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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입장에서 세계와 타협하는 야생동물들을 보라”
“자신의 입장에서 세계와 타협하는 야생동물들을 보라”
  • 교수신문
  • 승인 2017.03.2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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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소리와 몸짓: 동물은 어떻게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가?』 칼 사피나 지음, 김병화 옮김, 돌베개, 782쪽, 35,000원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을 지켜보는 생태학자라면, 야생동물 모두 자신과 새끼가 계속 살기위해 노력하면서 세계와 얼마나 깊이 있게, 또 얼마나 섬세하게 협상하는지, 또 인간의 관찰이 놓치는 헐거운 틈새를 얼마나 쉽게 빠져나가는지를 보고 겸손해질 것이다.

반면 실험실에서의 연구는 ‘자기 인식(self-awareness)’이나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마음 이론(theory of mind)’ 따위의 학술적인 용도로 만들어진 개념을 ‘테스트’하는 일에 매몰돼 있는 것 같다. 그런 아이디어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도움이 된다. 문제는 동물은 인간들이 세운 학술적 분류와 테스트의 설정에 상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들은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나눠진 범주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에 아무 흥미가 없다.

예컨대 해달이 대합을 돌로 내리치는 것은 도구를 사용하는 사례지만 갈매기가 대합을 돌 위에 떨어뜨리는 것은 도구 사용이 아니라는 식의 논쟁이 그들에게 의미가 있을까. 그들이 관심 있는 것은 생존이다. 반면 몇몇 학술 연구자들은 개념을 수많은 조각으로 쪼개 버리는데, 그걸 보다 보면 무슨 시시 케밥 요리사인줄 착각할 지경이다. 

‘마음 이론’은 정말 괴상한 용어로, 하나의 아이디어다. 그것이 어떤 아이디어인가에 대한 답은 누구에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자폐아들을 연구하는 나오미 앵고프 셰드에게 질문한다면 그녀는 “다른 사람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 말할 것이다. 그 정의는 마음에 든다. 도움이 된다. 돌고래 연구자인 다이애나 라이스는 마음 이론이 “당신 마음에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지 내가 알 것 같다”고 느끼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또 다른 정의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언론의 관심을 제일 많이 받는 것이 이 ‘독심술’ 진영이며, 스스로 가장 으쓱해하는 것도 이 입장의 추종자들이다. 이탈리아의 신경학자이며 과학자인 비토리오 갈레제는 ‘우리의 복잡한 讀心 능력’에 대해 글을 썼다.

나는 당신에 대해 모르고(이게 내 요점일 것 같다), 나는 누구의 마음도 읽지 못한다. 경험과 보디랭귀지를 근거로 삼고, 정보에 근거하는 짐작이 실제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다. 인상이 분명치 않은 낯선 사람이 길을 건너 우리 쪽으로 다가올 때 우리가 맞닥뜨리는 첫 번째 문제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음 이론’이 그가 당신과 다른 생각을 가졌음을 이해한다는 정도의 의미라면 그건 좋다, 그 정도면 된다. 하지만 ‘복잡한 독심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우리가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떻게 지내니?(How are you?)’라고 묻는 것은 독심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일부 과학자들은 마음 이론 능력―기본적으로는 타인이 자신과 다른 생각이나 동기를 가졌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영장류와 돌고래에게는 있다고 인정했다. 또 다른 몇몇은 코끼리와 까마귀에게도 있다고 인정했다. 가끔 개에게도 있다고 인정하는 연구자도 있다. 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마음 이론이 ‘인간만의 고유한 것’이라고 계속 주장한다. 

침팬지와 개, 다른 동물들이 ‘마음 이론을 갖고 있다’고 연구자들이 생각하는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가졌으며, 그것을 어떻게 갖게 됐는가, 개는 무슨 행동을 하는가, 어떤 동기에서 그렇게 행동하는가와 같은 것들 말이다. 개나 침팬지가 인간의 눈길을 따라가는지 아닌지를 묻기보다는, 개와 침팬지가 서로의 관심을 어떻게 끄는지를 묻자. 

야생동물이 자신의 입장에 맞게 세계와 타협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정신 능력이 얼마나 풍부한지 알게 된다. 당장 당신 집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호소하는 눈길로 당신을 이리저리 재보고, 당신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을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해 보라. 내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저자는 뉴욕주립대에서 환경연구를 공부했고 러트거스대 생태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뉴욕주립대(스토니부룩)에서 자연과 인문학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과학에 대한 이해를 돕는 앨런 알다 센터(Alan Alda Center)의 운영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바다생물뿐 아니라 초원과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까지 폭넓게 연구하고 기록하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저서로 『푸른 바다를 위한 노래(Song for the Blue Ocean)』, 『알바트로스의 눈(Eye of the Albatross)』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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