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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화제 : 미국 교육부의 이상한 웹페이지 관리 지침
해외화제 : 미국 교육부의 이상한 웹페이지 관리 지침
  • 박나영 기자
  • 승인 2002.12.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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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교육부 장관 귀하. 우리는 교육부의 ‘정부의 이념, 정책, 목표가 반영되지 않은 내용을 웹사이트에서 삭제할 수 있다’는 지침에 대해 심히 염려를 표합니다. 물론 교육부는 이런 ‘필요 없는’ 내용들을 삭제함으로써 웹사이트를 재정비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대중이 보다 쉽게 정보를 찾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할 수도 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웹사이트에서 이러한 정보를 삭제한다면 대중으로서는 정부의 각종 자료들에 접근할 방법이 전무해집니다. 이렇게 되면 정부의 시책 또는 통계자료 등이 공공연하게 은닉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현재 ERIC(Educational Resources Information Center)에 올려진 자료들에 계속 접근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매우 불안한 상태입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보다 심층적인 연구를 위해 필수적인 자료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접근성’이 보장돼야 합니다. 따라서 교육부는 위와 같은 지침을 시행하기에 앞서 반드시 교육 관련 연구자, 사회과학자, 사서 등 정보 배포·보존에 관한 전문가의 견해를 들어보아야 합니다. 미국 교육부 웹사이트상의 정보는 매우 다양한 계층의 학자, 전문가, 교육자, 공공정책 결정자, 그리고 대중에 의해 이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귀하께서 반드시 이들과 의견을 나누어보실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위 글은 미국 교육 연구 연합회(AERA; American Educational Research Association, 이하 AERA), 미국 도서관 연합회, 국제 교육 연합회, 미국 사회학자 연합회, 미국 지질학자 연합회를 비롯한 14개 교육 관련 단체가 로드 페이지 미국 교육부 장관에게 보낸 서한의 일부이다.
AERA에 따르면 미국 교육부 당국은 지난 5월 내부적으로 ‘삭제 가능한 내용의 목록’을 작성·배포했으며, 이에 따라 앞으로 △법적인 이유로 필요하거나 △행정 당국의 정책 또는 의회의 법안을 지지하거나 △역사적 관점에서 중요하거나 △교육부 차관이 정책 수행에 중요하다고 인정하거나 △학부모, 학생, 교육자에게 필요하거나 △행정당국의 이념과 일치하는 이외의 내용들은 교육부 웹페이지에서 삭제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인 것으로 밝혀졌다.

AERA는 웹사이트에서 “지금 정부 각 부처에서는 전체적으로 이런 ‘웹사이트에 게재된 정보를 삭제하는’ 작업이 횡행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만 해도 12명의 국회의원이 토미 톰슨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보건복지부 당국이 그들의 정책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들을 삭제해 가며,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정책결정과정을 의도적으로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낸 일이 있다”라고 밝히며 “교육부는 이러한 시책을 제고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펠리스 레빈 AERA 전무이사는 “믿을 수 있는 정보를 공개·제공해야만 건전한 정책 수립이 가능하다”라고 주장하며 “애널리스트들이 교육부가 게시한 정보에 대해 질문하고, 나아가 새 자료를 이전의 자료와 비교·분석하기 위해서는 교육부의 모든 자료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정보를 제거하거나 발견하기 어렵게 만드는 정책 또는 절차에 반대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과학자들 역시 “줄기 세포의 연구에서부터 생명공학에 이르기까지, 행정당국은 이런 속임수를 통해 자문단과 검증위원회의 의견에 ‘대통령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연구자들의 의견을 끼워 넣으려 하고 있다”라며 반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에 따르면 다니엘 랑간 교육부 공보관은 이에 대해 “우리가 이런 일련의 작업을 통해 웹사이트상에서 행정당국의 의안이 ‘눈에 띌 수 있길’ 바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에 배치되는 다른 정보들을 전부 없앤다는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니엘 공보관은 “지금 새로운 정보들을 업데이트하고 있지만, 그 이전의 자료들 역시 보존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웹사이트에서 삭제되더라도 물론 자료는 보존될 것이다. 대중과 대다수 학자들의 손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

지금, 우리도 ‘우리가 마땅히 접근할 수 있어야 할’ 정보들을 챙겨볼 때가 아닐까.

박나영 기자 imna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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