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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공감할 수 있는 지표 통한 번역 연구 필요 … ‘번역 평가’에서 ‘번역 비평’으로
학계 공감할 수 있는 지표 통한 번역 연구 필요 … ‘번역 평가’에서 ‘번역 비평’으로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6.22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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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 번역, 어떻게 볼 것인가?

 

 

문학작품이 번역되기 위해 어떤 작품이 선정되는지와 번역자의 역할,
편집자 등의 관여 등 번역 출판을 둘러싼 환경도 연구 대상에 넣어야
한다. 언어의 이동은 진공 상태에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인지하고
번역의 주된 상황도 포괄해야 한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놓고 국내 대형 출판사들이 판권 경쟁을 벌인 탓에 그에게 지급된 인세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는 것은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 됐다. 문학 작품의 번역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값비싼 경쟁이 빚어지는 걸까. 번역 자체에는 어떤 문제가 없는 걸까. 이한정 상명대 교수가 최근에 낸 『일본문학의 수용과 번역』(소명출판, 300쪽, 18,000원)은 특히 번역이 이뤄지는 현장에서 번역을 둘러싼 우열관계에 의해 어떤 담론이 형성되는지를 조명한 흥미로운 책이어서 눈길을 끈다. 물론, 책에 수록된 글들은 이 교수가 <일본어문학>, <일본학보>, <비교문학> 등 학술지에 단편적으로 발표했던 논문들이긴 하지만,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일목요연하게 ‘일본문학 번역’을 문제 삼았다는 점에서 특정 맥락에서 읽어낼 수 있는 미덕이 있다. 이 교수는 “그동안 일본문학의 번역은 일정한 부분에서 한국문학을 풍요롭게 했으며 일본문화의 이해에 기여했다”라고 평가하면서, 일본문학 번역의 평가와 연구도 새로운 물꼬를 터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책에서 「일본문학 번역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부분을 발췌했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1960년대 이후부터 일본문학 번역은 한국의 독서계에서 중심적인 자리에 있었고 근래 10년은 더 두각을 나타내며 일본문학 번역이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출판된 방대한 분량의 일본문학 번역에 대한 평가 및 연구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한국어로 번역된 외국문학 작품에 대한 번역 평가 및 연구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2년부터 영미문학연구회에서 영미고전번역평가사업을 수행해 2005년과 2007년에 전 2권으로 『영미 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를 간행한 후다. 이 작업에 이어 2008년에는 고려대 불어불문학과에서 「프랑스 명작소설의 번역 평가―번역 DB구축, 번역 품질 평가, 번역사전 편찬」사업을 시작했고, 아울러 한국번역비평학회가 창립돼 <번역비평>이라는 학술지를 발간하고 있다. 또한 <교수신문>에서도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전 2권을 간행해 고전으로 간주되는 작품들의 번역 실태를 점검하고 비판적 번역문화를 모색했다. 2005년 4월호 문예지 <문학사상>은 광복 60주년 특집으로 「한국의 외국문학 수용 양상-일본편」을 실었는데, 여기에서 김응교가 미우라 이야코의 『빙점』 번역본을 「일본문학 번역의 왜곡상」이란 글로 살펴 일본문학 번역 평가를 시도한 이후, 2007년에는 최재철의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문학과 한국-텍스트와 번역·수용」(<일본연구> 34)이 발표되면서 번역 평가 및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단행본으로는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에 수록된 글이 처음으로 일본문학 번역에 대한 평가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문학 번역 60년 현황과 분석』이 2008년에 출간됐다. 이 책은 일본문학 번역 작품의 서지 목록을 포함해 일본문학 번역을 ‘현황’ ‘수용’ ‘실태’ 등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했다. 이 연구의 후속으로 일본문학 번역의 현황과 수용에 관한 연구가 이어졌다.
문연주(2008), 박종진(2008), 이선이(2010), 강우원용(2012, 2013)의 작업 등을 들 수 있다. 번역 실태에 관한 연구는 주로 원문과의 대조를 통한 한일 간 언어 표현 및 문화 차이, 특징을 주시하면서, ‘충실성’과 ‘가독성’의 실현, 혹은 ‘오역과 오류’의 문제, ‘직역투’ 등 일본어 문장을 한국어로 옮길 때 발생하는 언어표현과 문화 사항의 특징을 원문과의 대조를 통해 살피고 있다. 이러한 연구 방법은 2010년과 2011년에 각각 단행본으로 출간된 오경순의 『번역투의 유혹』과 유은경의 『소설 번역 이렇게 하자』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번역투의 유혹』은 ‘일본어가 우리말을 잡아먹었다고?’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일본문학 작품의 번역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국내의 일본어 번역물의 단편적인 문장을 실례로 들어 일본어 문장을 한국어로 옮길 때 나타나는 일본어투 표현을 고찰하고 있다. 그리고 신문기사나 문학작품 등에 그 일본어투 표현 즉 ‘번역투’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나타나는지를 살폈다. 『소설 번역 이렇게 하자』는 표지에 새겨진 ‘『봇짱』의 올바른 감상과 일본소설 번역의 기술’이란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2000년 이후에 국내에서 발간된 나쓰메 소세키 『봇짱』의 한국어 번역본 수종을 검토하고 있다. 기존 번역본의 ‘세세한 오류’를 지적하면서 일본문학을 어떻게 번역하면 좋은지 그 번역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일본문학 번역 연구서로서 앞의 『일본문학 번역 60년 현황과 분석』 이외에 유일한 일본문학 번역 평가 및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기존 번역의 ‘문제점’을 원문과 번역문의 대조를 통해 살폈다고 할 수 있다. 저자 역시 몇몇 작품을 번역하고 있는 처지다.

