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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혐오 발언에 대한 어떤 규제도 제정하지 말아야”
“국가는 혐오 발언에 대한 어떤 규제도 제정하지 말아야”
  • 유민석 서울시립대 박사과정·철학
  • 승인 2016.08.30 14:34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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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혐오 발언』 주디스 버틀러 지음|유민석 옮김|알렙|367쪽|18,000원

 

일베, 김치녀, 소라넷, 강남역 살인 사건, 여성 혐오 랩 가사, 퀴어문화축제, 고위 공직자의 ‘개돼지’ 발언, 데이트 폭력, 표현의 자유, 메갈리아……. 그야말로 혐오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혐오 발언’의 문제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이슈로 급부상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캘리포니아대(버클리) 비교문학과 교수인 주디스 버틀러의 저서 『혐오 발언(Excitable Speech)』은 혐오 발언에 대한 국가 규제의 문제점, 혐오 발언에 대한 수신자들의 저항을 비롯해서 침묵이나 전유, 언어와 권력의 문제, 검열과 표현의 문제, 언어적인 상처, 타인의 호명으로 탄생하는 주체의 문제, 언어적 생존이나 화자의 책임 등과 같은 언어와 권력, 저항에 관한 심층적이고 본질적인 철학적 질문들을 다룬다. 따라서 시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의 한국 사회의 ‘상처를 주는 말’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도 동시대성이 존재한다.

그녀는 『혐오 발언』에서 인종차별 발언, 포르노그래피, 흑인 갱스터 랩 음악, 동성애자의 자기 선언, 십자가 소각, 국가 검열 문제 등 다양한 형태의 ‘상처를 주는 말’을 다룬다. 그녀는 포르노그래피와 인종차별주의가 어떤 형태의 법적 규제에 종속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몇몇 페미니스트들과 反인종차별주의 이론가들을 비판한다. 그녀가 인용하는 이론가들―레이 랭턴, 캐서린 매키넌, 마리 마츠다―은 모두 발언을 규제하자는 논증을 제기한다. 즉 발언이 억압당하는 집단 구성원들을 종속시키고 주변화하거나 그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것은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의 열린 본성을 강조함으로써, 버틀러는 이런 논증들을 거부한다. 궁극적으로 그녀는 혐오 발언에 대한 어떤 규제도 제정하지 말 것을 권한다. 규제는 발언을 ‘재의미부여’하고 ‘재수행’함으로써 이런 발언에 도전하도록 일깨워질 자들을 침묵시키도록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혐오 발언이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주체를 탄생시키는 호명적인 기능을 행사하지만, 그때 탄생되는 주체는 종속적이거나 수동적인 주체가 아니라 자신을 부른 그 호명적인 혐오 발언에 응답하고 대항할 수 있는 주체라고 주장한다. 이는 혐오 발언이 피해자들의 수행성, 즉 ‘언어로 행위할 수 있는 능력과 언어로 세계에 어떤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파괴하지 않음을 뜻하며 오히려 혐오 발언에 대한 대항 발언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로 진입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버틀러가 비판하는 마리 마츠다, 캐서린 매키넌, 레이 랭턴 등은 모두 이 같은 ‘상처를 주는 말’에 대해, 이는 주체가 의도적으로 행사하는 차별 행위이고, 이 말들은 곧 행위가 돼 수신자를 열등한 지위로 종속시킨다는 견해를 편다. 그들은 혐오 발언이나 포르노그래피가 ‘그냥 말(only words)’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혐오 발언을 폭력이자 차별 행위로 간주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혐오 발언은 일종의 언어적인 따귀로, 수신자의 복부를 강타하고 종속적인 지위로 못박아 두거나(마츠다), 열등한 자로 서열을 매기고, 그들을 향한 차별을 정당화하며, 사회적 약자들을 발언 불가능하도록 침묵시킨다(랭턴). 따라서 그들은 혐오 발언에 대해 화자가 의도한 대로 말이 곧 행동이 되는 오스틴의 발화내행위적인 형태를 가정하며, 피해자 혹은 피해 집단의 수행성이 파괴된다고 간주함으로써 그들을 피해자화 한다. 이를테면 철학자 레이 랭턴은 남성의 여성 혐오 발언은 여성을 ‘발화불가능(make unspeakble)’하도록 침묵시키며, 여성들의 언어적 수행성을 박탈한다는 유명한 주장을 했다.

