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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문헌은 국제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전근대 문헌은 국제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 김시덕 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승인 2017.03.2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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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전쟁의 문헌학: 15~20세기 동중국해 연안 지역의 국제 전쟁과 문헌의 형성 유통 과정 연구』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560쪽 | 26,000원

필자는 일본에서 유학을 마친 2009~2010년 사이에 『이국정벌전기의 세계: 한반도·유구열도·에조치(異國征伐戰記の世界: 韓半島·琉球列島·蝦夷地)』(笠間書院, 2010)를 박사논문으로 제출하고 이를 출간했다. 이 책을 번역한 것이 『일본의 대외 전쟁: 19세기 일본 문헌에 나타난 전쟁 정당화 논리』(열린책들, 2016)다. 이 책은 에도시대 일본에서 임진왜란 문헌이 형성된 과정을 정리한 제1부 「임진왜란은 에도 시대 2백여 년간 어떻게 형상화 되었는가」, 그리고 1609년에 일본이 유구 왕국(오늘날의 오키나와현 대부분)을 정복한 전쟁 및 이른바 ‘진구코고(神功皇后)의 三韓征伐’ 전승, 18세기 후기부터 오늘날까지 오호츠크해 연안 지역에서 전개되고 있는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군사적 긴장 관계를 다룬 일본측 문헌을 정리한 제2부 「이국 정벌 전기의 전체 상」으로 이뤄져 있다.

『이국정벌전기의 세계』에서 규명하고자 한 것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16세기 말부터 19세기 말까지의 3백년에 걸쳐 일본이 경험한 국제전쟁이 어떻게 기억·기록됐는지를 계보학적으로 검토하는 것이었다. 또 한 가지는, 조선과 명, 신라와 당, 유구 왕국, 몽골, 러시아 등 여러 외국과의 전쟁을 기록한 일본측의 문헌에서 자국의 입장을 정당화하고 상대국을 비난하는 논리 즉 전쟁 정당화 논리를 찾아냄으로써, 이를 한반도 및 중국 지역 나아가 전세계에서 확인되는 유사한 전쟁 정당화 논리와 비교 검토하는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표에서 박사논문을 집필하고 『이국정벌전기의 세계』의 출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몇 가지 과제를 확인했다. 첫 번째는 18세기 초 일본에서 일본?명?조선 삼국의 임진왜란 문헌이 집결돼 하나의 담론으로 정리될 때 조선측의 입장을 전달한 문헌인 류성룡의 『징비록』을 교감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조선 후기에 유통된 일본 문헌, 특히 역사·전쟁과 관련된 문헌의 전모를 밝히는 것이었다. 유학 후에 접한 한국학계에서는,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1627~1705)의 『童子問』과 같은 사상서,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 1657~1725)의 『白石詩草』와 같은 문학서 등에 대한 높은 관심은 확인됐지만, 필자의 입장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몇몇 문헌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조선후기에 이들 문헌이 향유된 양상이 제대로 정리, 제시돼있지 않았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이국정벌전기의 세계』에서는 임진왜란 및 1609년 일본의 유구 왕국 정복, 그리고 이른바 ‘진구코고의 삼한정벌’ 전승에 대해서는 필자 나름대로 납득할 만큼 검토했지만, 이 책의 가장 마지막 장인 제4장 「요시쓰네 에조 도해설과 임진왜란 문헌군」에서 시도한 전근대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에 관한 문헌에 대한 검토 및 그 결과를 임진왜란 문헌의 연구 결과와 비교 검토하는 작업은 불철저했다는 문제의식이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가장 큰 원인은, 전근대의 북동유라시아에서 전개된 국제전쟁을 기록한 러시아어·만주어·네덜란드어 등 여러 언어로 된 문헌에 대한 필자의 접근도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과제 가운데, 첫 번 째 과제에 관해서는 『교감 해설 징비록: 한국의 고전에서 동아시아의 고전으로』(아카넷, 2013)을 간행했고, 두 번째 과제를 해결하고자 집필한 것이 이번에 출간한 『전쟁의 문헌학: 15-20세기 동중국해 연안 지역의 국제 전쟁과 문헌의 형성 유통 과정 연구』(열린책들, 2017)이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 「『동국통감』과 『징비록』」에서는 이 두 문헌이 전근대 일본에 유입돼 활발히 유통되고, 나아가 동중국해 연안지역 바깥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추적했다. 제1장 「『동국통감』과 일본」에서는, 전근대 일본에 존재했던 한반도 관련 역사서 가운데 가장 방대한 분량과 내용을 지닌 『동국통감』이 일본인의 조선역사 인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나아가 영국의 외교관 윌리엄 애스턴(William George Aston, 1841~1911)의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에까지 이용되는 등 국제적인 수용 양상을 보였음을 확인했다. 제2장 「『징비록』과 세계」에서는 전근대 일본에서 『징비록』을 비롯한 임진왜란에 관한 각국 문헌이 수집·집성된 원동력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에스파니아어·네덜란드어·영어·러시아어 등 서구권 언어로 집필된 전근대 문헌에서 임진왜란과 한일관계가 어떻게 기술돼 있는지를 검토했다. 

