데 용어의 개념이 분야별로 다르며, 시소러스 구축에서 관계어 설정이 상이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학제간에 공동 사용하는 학술용어의 개념 등을 체계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행정실무에서 시작된 용어를 학술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때로는 개념규정이 명확치 않거나, 때로는 개념정의가 국가, 기관 또는 사용자에 따라 상이하다.
국내 행정(학)용어의 외국어 번역이 정확치 않거나 번역자에 따라 달리 표현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특히 정부부처의 영문명칭에 어색한 것들이 발견된다.
학술용어는 해당 전공의 하위분야 분류체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행정학은 하위분야를 대개 10여 개의 대분류로 구분하고 있지만, 학계의 합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행정학 발전 추세에 따라 대분류 영역을 확장하고 또한 중분류소분류의 체계화를 통해서 특정한 학술용어가 학문분류체계 내에서 어디에 위치하는가를 규명함으로써 용어의 위치를 자리잡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흥식 교수 용어란 자주 쓰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과학기술의 토착화를 위해서는 과학기술 교육에서 용어의 통일과 한글화는 대단히 중요한 명제다. 통일된 한글용어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학자의 집단인 학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 방법은 우선 각 학회가 통일된 용어를 공인하고 각 학회에서 발행하는 학회지 게재 논문이나 학술대회 발표논문에 모두 이 용어를 필히 사용토록 엄격히 관리하는 일이다. 요사이 학회지를 보면 학회가 정한 용어를 쓰지 않고 옛 용어나 자기만의 용어 또는 원어 그대로 쓰는 일을 볼 수 있다. 쓰지 않을 용어를 무엇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드는가. 우리 스스로 반성해 볼 문제다.

정리최익현 기자 ihchoi@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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