그러나 버틀러가 보기에 이들의 견해는 혐오 발언의 수행성을 과신한데서 비롯된다. 마치 구약성경의 신이 “빛이 있으라!”라는 말만 가지고서도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혐오 발언이나 혐오발화자가 마치 신의 목소리인 양 피해자들을 언어적인 불구로 만드는 것처럼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과대평가한다는 것이다. 혐오발화자의 권력은 그 개별주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에게 권력을 부여한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라는 관습에서 비롯된다. 또한 혐오발화자의 언어는 자신의 혐오 발언이 어떠한 효과를 야기할 수 있는지를 미리 예측하고 내다볼 수 없다. 버틀러는 이렇게 언어와 효과, 혐오발화자 개인의 권력과 혐오 발언의 역사성이 가지는 권력, 화자와 수신자 사이에 공백과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을 활용해 수신자는 기존 권력을 전유하고 전복하거나 화자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혐오 발언에 반박하고 되받아칠 수 있으며, 나아가 혐오 발언의 권력과 관습 또한 교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규제옹호론자인 마리 마츠다는 국가가 혐오 발언을 내버려 두고 방치하는 것은 국가가 그 혐오 발언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마츠다는 혐오 발언의 해악을 강조하면서 혐오 발언을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 하에 방치하는 것은 혐오발화자로 하여금 소수자를 억압할 권리를 승인해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버틀러는 혐오 발언에 대한 국가규제는 오히려 규제를 하게 될 경우엔 혐오 발언의 피해자 내지는 수신 집단이 이 혐오 발언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담론적 수행성’을 법이 미리 제약해버림으로써 대항운동을 법적인 문제로 축소시킬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한다. 나아가 버틀러는 국가의 혐오 발언 규제가 소수자 집단에 불리하게 적용돼왔다는 것을 지적한다. 혐오 발언의 주된 수신 집단인 사회적 약자 진영이 혐오 발언에 대한 보상이나 시정을 요구하고자 국가에 혐오 발언 규제를 의탁하는 경우, 이는 국가가 혐오 발언을 정의하고 처벌할 권력을 자의적이고 편파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오히려 소수자 운동에 역효과를 낳는 부메랑이 돼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이처럼 주디스 버틀러는 이 책에서 혐오 발언 내지는 혐오발화자를 신성한 권력을 소유한 견해로 간주하는 이론가들을 겨냥하면서 혐오 발언이 피해자들의 수행성을 파괴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혐오 발언이 피해자들을 침묵시키고 불구로 만든다는 ‘발언내행위론’(랭턴)에 반대해 ‘발언효과행위론’을 내세우고, 또한 법적 규제를 주장하는 규제옹호론자들(마츠다)을 겨냥하면서 이들이 혐오 발언 수신자들이 대항할 수 있는 수행성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한다. 버틀러의 이 책은 혐오 발언에 대한 법적 규제의 문제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공적 담론에서의 피해자들의 수행성, 즉 언어적인 행위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인 ‘대항 발화’를 주문하고 있다.

이 책은 따라서 현재 한국사회에서의 혐오 발언에 대한 국가 검열 및 규제가 가져올 수 있는 정치적인 퇴보의 문제점과 대항발화를 통해 피해자들의 언어적인 수행성이 신장될 수 있는 기회마저도 같이 검열당하거나 차단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나아가 혐오 발언이 혐오발화자 개인이나 특정 커뮤니티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해줌과 동시에 혐오 발언의 피해자들이 결코 혐오 발언의 막강한 권력 속에서 영원히 침묵하고 종속당한 파괴된 존재가 아님을, 혐오 발언에 대한 저항과 반항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조언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유민석 서울시립대 박사과정·철학
필자는 동국대 철학과에서 「혐오발언에 관한 담화행위론적 연구: 랭턴과 버틀러의 이론을 중심으로」로 석사학위 논문을 받았다. 「퀴어에 대한 언어, 퀴어의 언어」, 「혐오발언에 기생하기: 메갈리아의 반란의 발화」등 혐오 발언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몇몇 글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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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이 2017-07-16 16:04:14
잘 읽었습니다.

우라이 2017-07-16 16:04:14
잘 읽었습니다.

우라이 2017-07-16 16:04:10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