제2부 「동중국해 연안 지역의 국제 전쟁과 병학」의 제1장 「일본 지식인 집단과 임진왜란·조선 정보」과 제2장 「동중국해 연안 지역의 국제 전쟁과 병학」에서는 『이칭일본전』과 『화한삼재도회』라는 두 점의 일본 문헌이 조선 후기에 유입돼 수용된 양상을 고찰하는 것을 축으로 삼아, 전근대 동중국해 연안지역에서 국제 전쟁에 관한 문헌이 유통되고 兵學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검토했다. 그리하여 제3장 「일본 병학과 조선」에서는 일본에서 18세기 초에 일어난 일본·명·조선 삼국의 임진왜란 문헌의 집성 작업과 유사한 작업이 조선에서는 18세기 말~19세기 초에 이뤄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전쟁에 대한 또는 전쟁을 통한 문헌의 국제적 유통이 동시기 동중국해 연안지역의 관계사를 이해하는데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살폈다. 

 『전쟁의 문헌학』 351쪽에 수록된 ‘조선 시대 후기에 한반도에 축적된 에도 시대 일본의 병학’ 문헌 리스트는 필자가 이 책을 통해 밝히고자 했던 바를 정리한 것으로, 이 책의 도달점이다. 『南浦文集』, 『擊朝鮮論』, 『本朝武林傳』 등의 문헌을 매개로 조선과 도쿠가와 일본 간에 병학 정보가 유통됐고, 이덕무의 『靑莊館全書』 65 「청령국지 2 兵戰」에 수록된 일본의 대외전쟁사·병학 관련 논문은 그 정점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일본의 병학을 이해하고자 한 이덕무 등의 노력은 제한적인 성과를 낳는데 그쳤는데, 이는 文을 키움으로서 武를 키운다는 전근대 일본의 관념이 조선시대 후기의 지식인 계급에 이해되기 어려운 성격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해가 발생한 배경으로, 대청제국과 도쿠가와 일본이 ‘北虜南倭’라고 비유할 수 있는 국제전쟁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면서 병학을 중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과는 달리, 병자호란 이후 대청제국에 의해 강제된 무장해제와 대청제국에 의해 도래한 장기간의 안정에 의해 동시기 조선왕조는 (조선전기, 또는 동시기 주변 국가들과는 달리) 국제전쟁에 대한 감각을 지니고 있지 못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이번에 간행된 『전쟁의 문헌학』은 『이국정벌전기의 세계』의 속편으로서 기능하고 있으나, 이 책 역시 『이국정벌전기의 세계』를 집필하면서 확인한 세 번째 과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 해답의 청사진은 교양서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메디치미디어, 2015)에서 제시된 바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6~7년 뒤에 출간될 필자의 세 번째 연구서에서 이 세 번째 과제에 대한 학술적 결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필자는 일본 국립문헌학연구소인 국문학연구자료관(총합연구대학원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간 정신과 행동의 근간에 자리한 ‘전쟁’이란 무엇인가를, 전쟁의 기억이 담긴 문헌을 통해 추적하고 있다. 『異國征伐戰記の世界』(笠間書院. 우리말 번역서는 『일본의 대외 전쟁』), 『교감 해설 징비록』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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