기존의 번역서를 검토해 번역의 ‘오류나 오역’을 지적하는 것은 번역 평가나 연구의 일차적 작업이다. 번역 평가에서 중요한 것은 제시되는 ‘기준’이다. 흔히 ‘원전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애하고 적절하게 번역했는가 하는’ ‘충실성’과 ‘번역문이 우리말로 얼마나 잘 구사됐는가 하는’ ‘가독성’이 그 ‘기준’이 된다. 하지만 “번역이라는 활동 자체가 번역자에게 끊임없는 선택과 판단을 요구하고, 여기에는 어떤 법칙으로 포괄되지 않는 느낌이나 감각의 차원이 개입”하므로 “번역평가가 학문으로서 수립되기 위해서는 불가피할지” 모르지만, 번역평가의 ‘체계화’ 역시 간단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최근 국내의 문학 번역의 평가나 연구에서는 ‘문학 번역 평가에서 문학 번역 비평으로’의 전환이 논의되고 있다. 이렇게 살펴보자면 일본문학 번역에 대한 평가와 연구는 아직 ‘오류나 오역’에 대한 사례 지적에 머물러 있지 그것이 번역 작품 읽기에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는 살피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국내의 문학 번역 평가 및 연구는 근래에 고조되고 있다. 영미문학계와 프랑스문학계의 문학 번역 평가 사업은 물론이거니와, 한국문학번역원과 한국고전번역원의 사업 등 문학과 고전 번역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다. 일본문학 번역의 평가와 연구도 이러한 흐름에서 새로운 물꼬를 터야 할 것이다. 그 방향성을 생각해 보며 다음과 같다.

