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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과학 한국을 걱정하기
[문화비평] 과학 한국을 걱정하기
  • 조환규/부산대
  • 승인 2002.12.07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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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7 12:05:48
조환규/부산대·전자컴퓨터공학부

올림픽 경기를 보노라면 어색한 느낌이 드는 종목도 있다. 나에겐 수영 오십미터라는 종목도 좀 이해하기 어려운 종목이며, 또한 각 거리별로 자유형, 배영, 접영 등으로 나눠져 있는 것도 좀 억지스럽다. 개헤엄을 치든 뭘 하든 자유롭게 나갈 수 있는 자유형 하나면 족한 것 아닌가. 그런 식이라면 달리기도 자유달리기, 한발 달리기, 뒤로 달리기와 같은 파생종목이 나와야 마땅할 것이다. 뜀틀이라는 체조 종목도 필자에게는 좀 너무한 것 같다. 결선에서 한 선수는 두 번의 시도를 하게 되는데 대략 한번의 시도에 6초 정도가 걸린다. 따라서 순 경기시간으로만 본다면 15초 내외이다. 보통 대표급 선수들이 올림픽 준비에 약 1년 정도 소요한다고 하면, 하루의 연습이 대회 당일 경기시간에 미치는 효율은 0.05초 정도에 미치고 있다. 더구나 공중제비를 돌아 내리는 일의 재현성이 다른 어떤 경기보다 떨어진다고 할 때 2번의 시도는 너무 심한 조건이다. 일전의 한 올림픽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뜀틀전문가라고 평가받았든 우리 나라 체조선수가 연거푸 실수를 해 메달을 놓치는 것으로 보았는데 그것을 보는 필자의 기분도 참 아쉬웠다. 4년의 노력이 15초 내외로 결판나는 것을 구경하는 관객은 스릴을 느낄 수 있어 재미있을지는 몰라도 이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는 평가방법이다.

요즘은 입시철이라 친척중 한 수험생이 수시모집에 응했다. 그 대학의 수시모집은 수능과 심층면접으로 판가름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그 수험생의 말에 의하면 대략 한 사람당 20분 내외의 시간으로 면접을 마쳤다고 했다. 3년의 공부가 학생부 성적에 축적이 되어있다고는 하나 대략 비슷한 내신등급의 학생이 지원한다고 볼 때 승부는 심층면접에서 나는 셈이다. 그런데 20분의 면접에 질문과 답이 비슷한 시간이라고 한다면 학생이 자신의 능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시간은 10분 안쪽이다. 우리 나라와 같이 대학간판을 평생의 훈장으로 또는 멍에로 짊어지고 가야하는 상황에서 10분의 시간으로 그 운명이 판가름나는 것은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말이 심층면접이지 사실 어떤 방법으로 한 학생의 정신능력의 심층구조로 판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전의 대학입시용 본고사와의 비교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 때는 대략 5시간 정도의 시간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생면부지의 교수님들을 앞에 두고 기대 밖의 질문을 받았을 때 막 고등학교를 마칠 학생이 느낄 당황함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특히 신문을 보면 심층면접을 통해 학생의 창의력과 대학교육에의 적응성을 심도있게 판단한다는 식의 주장도 있는데, 너무 과한 표현인 것 같다. 5년간의 심층면접을 통해서 결혼한 부부도 드물지 않게 이혼을 하는 세상에, 고작해서 10분에서 20분, 길어야 30분을 넘지 못하는 면접에서 무엇을 얼마나 정확하게 알아낼 것인가. 대학교수는 대부분 상담심리학이나 독심술의 전문가가 아니다. 우리 나라와 같은 과열된 입시경쟁에서 경쟁적 면접으로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는 일은 매우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한다.

더구나 사회전반으로 ‘말하는 문화’는 매우 보편화돼가고 있는 반면에 ‘쓰는 문화’는 갈수록 퇴색돼가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몇 년 사이만해도 쓸만한 장편소설이 소개된 것을 기억하기가 힘든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공계 대학생(대학원생도 역시)들에게 ‘증명’의 논술능력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본고사를 치른 세대들은 수학에서의 증명의 기술은 가장 중요한 능력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오지선다형에 익숙한 지금의 학생에서 무엇을 수리적으로 논증하는 것을 전혀 못한다. 그 논증해야할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증명의 글쓰기 양식을 알지 못해서 하지 못한다. 대부분 이공계 연구란 증명에서 시작해서 증명으로 끝난다고 보아도 무방한데 이런 일에는 상당수가 거의 속수무책이다. 이런 교육이 계속된다면 과학한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매우 염려스럽다.

문학도 그러하지만 과학에서도 쓰는 일은 말하는 것에 항상 선행한다. 논문을 내는 것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발표이다.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고 설득력있게 기술하는 일은 어떤 능력보다 선행하는 능력이다. 한때 유행한 논술시험도 있었지만 알맹이 없고 겉만 번드르한 답안, 자기 목소리가 없는 중성적 글이 채점기준의 객관성이라는 미명으로 더 우대받기도 했다. 학생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에 충분히 쓰게 해야한다. 악필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워드를 사용하게 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글은 말보다 훨씬 강한 책임을 요구한다. 말과 노래가 글과 기록물보다 더 우대받고 대접을 받는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는 사회이다. 특히 과학한국을 걱정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강하게 글쓰기 교육을 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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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 2009-12-16 01: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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