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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편집과 ‘과학 교양’이 만났을 때
친절한 편집과 ‘과학 교양’이 만났을 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10.17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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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_ 『빅 히스토리: 138억 년 거대사 대백과사전』 DK 『빅 히스토리』 제작위원회 지음, 윤신영 외 옮김, 사이언스북스, 대형판, 440쪽, 59,000원

유발 하라리가 더 불을 지핀 ‘빅 히스토리’. 데이비드 크리스천이 “빅 히스토리는 모든 것의 역사를 연구한다. 빅 히스토리를 통해 우리 세계와 그 속에서의 우리의 역할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던 바로 그 ‘빅 히스토리’의 전부를 담아낸 흥미로운 책이 번역됐다.

지난 6월 빅 히스토리 창시자 데이비드 크리스천 교수를 비롯내 국내외 명사들이 참여한 ‘빅 히스토리 토크 콘서트’에 1천여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리기도 했다. 빅 히스토리 보급 확산에 유미 과학 문화 재단 등과 같은 민간단체와 중앙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과학관, 박물관이 적극 앞장서고 있다. 관련 융합 연구 심포지엄이나 프로그램도 여러 곳에서 열렸다. 수업을 개설한 국내 중·고등학교의 수 또한 늘고 있다고 한다. 가히 한국 사회 곳곳에서 빅 히스토리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열풍의 원인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빅 히스토리가 인문계와 이공계의 깊은 골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교육 패러다임으로, 서로 다른 분과 학문을 융합해 새로운 학문적 비전을 창출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전문가 지식과 시민 교양 간의 괴리를 뛰어넘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해 주는 사고의 틀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지닌다. 무엇보다도 빅 히스토리는 138억년의 우주 역사와 46억년의 지구 역사, 그리고 38억년의 생명 역사에 대한 포괄적 접근을 통해 기원에 대한 우리의 근원적 호기심, 세계를 더 넓고 깊게 이해하려는 이들의 지적 열망에 불을 지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이런 ‘바람’ 속에 출간된 『빅 히스토리(Big History)』는 우주 생성 최초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우주의 탄생과 생명의 진화, 그리고 인류 문명의 발전을 종합적으로 다룬 巨大史 대백과사전이다. 빅 히스토리 창시자 데이비드 크리스천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빅 히스토리 연구소(Big History Institute)가 서문과 감수를 맡고 백과사전 출판의 명가인 영국 돌링 킨더슬리(Dorling Kindersley, DK) 출판사가 기획해 각 분야별 최고 과학 저술가의 글들을 한 권으로 엮었다. 책의 탄생 과정과 제작 자체가 일종의 융합적 결과이기도 하다.

우주, 지구, 생명, 인간의 방대한 역사를 모으고 정리한 이 책은 생생한 도판 700여 점과 함께 138억년 역사를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를 쉽고 간결한 해설로 다루고 있다. 책은 대폭발 → 별의 탄생 → 원소의 생성 → 행성의 형성 → 생물의 출현 → 인간의 진화 → 문명의 발달 → 산업의 부상이라는 여덟 단계의 ‘문턱(threshold)’으로 구성돼 있다. 여덟 단계로 우주 역사 138억년을 녹여낸 셈이다. 특히 이 ‘문턱’은 대폭발 이후 우주와 지구, 생명과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과 조건들이 결합되면서 새로운 주체가 등장하고 패턴이 복잡해지며 네크워크가 다양해지는 전환점을 일컫는 개념이다.

‘대백과사전’을 표방한 만큼, 이 책의 미덕은 내용 구성 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자연사박물관, 프랑스 고문서관, 이탈리아 사우스티롤 고고학박물관, 스페인 카탈루냐연구소,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들과 사진들이 고해상도 이미지로 눈앞에 펼쳐진다. 여기에 더해 DK에서 만든 화려한 컴퓨터 일러스트와 감각적인 인포그래픽은 텍스트에 압축돼 있는 지구사, 인류사, 문명사, 자연사, 우주사의 복잡한 인과 관계와 상호 관련성을 면밀하게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

암석, 꽃가루, 고DNA 연구와 같은 중요한 과학적 탐구, 척축동물의 번성, 호미닌의 등장과 진화, 문자 기록의 발달, 의학의 진보와 같은 역사의 하이라이트, 지동설과 진화론, 평등과 자유, 인류세 등 오늘날의 세계를 만든 아이디어를 본문 중간에 배치해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세부를 놓치지 않은 세련된 편집도 돋보인다. 과학 교양서를 얼마나 아름답게, 그리고 충실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典範이다.

책의 번역은 <과학동아> 전문기자들이 맡았다.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은 ‘옮긴이의 말’에서 번역 과정에서 느낀 아쉬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빅 히스토리라는 분야 자체가 서양에서 만들어졌다 보니 안에 실린 역사적 내용의 골격이 주로 서양의 이야기로 채워진 점이다. 서양사가 마치 나무 기둥과 가지처럼 복잡한 전개 과정을 촘촘히 서술하는 동안, 동아시아나 아프리카사는 가지에 잠깐씩 들르는 새의 등장을 묘사할 때처럼 짧게 스쳤다. 빅 히스토리를 교육하고 연구하는 우리네 다음 세대가 조금씩 바꿔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대목은 돌링 킨더슬리 출판사의 편집력이다. 1974년 출판을 시작했으니 43년의 이력을 지닌 셈인데, 편집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과학교양서를 이만큼 세계에 내놓을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을 발휘하는 걸 보면 놀랍다. 과학문화와 깊이 소통하는 출판문화가 자리 잡았고, 편집자들이 그만큼 유감없이 실력을 내보일 수 있는 출판 시스템이 갖춰진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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