첫째로 번역은 언어의 이동이다. 그러므로 일본어 원문과 번역문의 대조를 통한 평가는 그 출발지점이 된다. 지금까지 일본문학 번역 연구도 대부분 이런 선상에서 이뤄졌다. 번역 작품을 원문과 대조하면서 ‘오류와 오역’을 파악하는 데는 평가 지표나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일본문학 번역 연구에서는 이런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연구자 각자의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평가에 의존할 뿐이다. 그러므로 원문과 번역본의 대조는 번역 상태의 파악에 머물고 어떤 번역 작품이 과연 좋은 번역인가를 논한 질적 평가나 번역비평 및 연구는 아직 제대로 수행되지 못했다. 일본문학 번역 평가를 위해 일정한 평가지표가 마련돼 일본문학계에서 공감될 필요가 있다. 영미학계나 불문학계에서 시행한 것을 참고할 수도 있으나, 일본어와 한국어의 관계, 일본문화와 한국문화의 관계를 충분히 고려한 평가 방법이 요구된다. 또한 운문과 산문 작품,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대중소설, 장르문학 등 각각의 문학작품의 성격을 염두에 둔 다각적인 기준을 시야에 둬야 한다. 그리고 번역 평가를 통한 연구에서는 작가의 문체와 작품성도 충분히 번역에서 살아나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문학작품의 번역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작가 특유의 문체도 고려해야 하며, 한 작가의 문체가 번역자마다 달라지거나, 혹은 한 번역자의 번역문체로 바뀌어 고정되는 양태도 연구 시야에 둬야 한다.
둘째로 번역은 언어의 이동이지만, 앞에서 봤듯이 ‘일본이해’나 ‘문화 교류’ 수단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외국문화 수용의 측면에서 살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된 일본문학의 번역 출판 현황을 통해 시대별 독자수용 및 사회상을 살피려는 연구가 필요하다. 나아가 문학작품이 번역되기 위해 어떤 작품이 선정되는지와 번역자의 역할, 편집자 등의 관여 등 번역 출판을 둘러싼 환경도 연구 대상에 넣어야 한다. 언어의 이동은 진공 상태에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인지하고 번역의 주된 상황도 포괄해야 한다. 일본문학 번역이 국내의 문화권에 끼치는 영향은 앞으로 다각적인 측면에서 적극 규명될 필요가 있다.

셋째로 일본문학을 ‘타자’로 살필 수 있는 안목이 번역 연구에 반영돼야 한다. 일본문학 번역은 국내에서 무차별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류’와 대립하는 말로 ‘일류’ 소설이 등장하면서 일본소설의 대량 유입을 경계하는 기미도 보이고 있으나, 살포된 『대망』 등의 예에서 보더라도 일본문학이 ‘번역’으로서 인식되는 경향은 적었다. 즉 번역이라는 관점에서 일본문학이 연구자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문학은 엄연히 번역을 통해 우리 앞에 등장한 ‘타자’다. 이 점을 충분히 인식한 번역 연구가 요구된다. 일본문학을 읽는 독자들에게 일본문학 번역의 타자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주는 역할은 일본문학을 원문으로 읽을 줄 아는 연구자의 몫이다.

무엇보다 우선은 개별 연구자의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번역평가가 아닌 일본문학계에서 공감할 수 있는 지표를 통한 연구 활로를 개척하는 것이 요구된다. 하지만 아무리 모범적인 평가 기준을 만들더라도 그것이 절대적일 수 없다. 그러므로 시대마다 다른 번역이 나오는 것이다. 시대와 함께 살아 움직이는 문학 번역의 평가는 ‘절대적 기준’이나 확고한 평가를 주저하게 만들고 불편하게 한다. 번역에 대한 절대적 평가의 부재에서 역으로 일본문학 번역 연구의 지평이 넓혀진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번역이 수행되는 과정에 주시함으로써 일본문학이 국내에 번역 상품으로 자리하는 현장의 내적·외적 구조를 알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위와 같이 방대한 국내의 일본문학 번역에 비해 일본에서의 한국문학 번역은 해방 후 지금까지 매우 적은 분량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번역이 문화교류의 일환이기도 하다면 그 불평등, 불균형, 비대칭의 관계는 실로 크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해서도 일본문학 번역 연구와 함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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